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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13

나는 왜 고향 산시(山西)로 돌아가지 않는가? 글: 시정(柴靜) 나는 1993년 대학에 입학하면서 산시(山西)를 떠났다. 기차는 3시간가량을 달려고 후난(湖南)에 도착했다. 새벽에 창문의 커튼을 올리고 나는 깜짝 놀랐다. 작은 호수가 있는데 그 안에 연꽃이 가득했던 것이다. 이런 게 세상에 정말 있었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아이의 마음으로 그때 결정했다. 다시는 산시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바로 그 해에, 중국은 전기용석탄외의 석탄가격을 자유화했다. 나는 대학을 가지 않은 친구가 있었는데, 부친와 함께 사업을 했다. 당시 석탄1톤에 17위안정도였는데, 그후 10년간 1톤에 1,000여위안으로 급등한다. 석탄,코크스는 이때부터 크게 발전하여, 산시의 GDP에서 70%를 차지하게 되고, 가장 중요한 지주산업이 된다. 2003년 설날 나는 린펀(臨汾)기차역.. 2023. 6. 12.
<이십사사(二十四史>에 왜 <서하사(西夏史)>는 없을까? 글: 서소봉(舒小峰) 서하왕릉을 갔을 때는 이미 초가을의 황혼녘이었다. 여행객들은 점점 떠나고, 능원은 조용했다. 서하왕릉은 필자가 영하(寧夏)여행의 주요목적지중 하나였다. 서하의 개국황제 이원호(李元昊)의 묘 앞에서, 천년전의 그 신비왕조가 이때 나와 지척거리에 있어서 손만 .. 2018. 12. 4.
왜 황하는 이름이 하나인데, 장강은 구간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릴까? 글: 정정(丁丁) 중국경내에 가장 긴 두 개의 하류가 있다. 바로 장강(長江)과 황하(黃河)이다. 이 둘은 중화민족의 모친하(母親河)로 불린다. 기실 장강과 황하를 제외하고 중국에는 무수한 하류가 있다. 그들도 기실 중화민족의 모친하이다. 바로 무수한 크고 작은 하류가 중화 각민족을 .. 2018. 3. 8.
공리주의역사관: 악비와 문천상을 민족영웅에서 몰아내다. 글: 조아도(趙亞濤) 1 12세기, 금나라군대가 황하를 넘고, 대송왕조는 순식간에 역사존망의 벼랑끝에 섰다. 송휘종,송흠종 두 황제는 왕공귀족을 이끌고 망국노(亡國奴)로 전락한다. 그러나 황하양안의 인민대중의 마음 속에는 여전히 대송왕조가 있었다. 상주부(相州府) 탕음현(湯陰縣)의.. 2018. 1. 23.
유방은 왜 낙양을 수도로 정하지 않았는가? 글: 섭지추(葉之秋) 유방이 천하를 평정한 후, 일찌기 낙양을 수도로 삼으려고 생각했었다.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낙양은 서주초기부터 건설되었고, 동주이후에는 수도가 되었다. 그리고, 낙양은 천하의 가운데 위치하여, 사통팔달의 교통요지여서 지방각지의 관리가 중앙에 오기도 좋.. 2014. 4. 4.
관작루(鸛雀樓)의 누구 시가 가장 좋은가? 글: 정계진(丁啓陣) 산서 포주(蒲州, 지금의 산서 영제현)의 관작루는 높이 3층에 멀리 중조산(中條山)이 보이고, 황하(黃河)를 내려다 보고 있었으며, 당나라때의 명루(名樓)이다. 일찌기 많은 시인들이 올라가서 시를 읊었다. 지금 남아있는 당시(唐詩)중에서 최소한 다음의 9수는 관작루.. 2013. 11.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