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곽말약(郭沫若)이 쓴 <<중소우호동맹조약4주년기념일에 북경신화라디오에서 전국에 방송한 글>>에서 요약한 것으로 인민일보에 1950년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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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왜곡중인 또 하나의 사례는 외몽고 독립에 관한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 나는 몇 마디 더 하고 싶습니다. 반동분자는 중국인의 대한족주의의 감정을 선동하고자 기도하고 있고, 몽고인민이 자주적인 인민국가를 건립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묻겠습니다. 외몽고가 중국에 부속되었을 때, 중국인은 외몽고인민에게 도대체 어떤 복리혜택을 주었습니까? 일부 중국의 침략주의자가 병사를 보내어 외몽고를 공격하고, 정치경제적인 측면에서 외몽고인민을 압박하고 이로 인하여 외몽고인민들이 중국에서 벗어나 독립하려는 요구를 하게 된 것이 아닙니까? 우리 자신이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이중 압박하에서 거의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었는데, 설마 외몽고인들에게 우리를 따라서 순장하자고 얘기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이중압박하에서 약간의 깨달음이 있는 사람들은 해방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외몽고사람들은 이러한 깨달음을 얻어서는 안된다는 것이고, 해방을 요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까?
솔직히 얘기하면 외몽고인민들은 우리보다는 패기가 있고, 우리보다도 먼저 깨달았습니다. 우리보다도 훨씬 분명하게 사회주의 소련과 친구가 되었으며, 이로 인하여 도움을 받고, 우리보다 먼저 해방되었습니다. 우리는 만일 대공무사(大公無私)한 입장에 선다면, 우리는 당연히 외몽고인민에게 사죄하고 외몽고인민에게 경례하고 외몽고인민으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어찌 미제국주의와 장개석의 뒤를 따라서 소련에 대하여 분개해야한단 말입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외몽고가 독립함으로써 소련에서는 도대체 무엇을 얻겠습니까. 우리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이웃나라를 얻는 것이 아닙니까.
문제는 바로, 외몽고가 우리를 벗어난 후에, 외몽고인민이 더욱 행복해질 것이냐는 점이라고 해야합니다. 사실을 보면 알수 있습니다. 외몽고인민은 더욱 행복합니다. 몇년전 국민당정부가 파견하여 쿠룬으로 가서 국민투표를 감시한 포(包)씨성의 한 사람은 일을 마치고 중경으로 돌아왔는데, 신문에서 담화내용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쿠룬 거리는 거의 모든 집집마다 모두 무선전신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국민당이 한 말입니다. 그리고 신문을 찾아보면 나오는 것입니다. 해방을 얻기 전에, 외몽고인민들의 생활화 생산은 모두 이미 충분히 올라가지 않았습니까?
인민중국과 인민몽고는 이후 반드시 친밀한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종주국과 속국이라는 낙후한 관념을 더 이상 고집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전혀 영광스럽지 않은 것입니다.
금년 4월, 우리 중국대표단은 유럽을 갔습니다. 체코의 프라하에서 세계평화옹호대회에 참가했을 때, 외몽고대표단의 단장인 치등파얼 선생은 일찌기 우리 혁명전쟁의 휘황한 승리에 대하여 우리에게 축하를 보냈습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가 원동에서 패자로 군림하고자 할 때, 몽고 인민은 편안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오늘은 민주적인 중국이 동방의 맹주가 되니 우리 몽고인민은 안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몽고친구들의 이런 솔직한 풍모를 보십시오. 우리도 마찬가지로 솔직한 기개를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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