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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흥24

류보(劉波): 비극의 호남천재 글: 청년독파(靑年讀吧) 강호에 전설은 끊이지 않는다. 마치 장강의 파도처럼 한 물결이 지나가면 다음 물결이 밀려온다. 그렇게 물결은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무수한 물결들 중에서 호남사람 류보는 비교적 돋보이는 것이었다. 그는 요란하게 나타나서 비참하게 떠났다.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면서 탄식했다. 아래에서 이 호남의 천재의 비극적이고 희극적인 인생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주저우신동(株州神童) 류보는 후난성(湖南省) 주저우(株州) 사람으로, 1964년 7월에 태어났다. 집안형편은 보통이었고, 부친은 주저우전력차량공장의 기차운전사였으며, 모친은 주저우기차역의 유지보수노동자였다. 류보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공부를 좋아했으며, 학업성적이 아주 우수했다. 1978년 대학입시가 부활된 다음 해, 나이 겨우 14살의.. 2023. 2. 3.
원세개(袁世凱)는 왜 국민당(國民黨)을 해산시켰을까? 글: 투원(套元) 1913년 11월 4일, 북양군경(軍警)이 대거 출동하여, 국민당 본부를 포위하고, 중화민국 대총통 원세개가 서명한 대총통령을 읽었다. 반란의 죄명으로 국민당을 해산하고, 모든 국민당 소속의 의원과 가족은 즉시 북경을 떠나라는 것이다. 이 소식이 나오자, 북경성은 일대 혼란에 빠진다. 각 기차역과 교통로에는 국민당 소속의원과 가족들이 북경을 떠나는 모습이 보였다. 국민당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은 것인가? 일찌기 최대의 당이 왜 졸지에 해산당하게 되었는가. 1. 송교인(宋敎仁) 암살, 국민당의 명성에 금이 가다. 1912년 2월 12일,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애신각라 부의는 퇴위조서를 반포하고, 봉건왕조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손중산을 대표로 하는 혁명당과 북양군벌의 영수인 원세개는 함께 .. 2022. 11. 8.
동림당(東林黨): 절사(節士)는 국가에 얼마나 중요한가? 글: 정만군(程萬軍) 당대의 사학애호가들 중에는 동림당을 무시하고 오히려 위충현을 크게 칭찬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동림당이 잘난체 하다가 나라를 망쳤고, 위충현은 현실적으로 나라에 이롭게 했다는 것이다. 이는 기실 용속사관(庸俗史觀)이 빚은 결과이다. 한 국가의 정.. 2018. 12. 5.
송교인 암살사건의 진상을 파헤친다 글: 대중일보 1913년 3월 20일 밤, 후닝(滬寧)기차역은 평소처럼 사람들로 붐볐고, 인파는 끊이지 않았다. 기차가 내는 기적소리와 함께, 송교인은 배웅나온 황흥, 우우임 그리고 요중개등과 손을 흔들어 작별하고, 검표소로 들어갔다. 바로 이 때,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일이 벌어진다. 검.. 2014. 4. 4.
국민당의 곡씨(谷氏) 삼형제 글: 유계흥(劉繼興) 국민당의 "5대", "6대", "7대"회의에서 곡씨삼형제 - 곡정륜(谷正倫), 곡정강(谷正綱), 곡정정(谷正鼎)은 모두 국민당 중앙집행위원이 되었다. 삼형제가 동시에 국민당 중앙집행위원에 당선된 것은 국민당 역사상 유일무이한 경우이다. 당시에 이런 말이 유행했다: "국문.. 2014. 2. 18.
송교인: 부서진 헌정꿈 글: 김만루(金滿樓) 신해년에 혁명당(革命黨) 사람들은 일심동체가 아니었다. 그중 손중산 일파와 송교인 일파는 이념에서 엄중한 이견이 있었다. 일찌기 동맹회 시절에 황흥(黃興)과 손중산(孫中山)간에 미래 국기(國旗)를 다투는 사건이 있었다. 송교인은 손중산이 "평소에 솔직히 털어.. 2014. 2. 9.
원세개시대의 언론자유 글: 부국용(傅國涌) 송교인이 졸지에 암살당하고, 새로 탄생한 민국에는 파란이 일었다. 손중산은 무력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했고, 금방 원세개의 우세에 밀려 무력으로 패배당한다. 민국의 창업자인 손중산, 황흥은 다시 망명길에 들어선다. 장태염(章太炎)은 북경에 연금되어 있었.. 2013. 12. 22.
손중산과 황흥은 왜 결렬되었는가? 글: 김만루(金滿樓) "2차혁명"이 실패한 후, 황흥(黃興)은 도쿄(東京)로 가서 손중산(孫中山)과 만난다. 양대 혁명영수가 다시 만났을 때, 서로 마주하며 말이 없었다. 그들의 심정이 얼마나 침중했을지는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그후 "2차혁명"이 실패한 원인을 검토할 때, 두 영수간에는 .. 2013. 12. 4.
송교인식의 정치가는 중국을 구할 수 없다. 글: 정만군(程萬軍) 송교인암살100주년을 맞이하여 무수한 찬양의 글을 볼 수 있다. 다시 한번 중국인의 오래된 고질을 느낄 수 있었다. 누가 좋다고 하면 무한히 끌어올린다. '호인'의 과실과 반성을 얘기하는 글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신해혁명후의 중국제일정당의 실제창시자로서 송교.. 2013. 11. 16.
신해혁명공신 진기미(陳其美)는 왜 암살당했는가 글: 유의경(劉宜慶) 인기리에 상영된 영화 <건당대업>에서 네위안(聶遠)이 연기한 진기미는 나오자마자 주저만지(躊躇滿志)한 모양으로 나타나서, 상해도독으로 추천받는 의식에서, 도성장(陶成章)반대에 부닥치자, 권총을 꺼내어 총성을 낸다. 이 희극화된 모순의 충돌은 진기미.. 2013. 8.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