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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문학/삼국연의

삼국연의의 허구내용

by 중은우시 2006. 11. 9.

작자: 탕은백(湯恩伯)

 

1. 도원결의 : 정사에는 세 사람이 도원결의했다는 내용은 없음. 그저 "정약형제(情若兄弟, 정이 형제와 같았다)"는 기록은 있음.

 

2. 온주참화웅(溫酒斬華雄, 술이 따뜻할 때 화웅을 베어버린다): 실제 화웅은 강동의 맹호 손견의 칼아래 죽는다. 삼국연의는 손견이 화웅에게 패한 것으로 기재하였으니, 손견에게 너무 불공평하다.

 

3. 삼영전여포(三英戰呂布, 세 영웅이 여포와 싸우다): 실제 여포는 손견에게 격퇴된다(공손찬은 동탁토벌연맹에 참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관,장의 세 사람은 참가하지 않았다. 그래서 호뢰관에서 여포와 싸울 일도 없었던 것이다)

 

4. 십팔로제후토동탁(十八路諸候討董卓, 십팔로의 제후가 동탁을 토벌하다): 실제 동탁토벌에 참가한 것은 13로의 제후였다. 후장군 원술, 기주목 한복, 예주자사 공, 연주자사 유대, 하내태수 왕광, 발해태수 원소, 진유태수 장막, 동군태수 교모, 산양태수 원유, 제북상 포신, 광릉태수 장초, 장사태수 손견과 조조였다. 공융은 당시 황건적을 상대하느라 바빴고, 도겸은 당시 돈을 냈을 뿐 전투에는 참가하지 않았고, 마등은 아직 귀순하지 않았는데 어찌 동탁토벌대열에 참가했을 것인가. 공손찬은 오이라트(오환)을 상대하고 있어서 역시 참가하지 못했다. 장양은 유비와 마찬가지로 그저 의용군이었고, 유비는 그저 따라갔을 뿐이다.

 

5. 관공참안량, 주문추(關公斬顔良 誅文醜, 관우가 안량을 베고 문추를 죽이다): 관우가 안량을 벤 것은 맞으나, 문추를 죽이 것은 조조의 부하가 한 일이다.

 

6. 장비편독우(張飛鞭督郵, 장비가 독우를 채찍질하다): 실제는 유비가 저질렀다.

 

7. 토산약삼사(土山約三事, 흙산에서 세가지를 약속받다): 관우는 전투에 패해서 생포된 것인데, 이런 일은 한 적이 없다.

 

8. 연환계 : 사서에 여포가 동탁과 비녀를 놓고 다툰 일은 기록하고 있으나, 이와 관련하여 어떤 계책이 있었다는 것은 기록에 없다.

 

9. 관우항조(關羽降曹, 관우가 조조에 항복하다): 관우는 자원해서 항복한 것이다. 삼국연의에서는 '두 형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날조하였는데, 실제 두 형수는 당시 소패에 있었고, 하비에 있찌 않았다. 나중에 조조가 소패를 점령할 때 포로로 잡힌다.

 

10. 과오관참육장(過五關斬六將, 5개의 관문을 지나면서 6명의 장수를 베다): 이 다섯 관문은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고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관우가 조조를 떠나면 직접 허창에서 남하하여 여남으로 왔으므로 무슨 다섯관문, 여섯장수가 나올 일이 없다.

 

11. 피참육장(被斬六將): 삼국연의에는 6명의 장수를 공수, 맹단, 한복, 변희, 왕식, 진기라고 이름까지 친절하게 소개해주고 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사서에 기재되어 있지도 않다. 이름까지 허구인 것으로 보인다. 

 

12. 서서(徐庶): 서서는 정사에 기재가 거의 없다. 무명과객일 뿐이다.

 

13. 화소박망파(火燒博望坡, 박망파를 불태우다): 실제 유비가 한 일이다. 건안7년에 발생하였다. 제갈량은 건안12년에 비로소 출산한다.

 

14. 미부인이 중상을 입고 우물로 뛰어들고, 조운이 흙담으로 우물을 덮다: 정사에는 이렇게 기재하고 있다. "감부인과 미부인은 당양에서 아무 일없이 편안하게 지냈다"

 

15. 장판파: 조운은 실제 아주 평탄하게 호송했다(조조는 그저 삼국연의에서 만들어낸 인물이고, 실제 전공은 아주 평범한 오호장에 불과하다)

 

16. 노후장판교: 조조군의 하후걸이 이로 인하여 간담이 파열되어 죽었다? 이것은 소설이 만들어낸 것이다.

 

17. 고육계: 정사에 황개가 거짓으로 조조에게 항복한 기록은 있다. 그러나 고육계는 의문이 있다.

 

18. 설전군유: 이런 일은 없었다. 그저 손권을 만났을 뿐이다. 설전군유, 군영회, 고육계, 연환계등은 모두 허구이다.

 

19. 손부인투강: 손부인과 유비의 결혼은 그저 평범한 정략적인 혼인일 뿐이다. 당연히 손부인이 형주로 갔고, 유비가 동오로 가서 첩을 취한 것은 아니다. 한명은 반백이 다 된 노인이고, 한 명은 스물남짓한 여인인데, 무슨 서로 신뢰가 있고, 사랑이 있을 것인가. 그래서, 유비가 익주으로 들어간 지 얼마되지 않아. 손권은 "누이를 맞이하러 선박을 보낸다", 손부인은 아무런 망설임없이 친정으로 돌아온다. 그 후 그녀는 유비와 관계를 끊고 서로 연락도 하지 않는다. 손부인이 강에 뛰어들었다는 것은 허구이다. 유비는 익주로 들어간 후 과부인 유장의 형수 오씨를 취한다. 손부인에 대하여는 전혀 미련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삼국지. 촉서. 이주비자전>>즉 유비의 후궁에 대한 기록에서도 손부인에 대하여 한마디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 색이교(索二喬) : 이 시는 조조의 아들인 조식이 쓴 것이다. 당시에는 아직 쓰여지지도 않았다.

 

21. 장간 : 역사상 장간은 주유를 설복하지 못하고 돌아온다. 돌아와서는 주유가 아량이 있다고 칭찬하였다. 그리고 이 일은 적벽대전보다 몇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22. 방통연환: 연횐은 조조의 결정이었고, 방통은 적벽지전에 참여하지 않았다.

 

23. 초선차전(草船借箭, 풀배로 화살을 빌려얻다): 이런 일은 없었다. 손견, 손견부자가 유표와 유수와 싸울 때 발생했던 일이다(삼국연의의 전신인 삼국지평화에서는 주유가 한 일로 그렸다)

 

24. 공명차동풍(孔明借東風): 순전히 허구이다. 동지때는 동남풍이 많이 분다. 이것은 조조의 운이 나쁜 것이지 인위적인 것은 아니다.

 

25. 화용도: 관우가 조조를 풀어준 것은 작자가 조조를 추악화시키고, 관우의 이미지를 올리기 위한 허구이다. 화용도로 가서 조조를 막으려고 한 것은 유비였다. 그러나, 그는 늦게 도착해서 이미 조조는 도망친 뒤었다.

 

26. 장사전투: 유비가 남정해서 형남사군을 정벌하러갔을 때, 사군(四郡)은 그저 항복했다. 황충도 장사태수 한현과 함께 항복했고, 전투는 일어나지 않았다.

 

27. 과골요상: 이때는 화타가 죽은지 2년후이다. 그러므로 있었더래도 화타의 소행이 아니라 그저 일반 군의관의 소행일 것이다.

 

28. 제갈삼기주유(諸葛三氣周瑜, 제갈량이 세번 주유를 화나게 하다): 주유는 당시 제갈량을 주의하지 않았고, 만난 적도 거의 없었다. 적벽대전이 끝난 후부터 주유가 병사할 때까지의 2년간, 제갈량은 영릉에서 물자조달등의 업무를 하였으므로 주유와 만날 일도 없었다. 주유가 병사한 후 촉의 사신대표는 방통이었고, 제갈량이 아니었다.

 

29. 정한중(征漢中, 한중을 정벌하다): 한중정벌의 전선총지휘관은 유비였다. 제갈량은 성도에 남아서 물자조달업무를 맡았다.

 

30. 부인도 잃고 병사도 잃다: 정략결혼이므로, 이런 일은 없었다.

 

31. 주유: 파구에서 사망하는데, 과로로 인하여 죽는다.

 

32. 계차형주(計借荊州) : 실제로는 노숙의 계책이며, 유비를 이용해서 조조를 막기위한 것이다.

 

33. 마등이 동탁을 토벌하다: 마등과 동탁은 한편이었다. 동탁토벌에 참가하지 않았을 뿐아니라, 동탁을 도와 장안을 지켰다.

 

34. 마초가 병사를 일으키다: 실제는 부친을 배신하고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마등이 조조를 죽이려다 피살당하고, 그래서 마초가 부친의 복수를 위하여 병사를 일으킨 것이 아니라, 마초가 병사를 일으켜 조조에 대항한 것이다.

 

35. 촉(蜀)을 취하다: 이것은 법정(法正) 방통(龐統)이 완성한다.

 

36. 초선: 존재에 의문. 단, 왕윤은 확실히 동탁과 여포가 반목하도록 한 시녀를 가지고 있었다.

 

37. 한수(韓遂) : 조조가 한수의 나이를 물었을 때 40이라고 하였는데, 실제 한수는 이미 70여세였다.

 

38. 관우단도회(關羽單刀會): <<삼국지노숙전>>, 위요의 <<오서>>등을 보면, 관우가 노숙에게 가서 참석한 것이 아니라, 노숙이 관우에게 와서 참석한 것이다. "단도부회"의 영웅은 관우가 아니라 노숙인 것이다. 그런데 삼국연의에서는 이를 뒤집었다. "단도(單刀)"는 군사들의 병기인 패도이고, 큰 칼이 아니다.

 

39. 관우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매우 좋지 않았다 : 기록상 마초, 황충, 미방, 부사인, 유봉, 맹달, 요립등과 모두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나온다.

 

40. 관우는 여색을 밝혔다: "조조는 유비와 여포를 하비에서 포위공격할 때, 관우가 조조에게 여포의 처를 달라고 요청했고, 조조는 허락했다. 격파할 때쯤이 되자 관우가 여러번 조조에게 확인하자, 조조가 의심이 들어 먼저 보고는 남겨두었다. 관우는 마음이 불안해 했다"

 

41. 관우가 맥성에서 늠름하게 투항을 거절하다: 사실은 손권이 사람을 보내어 투항하라고 하였고, 관우는 가짜로 투항하듯이 성에 깃발을 꽂아두고는 다른 문으로 도망쳤다. 그러다 여몽이 이를 알애채고는 중도에 막고 죽여버렸다.

 

42. 오호장: 유비는 오호대장을 임명한 바는 없다. 단지 5명의 직위가 가장 높았을 뿐이다. 관우(전장군), 장비(차기장군), 마초(표기장군), 황충(후장군), 조운(익군장군). 관우가 위나라를 토벌한 때로부터 4년만에 관, 장, 마, 황이 모두 죽는다.

 

43. 후출사표: 후세인의 위작

 

44. 칠금맹획: 허구. 역사상 제갈량이 남정한 일은 있고, 맹획이라는 사람은 있음. 칠종칠금에 대하여 삼국지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고, 배송지의 인주에 한진춘추에서 '칠금칠종'이라는 말이 나올 뿐 구체적인 기재는 없다. 맹획은 나중에 촉의 어사중승으로 문관이고 무관이 아니다.

 

45. 공명벌위(孔明伐魏, 공명이 위나라를 토벌하러 간 것): 실제는 7번이 아니라, 5번이다. 그리고 패배했을 때는 삼국연의때보다 훨씬 비참했다.

 

46. 화소상방곡(火燒上方谷) : 순전한 허구

 

47. 육출기산(六出祁山): 제갈량이 위나라를 토벌한 것은 5번이고 그 중 첫번째와 네번째만 기산에 이르렀다.

 

48. 목우유마: 사실 목우는 독륜차(바퀴 하나인 차), 유마는 지금 자주 보는 사륜차(바퀴 네개 달린 차)이다. 일설에서는 목우가 사륜차이고 유마는 머리가 뾰족한 배라고도 한다.

 

49. 제갈량의 용병술: 제갈량은 내정은 잘했지만, 전투는 잘하지 못했다.

 

50. 죽은 제갈이 산 중달을 쫓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갈량의 계책이 아니라, 사마의가 의심이 많아서 그랬던 것이다. 이것을 먼저 기재한 '한진춘추'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제갈량이 죽은 후, 촉나라 군대는 비밀리에 장례를 치르지 않고 철수했다. 사마의가 알아차리고 추격군을 보내어 추격했다. 두 군대가 서로 가까워 졌을 때, 촉군의 장사 양의는 촉군에게 깃발을 돌리고 북을 울리며, 위나라 군대쪽으로 향하게 하였다. 사마의는 감히 더 핍박하지 못하고, 병사를 물리었다"

 

51. 동관대전: 전투는 확실히 치열했다. 그러나 승리자는 위나라 군대였고, 조조가 수염을 자르고 옷을 버리고 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었다.

 

52. 조진: 낙양에서 병사함. 제갈량의 편지때문에 죽은 것이 아님.

 

53. 왕랑: 역시 228년에 병사함. 군대를 따라 나오지도 않았음. 제갈량의 욕을 듣고 죽은 것이 아님.

 

54. 마초와 장비의 싸움: 마초는 몰래 유비에게 편지를 보내어 투항한 것이고, 두 사람이 싸운 것이 아님.

 

55. 공성계: 허구. 제갈량이 한중 양평에 병사를 주둔시켰을 때, 사마의는 형주도독이었다. 제갈량은 현재의 섬서성 안강현에 있고, 사마의는 하남성 남양에 이쓴데, 이렇게 먼데서 무슨 공성계를 쓰겠는가.

 

56. 위연의 반란: 사실 위연이 피해자이다.

 

57. 방통: 방통은 낙봉파에서 죽은 것이 아니다. 낙성을 공격하다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이다.

 

58. 황충과 관우의 전투: 허구임. 정사에는 관우가 황충이 늙었다고 싫어한 것으로 기재됨.

 

59. 연령: 주요인물의 연령을 나이 많은 사람부터 언급하면, 조조 - 여포 - 조운 - 관우 - 유비 - 장비 - 노숙 - 주유 - 제갈량 - 손권 - 육손이다. 일부자료는 조운이 유비보다 최소한 2살은 많았다고 되어 있다. 적벽대전때 조운은 이미 50정도였다. 장소는 손견보다 1살 어렸고, 관우는 유비보다 1살 많았다.

 

60. 주창 : 역사상 주창이라는 인물은 없음. 허구의 인물.

 

61. 유종: 형주를 바친 후, 조조에 의하여 청주자사로 임명되고 제후에 오름. 피살되지 않음. 나중에 조조는 그의 공적을 기려 간의대부를 내림.

 

62. 이릉지전: 유비는 겨우 4만여명을 데려갔고, 육손은 손권으로부터 5만병사를 받았다. 그래서 다수로 소수를 이긴 것이다.

 

63. 무기: 관유가 사용한 것은 도(刀)가 아니라 장모(長矛)였다. 여포의 무기도 장모였고, 장비의 무기도 일반 모(矛)였다. 청룡언월도, 방천화극, 장팔사모는 모두 소설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64. 적토마: 여포가 탄 것은 맞다. 그러나, 그 후에 행방은 모른다.

 

65. 유황숙: 유비는 황숙이 아니다. 그저 유비가 한황실의 정통이고, 조조가 도적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유비가 유황숙이면, 유표는? 유장은?

 

66. 손상향: 역사서에는 그냥 성만 나와 있다. 손.

 

67. 장비의 자: 익덕(翼德)이 아니라 익덕(益德)이었다.

 

68. 장비 : 장비는 실제 거친 사람이 아니었다. 서예에 뛰어났고, 그림에도 뛰어난 문무를 겸비한 인재였다.

 

69. 관흥: 그저 문관이었다. 젊을 때 죽었다.

 

70. 관흥복수: 이릉지전에 관우의 아들 관흥과 장보의 아들 장포가 나서는 것을 되어 있으나,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촉기>>의 기재에 의하면 위나라 장수 방덕의 아들 방회가 종회, 등애를 따라 촉을 쳤을 때, 방덕이 관우에게 피살된 원한을 갚기 위하여 관씨집안을 몰살시켰다고 한다.

 

71. 장포: 일찌기 요절했음.

 

72. 관색: 허구인물

 

73. 관평: 관우의 친아들. 삼국연의는 의자로 바꿨음.

 

74. 진궁이 조조를 체포하다: 진궁은 원래 계속 조조의 수하였다. 그리고 조조를 따르기 시작한 것이 191년부터이다. 그러므로 189년에 조조를 붙잡았다는 이야기는 허구이다.

 

75. 유비유언: 유비가 죽을 때 제갈량과 이엄 두 사람에게 후사를 맡김.

 

76. 주유: 삼국연의는 주유에 대하여 속이 좁은 자로 쓰고 있으나, 다른 사람의 평가는 그렇지 않다. 유비는 조유를 "기량이 크다"고 하고 있고, 정보는 주유를 평가할 때"공근과 교유할 때 술을 마시더라도 취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적었다. 진수는 주유를 "성격과 도량이 넓었다"고 적었고, 홍매, 소동파등의 사람들도 주유의 인품을 높게 평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