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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후17

구익부인(鉤弋夫人): 한무제의 수수께끼같은 후궁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기원전87년 이월 십이일, 한무제는 병이 위중해졌다. 나이 겨우 8살의 유불릉(劉弗陵)을 황태자에 앉힌다. 태자를 세운 다음 날, 한무제는 사망하고, 유불릉이 황위를 승계하며 생모인 구익부인 조씨를 황태후로 추존한다. 사서에는 이 황태후 구익부인의 기록이 .. 2019. 1. 5.
자금성(紫禁城) 융종문(隆宗門)의 화살촉(箭頭) 글: 이대취(李大嘴) 북경고궁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간다. 만일 주마간산격으로 여행온 사람이라면 아마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융종문의 편액에는 화살촉이 하나 박혀 있다. 먼저, 우리는 융종문의 위치부터 살펴보자. 융종문은 고궁 건청문(乾淸門) 앞 광장의 서쪽에 동쪽의 경운문(景.. 2019. 1. 5.
여후(呂后)는 광견병으로 죽었는가? 글: 장계합(張繼合) 고대 중국에 3명의 국가통치권을 장악했던 여인이 있었다. 그녀들은 각각 여치(呂稚, 즉 여후), 무조(武曌, 즉 무측천)과 자희태후(慈禧太后, 서태후)이다.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여인들도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권력에 대한 욕마이 있고, 일단 정점에 도달하면 전.. 2018. 11. 7.
상관황후(上官皇后): 중국역사상 유일한 민며느리 황후 글: 역사변연(歷史邊緣) 민며느리(童養媳)는 가난한 집안의 계집아이를 어린나이로 장래 남편이 될 사람의 집에 보내는 것이다. 거기서 장래의 시집에서 일하며 갖은 고생을 다하게 되는 불행한 여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한나라황실에 민며느리가 있었다. 그녀는 바로 한소제(漢昭帝) .. 2018. 7. 19.
만귀비(萬貴妃)는 어떻게 성화제(成化帝)의 총애를 독점했을까? 글: 두문자(杜文子) 성화제 주견심(朱見深)의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인은 바로 만귀비이다. 그녀는 주견심이 일생동안 유일하게 사랑했던 여인이다. 만귀비가 죽은 후, 성화제는 심지어 이로 인하여 병석에 드러누워 반년후에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이를 보면, 만귀비는 주견심의 생명역.. 2018. 7. 4.
진시황릉의 허실(3): "황장제주(黃腸題湊)"는 7개월이면 완성할 수 있다. 글: 진경원(陳景元) 기실 원고(遠古) 시기의 묘장은 원래 아주 간단했다. <역.계사하>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상고혈거이야처(上古穴居而野處)" 원시인들은 모두 동굴안에 살고, 황야에서 생활했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그냥 들판에 버렸다. <맹자.등문공상>에는 "예전에는 그 가.. 2018. 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