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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곽말약)

곽말약은 왜 진시황의 용모를 깍아내렸는가?

by 중은우시 2008. 12. 16.

작자: 미상

 

계흉(鷄胸, 닭가슴), 마안비(馬鞍鼻, 함몰코)...곽말약(郭沫若)이 묘사한 진시황은 이런 모습이었다.

 

중국의 시대를 긋는 군주인 진시황은 짧은 49년의 생애를 전설적으로 살았다. 기화가거(奇貨可居)의 이야기에서 사망여행까지, 그의 발걸음은 궤이하고, 이상하며, 논쟁으로 충만하다. 그의 몸에는 어떤 문제이든 표준답안이 없는 것같다. 논쟁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논쟁이 너무 많아서, 진시황에 대하여는 그에게 발생했던 어떤 일도 수수께끼가 되고 만다. 수수께끼중 어떤 것은 아마도 영원히 답안을 찾지 못할 것이다. 다만 어떤 답안은 이미 나와 있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아직까지 안개속에 가리워져 있다. 예를 들어, 진시황의 용모가 그것이다.

 

전백찬(伯贊)은 <<진한사(秦漢史)>>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후세인들이 상상하는 것처럼 엄숙하고 무섭게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약간은 모친으로부터 유전을 받았다면, 그는 영준하고 멋있는 청년이었을 것이다"

 

곽말약은 <<십비판서(十批判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기)에서 말하는 앞의 4가지 항목은 모두 생리적인 결함을 나타낸다. 특히 '지鳥응(摯烏膺)'은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계흉(닭가슴)'이다. 연골증의 하나의 특징이다. '봉준(蜂準)'이라는 것은 바로 '마안비(함몰코)'이다. '시성(豺聲)'이라는 것은 기관지염을 나타낸다('장목(長目)은 '마목(馬目)'일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아야, '봉', '지조', '시', '호랑'등의 동물과 같은 류가 되는 것이다. '마목'은 안구돌출을 의미한다). 연골증환자라면 뼈의 발육이 비정상이고, 그리하여 가슴과 코가 모두 변이가 일어난다. 기관지염 혹은 기관지염은 자주 발병하는 것이다. 이 세가지 징후를 보면 연골증을 앓았다고 진단할 수 있다. 

 

한 사람의 용모에 대하여, 이처럼 천지차이의 평가를 내릴 수 있는가? 그리하여 진시황이 어떻게 생겼느냐의 문제는 그의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서로 양극단을 달리며, 논쟁이 계속되는 이슈이다. 결국 이 문제는 정규의 학술대회에서 논의하는 '천고의 수수께끼'가 되어 버린 것이다.

 

진시황이 못난이였다는 글의 근원은 단 하나이다. 바로 곽말약의 <<십비판서>>이다. 글 내용이 일부 독자의 엽기심리와 일부 문인의 직업심리에 부합하기 때문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퍼나르는 사람들은 곽말약의 이름 이외에 '위대한 사학가 사마천의 기록에 따르면'이라고 떠벌이거나, '당시 사람 위료(魏)의 관찰에 따르면'이라고 하여 근거를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진지하게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진시황이 못난이'라는 것이 곽말약이 말한 것인가? 아니면 사마천과 위료가 말한 것인가?

 

사마천의 <<사기. 진시황본기>>에 기록된 위료의 원말은 이렇다: "진왕의 사람됨은 '봉준', '장목', '지조응', '시성', 은혜를 베푸는데 박하고 호랑(虎狼)의 마음을 지니고 있다"

 

"봉준(蜂準)"은 당나라때부터 통행되는 <<사기. 삼가주>>집해에 서광은 이렇게 말한다: "봉"이라는 것은 "융(隆, 높다)"이라고도 한다. 봉은 채(, 전갈류의 독충)이다. 고비(高鼻, 높은 코)이다." <<태평어람>>에서는 직접 "융준"이라고 썼다. 이로써 볼 때, 고인들은 "봉준"을 "높은 코"라는 의미로 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곽말약이 "봉준은 분명히 마안비"라고 썼는데, 마안비라는 것은 어떤 코인가? 코의 중간부분이 함몰되어 있는 코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얼굴이 얼마나 못생겼겠는가?

 

"장목(長目)"은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가늘고 긴 눈이다. 또 다른 해석이라면, 고인들은 "장"과 "대(大)"를 같은 뜻으로 썼으므로 큰 눈이다. <<태평어람>>에는 직접적으로 "대목(大目)"이라고 썼다. 가늘고 긴 눈이든, 큰 눈이든 어쨌든 이러한 눈이라면 아름다운 눈이라고 봐야 한다. 곽말약의 해석은 "장목"은 아마도 "마목"일 것이라고 본다. 이렇게 해야 다른 표현이 동물에서 따온 것과 맞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마목은 안구돌출을 의미한다. 고인들은 "봉요삭견(蜂腰削肩, 벌처럼 가는 허리와 좁은 어깨, 미인을 형용하는 말이다)"라는 말을 썼는데, 동물에 대한 형용과 다른 형용사가 같이 쓰였다. 그런데, 곽말약은 굳이 천년간 내려오는 글자를 고쳐가면서까지 진시황을 깍아내리려고 했다. 그리고 동물의 눈이라면 '봉목'도 있고 '호목'도 있는데, 왜 굳이 '마목'인가? 그것에 대하여도 곽말약은 아무런 해석을 해주지 않는다. 어쨌든 그는 상상력이 너무나 풍부했던 것같다.

 

"지조응(摯鳥膺)"은 사전을 아무리 뒤져봐도 우리에게 얘기해주는 것은 '지조'라는 것이 흉맹한 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 독수리와 같은 것이다. 고인들은 "맹수는 무리를 짓지 않고, 지조는 쌍을 이루지 않는다" 혹은 "지조가 무리를 이루지 않는 것은 전생부터 그러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사기. 진시황본기. 삼가주>>를 보면 "지조는 '골(, 송골매)'이다. 가슴이 앞으로 튀어나와서 성격이 사나운 것을 말한다" 이는 마치 눈덮인 산꼭대기에서 오만하게 내려다보는 매와 같이 다른 무리들과 어울리지 않는 것을 표현한다. 그런데, 곽말약은 이것을 가지고 상상력을 발휘한다. 매가슴=닭가슴=연골증!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매는 닭보다 낮게 날 수 있지만, 닭은 매보다 높게 날 수 없다" 매와 닭은 새중에서 양극단이다. 그런데, 곽말약은 억지로 뒤집는데는 재주를 발휘하고 있다. 우리가 호기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만일 곽말약이라면, "호배웅요(虎背熊腰, 호랑이등과 곰허리, 건장한 남자의 몸을 가리킴)"를 가지고 어떻게 설명할까?  혹시 굵은허리 = 인슐린억제 = 고혈압 = 신진대사종합증으로 진단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진수아마(首蛾眉, 새끼매미의 머리와 같이 네모나고 넓은 이마 및 누에와 같이 길게 휜 눈썹, 미녀를 형용하는 것임)"를 가지고 아마도 기형적으로 작은 머리와 털없는 눈썹이라고 말하지는 않을까?

 

"시성(豺聲)"이라는 것은 승냥이의 소리를 말한다. 승냥이가 어떤 소리를 내는가?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상상을 해보면 잔인하고 큰 소리, 혹은 허스키한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곽말약처럼 이를 '기관지염'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 당연히 곽말약은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비록 승냥이 소리를 들은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기관지염환자의 목소리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기관지염환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승냥이의 소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만의 하나라도 있을까?

 

곽말약은 그리고 다섯째 항목을 빠트렸다. 그것은 "소은이호랑심(少恩而虎狼心)"이다. 만일 사람의 심장이 호랑이의 심장과 같다면 그것은 분명히 선천성 심근경색이 아닐까?

 

새나 동물을 가지고, 사람의 용모를 비유하는 것은 관상학에서 많이 쓴다. 관상술은 사람의 모습을 "사형, 인형, 호형, 상형, 서형, 성성형, 낙타형, 표형, 마향, 원형, 녹형, 려형, 장형, 리형, 후형, 구형, 양형, 서형, 토형, 별형, 귀형, 사형, 란형, 주작형, 앵무형, 학형, 응형, 공작형, 연형, 합형, 작형등과 같이 이름을 붙여 귀천을 구분했는데, 거의 견강부회이다. 그리고 일부 기관의 형상을 새나 동물에 비유한다. 자주 보이는 것은 응비, 안함, 호두, 서박, 호배, 웅요, 원비, 연견, 사비, 봉안, 아미, 장두, 서목, 낭목, 저목, 시연, 후시등이다. 움직임을 새나 동물에 비유하기도 한다. 자주 보이는 것은 호보, 랑구, 랑탄, 아행, 압보, 사행, 서찬, 시성등이다. 예를 들어, <<태펑신감>>권1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오리걸음(鴨步)과 거위걸음(鵝行)은 부귀하고 집안이 번영한다; 뱀처럼 걷는 것(蛇行)은 사업이 기울어진다; 뱀가슴에 참새근육이면 빈곤하고 천하다." 만일 곽말약의 수법대로라면, 중국인들은 모두 의학박물관에나 보존되어야할 사람들이다. 모두가 표본이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곽말약의 이러한 독특한 억측방법은 한두번도 아니다. 그는 일찌기 모계사회를 설명하면서 주나라에 존재하였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고공단보(古公亶父), 내조주마(來朝走馬), 술서수호(率西水滸), 지어기하(至於岐下), 애급강녀(愛及姜女), 율래서우(聿來胥宇)"라는 문구를 해석하면서, "고공이 말을 타고, 강물을 따라 오다가, 기산의 아래에 이르러, 강씨성의 여추장을 만나서, 그의 남편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이 바로 모계사회였다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라고 하였다. 원문의 "강녀"를 "강씨성의 여추장"으로 변모시킨 것만으로도 곽말약의 마술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남자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서 그 곳의 여자가 마음에 들어 결혼해서 사는 것이 모계사회와 무슨 관계인가? 그렇다면 세상에 증명못할 일이 무엇이 있는가?

 

곽말약의 추론방식을 이해하고 나면, 우리는 또 다른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왜 학술평론에서 곽말약은 굳이 용모에다가 그렇게 많은 기교를 쏟아부었는가? 사실 곽말약이 이렇게 한 것이 처음도 아니다. 일찌기 1921년, 창조사와 문학연구회간의 논쟁때도, 그는 모순(矛盾)을 인신공격한 바 있다. 그의 몸이 작고, 뻐드렁니라는 것을 빗대어 '쥐새끼'같다고 모욕한 것이다. 이로써 볼 때 이것은 그가 '적'에 대하여 자주 쓰는 수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또 문제가 있다. 2천년전의 진시황은 곽말약과 원수질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이렇게 진시황을 미워했을까? 그것은 곽말약의 <<십비판서>>의 후기를 보면 명백하다. 그는 정경(程憬)의 <<진대정치의 연구>>라는 글을 읽어보았는데, "정정의 글은 영정(진시황)을 칭송하는 것이다. 그것은 곡학아세이다. 의견이 나와는 정반대이고, 조금도 신선한 점이 없다"라고 썼다. <<십비판서>>는 1945년 중경에서 썼다. 당시 국민당파의 문인은 진시황을 칭송하는 글을 썼는데, 그것은 당연히 '아세(阿世)' 즉, 장개석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쓴 것이다. 그래서 곽말약은 마찬가지로 글을 써서 진시황을 욕했는데, 그것은 바로 장개석을 욕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보면 진상은 명백하다. 곽말약이 이때 진시황을 욕하였다가, 나중에 진시황을 칭송한 것에서 진정한 대상은 진시황이 아니었다. 이는 그가 등소평을 욕하다가 등소평을 떠받드는 글을 쓰고, 강청을 떠받들다가 강청을 욕하는 글을 쓴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저 기교가 고명한 대자보일 뿐이다. 학술은 그저 이용되는 수단이었다.

 

진시황의 용모는 사마천이 기록한 위료의 말에 따르면, 코가 높고, 눈이 크며, 고개를 들고,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고, 목소리가 커다랗다. 그리고 기질이 강맹하고 호랑이 매와 같은 사나이이다. 그는 진정한 양강(陽剛)형의 미남자였던 것이다.

 

진나라때 후계자를 정하는데 있어서 적장자계승제를 엄격히 따르지 않았다. "용맹한 자를 골라서 후계자로 삼았다" 곽말약이 말한 바와 같은 인물 즉 괴물에 장애자라면 어떻게 하더라도 태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진시황의 모친은 유명한 미인이다. 중국의 유명한 미인들은 대부분 자식을 두지 못했다. 저명한 미인의 아들로서 황제에 오른 것은 아마도 진시황이 유일할 것이다. 여기에 진장양공은 왕족자제로, 유전인자가 우수했다. 그리고 화양부인을 처음 만났을 때, 화양부인은 그를 좋아한다. 원래 여자들은 외모를 중시하는데, 장양왕이 추악했다면, 아무리 초나라옷을 입었더라도 소용이 없었을 것이다. 여불위도 큰사업을 한 사람이다. 그러니 아주 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귀족들과 교류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종합적으로 본다면, 진시황의 용모는 분명히 뛰어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