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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법률/사건이야기

산동제남의 포이내(包二奶)사건

by 중은우시 2007. 2. 9.

중국에서 이내(二奶)는 우리나라의 첩(妾)을 의미하고, 포이내(包二奶)라 함은 축첩(蓄妾)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포이내사건"이라 함은 "축첩사건"이 된다. 이런 사건은 수도없이 많지만, 산동제남에서의 "포이내사건"은 몇 가지 점에 있어서 특이한 점이 있다.

 

우선, 이 사건을 폭로한 당사자인 왕정(王靜)은 만18살인 산동 제남의 어느 대학 1학년에 재학중인 여학생이다. 그녀가 폭로한 상대방은 바로 자신의 부친인 왕지화(王志華)인데, 그는 산동성 국토자원국의 보통간부이고, 그녀에 의하면 부친은 이내(二奶)인 이취련(李翠蓮)을 두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먼저 2차례에 걸쳐 공산당기율검사위원회에 부친의 당적을 박탈하도록 요청하였는데, 당기율검사위원회에서 사실확인후 왕지화가 축첩한 사실이 없다고 결정하자, 그녀는 다시 '반이내망(反二奶網)'이라는 웹사이트를 개설하고, "서문경보다 못한 부친"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웹사이트도 오픈하여, 부친의 축첩사실을 공개하고, 전국적으로 축첩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이 사건은 '나이어린 여대생'이 '국가공무원'인 자신의 '부친'이 '축첩'을 했다고 폭로하고, 부친이 '서문경만도 못하다'고 하는등 자극적인 내용이 많아 금방 중국에서 유명해지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2006년 8월, 당사자인 이취련은 자신의 인격과 명예가 손상되었다면서 형사,민사소송을 제기하였는데, 2007년 2월 5일, 법원은 왕정에 대하여 모욕죄를 인정하고 관제2년(管制2年, 관제형은 구금하지는 않으면서 2년간 감시하는 것)의 형에 처했다.

 

왕정은 모친으로부터 들은 바를 가지고 부친이 축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부친인 왕지화는 이를 일관되게 부인했다. 왕지화에 의하면, (1) 이취련은 자신의 이종사촌여동생이다. (2) 2003년초에 고향인 하택농촌에 사는 이모부가 병이 들었는데, 현지병원에서는 암이라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래서, 본인이 병원자료를 전부 보내라고 해서 제남의 큰 병원에 물어봤더니, 죽을 병이 아니고 병원에서 치료하면 낫는다고 해서, 이모부를 제남으로 모셔와서 치료해 드렸다. 그 때 이모부의 두 딸도 함께 왔는데, 이취련이 바로 그 딸중의 하나이다. (3) 이들이 농촌에서 제남으로 왔으므로 머물 곳이 없었고, 마침 동료가 본인 집의 1층에 집을 하나 사두고 꽃을 기르고 있었는데, 내가 같은 아파트에 있으므로 열쇠를 관리하고, 가끔 가서 물을 주었다. 사정을 얘기했더니 동료가 동의해서 이모부와 딸 둘이 그 곳에 살게 된 것이다. (4) 이취련은 이미 안휘의 남편이 있고, 두 딸을 두었다. 당의 기율검사부서도 제남과 하택에서 조사한 결과 이취련과 왕지화는 고종사촌관계에 있고, 이취련의 부친이 확실히 제남으로 와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으며, 이취련이 이미 결혼해서 두 딸을 두고 있다는 것등을 확인한 후, 왕지화의 축첩사실은 없다고 결론지었다. 이 사건과 관련하여서는 하택의 동네사람들에 의하면, (1) 원래 왕지화와 이취련은 정혼한 사이였다. (2) 왕지화가 군에 입대한 후, 도시에 남아서 농촌으로 돌아오기 힘들게 되자, 정혼을 파기하였다. (3) 이후 왕지화는 도시에서 자란 왕정의 모친과 만나서 결혼하기는 했으나, 서로간에 그다지 화목하지 못하였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여기에다가, 왕지화와 같은 간부급 국가공무원이 만일 축첩을 하려면 훨씬 젊고 예쁜 여자도 많을텐데, 굳이 나이 마흔이 넘고,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하고, 이미 시집가서 남편도 있고, 딸도 둘이 있는 여자를 '첩'으로 삼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왕지화의 변명이 사실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였고, 법원의 판결도 이를 뒷받침했다.

 

이 사건이 진행되면서 몇가지 생각할 점을 남겼다.

 

첫째는 매체의 태도이다. 처음이 왕정이 자기 부친과 이취련의 관계에 대하여 부친의 직장과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 고발하였다는 소식을 전하면서 매체들은 이를 '축첩문제'에만 관심을 집중시켰지, '가정윤리문제'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즉, 어떻게 정리에 맞고 합리적이며 합법적으로 가족구성원간의 갈등을 해결할 것인지에 대하여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매체는 왕정을 부추겨 사건을 더욱 흥미위주로 끌고간 측면이 있다.

 

둘째는 독생자녀문제이다. 왕정은 왕지화와 모친간의 독생자녀인데, 독생자녀 특유의 이기, 고집, 편협, 폐쇄, 단순등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과 관련한 왕정의 태도를 보면, 왕정은 이취련을 한번도 만난 적도 없고, 그녀는 그저 모친이 하는 말만 듣고 부친이 축첩했다고 확신하고 있다. 이것은 아무리 보더라도,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 않은가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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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자야(子夜)

 

제남여대생 왕정이 두번에 걸처 북경으로 가서 중기위에 부친의 '포이내'를 고발하고, 스스로 '반포이내망' 웹사이트를 만들어 부친 왕지화가 '이취련'을 축첩한 사실을 폭로한 사건에 최근 진전이 있었다. 2월 5일 정도현법원은 1심판결을 당사자들에게 송달하였는데, 법원은 왕정에게 모욕죄가 성립된다고 인정하고 관제이년에 처했다. 왕정은 판결의 효력이 발생한 후 그가 개설한 '서문경보다 못한 부친' 웹사이트와 '반포이내' 웹사이트의 이취련을 모욕한 글을 삭제해야 한다.

 

이 판결은 예상대로이긴 하지만, 감개가 무량하다. 이 사건이 인터넷과 전통매체에서 시끄럽게 떠든지 이렇게 오래되었는데, 결국 실제적인 결과하나가 나온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아마도 왕정 자신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마도 이 판결은 쌍방의 격렬한 논쟁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상 왕정은 이미 가장 참담한 패배자가 되었다. 누가 이 세상물정모르고, 여러 사람들에게 이용당한 아이의 장래를 책임질 것인가? 그녀의 모친? 부친? 아니면 같이 떠들던 매체와 관중?

 

이 사건에서 나는 왕정을 제외하고 누구를 더 동정해야할지 모르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단순과 고집은 다른 사람에게 이용당했다.

 

첫번째로 그녀를 이용한 사람은 바로 그녀의 모친이다. 부모가 가정을 잘 못꾸려서 실패한 것만으로도 왕정의 마음 속에는 커다란 그늘을 남겼다. 그러나, 이 모친의 원한과 이기심으로 딸을 전남편에게 보복하는 무기로 사용하게 하였다. 이런 행위는 이혼부녀에게서 자주 나타난다. 바로 이렇게 때문에 이혼가정의 자녀가 문제아로 될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이다. 계속 원한만 주입시켜주게 되어, 원래 성격이 고집스럽던 왕정은 더욱 편집적으로 되었고, 부친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부득이 왕정의 부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축첩을 했는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같다. 그는 비록 불쌍한 모습으로 매체에 등장했고, 아마도 피해자일 것이지만, 이것은 그가 딸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한 결과라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는 딸과의 대화에서 냉막했다. 아마도 그가 매체와 여론의 뭇매를 맞고 절망했기때문일 수도 있지만,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그는 자기의 이익에 관계될 때는 포기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딸일지라도.

 

두번째로 그녀를 이용한 사람은 바로 불량한 매체들이다. 최초로 왕정이 부친의 축첩을 고발했다는 것을 보도한 매체는 진실에 대한 증거를 하나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왕정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 급히 보도해버렸다. 이 보도의 제목은 바로 <<6층에는 처가 살고, 1층에는 첩이 산다>>는 것이었다. 이 보도는 사람들의 눈을 자극했다. 이어서 이 사건의 보도에서 자주 출현했던 말들은 "딸이 부친을 고발" "정부관리" "축첩"등의 문구였다. 모든 매체의 보도를 살펴보면 아주 적은 수의 매체만이 왕정의 심리건강이나 그녀의 장래를 우려했었고, 다른 매체들은 거의 모두 까발리고 과장하고 불을 붙였다. 실제로 매체의 조작하에, 왕정의 심리상태는 더욱 편집적으로 되었다. 그녀를 이용한 것은 처음부터 그녀를 조종한 모 웹사이트의 관리자들이었다. 웹사이트의 방문자를 늘이기 위하여, 이 관리자는 왕정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해서 각종 '난리칠 일'들을 만들어내었다. 그녀가 부친과 만나게 하는 것도 이 관리자가 기획한 것이었다. 심지어 그녀와 부친의 대화도 모두 이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이루어졌다. 이런 음모는 축첩한 행위보다도 훨씬 더 역겹게 느껴진다.

 

그리고 더 많은 군중들도 그녀를 이용했다. 그것은 바로 부패를 미워하는 네티즌들이다. 부패에 대한 미움으로 인하여 왕정이 부친의 축첩을 고발한 것은 군중들의 격분을 일으켰다. 많은 네티즌들은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왕정으로 하여금 '부패와의 투쟁'을 하도록 종용했다. 왕정은 이런 사람들에 의하여 영웅으로까지 떠받들어졌다. 사회에 대한 불만, 부패에 대한 미움은 많은 네티즌으로 하여금 왕정이라는 통로를 통하여 발설하고자 했던 것이다. 정부관련기관의 조사를 통하여 왕지화가 축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힌 후에도 많은 네티즌들은 이를 관리들끼리 봐주기조사를 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런 네티즌들의 행동은 왕정으로 하여금 더욱 더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슬픈 일은 정의라는 이름으로 자기 감정을 배설한 네티즌들은 자기의 말과 행동에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왕정은 혼자서 부친이 자기를 고발한 사건과 이후의 길고 긴 인생의 길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일은 되돌릴 수 없다. 왕정은 부친의 정을 되돌리고자 한 것일지라도 오히려 거꾸로 되었다. 많은 경우에 한 가정의 파열은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똑부러지게 지적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왕정을 이용한 것은 이미 다툴 수 없는 사실이다. 매체와 군중들이 개인의 운명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매체와 군중이 씹을 수 있는 꺼리가 더 이상 없어지면, 왕정은 금방 군중의 눈에서 사라질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것은 왕정이 부딛쳐야 할 일생의 상처이고, 이로 인한 심리적인 후유증이다.

 

CCTV가 왕정에 대하여 보도할 때 깜짝 놀란 장면이 있었다. 왕정이 요리를 하다가, 창문에 개미가 기어가는 것을 보더니, 그녀는 금방 프라이팬을 집어던져 요리를 쏟아지게 하더니 모친이 위생적이지 못하다고 질책하였고, 밥먹는 것도 거절하였다. "이 밥은 먹을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아이의 심리적 건강상태를 걱정하였을 것이다. 이 일에서 왕정이 진정한 피해자이고 책임을 부담해야 할 사라이다. 그러나 반성해야 할 사람은 왕정의 부모를 제외하고도 매체와 군중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