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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복기사12

전국칠웅중 초(楚)나라가 대국(大國)이지만 강국(强國)은 아니었던 이유는? 글: 지식화화(知識火花) 고등학교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전국칠웅을 설명할 때 이렇게 설명했다: 진나라가 가장 강하고, 제나라가 가장 부유하고, 초나라가 가장 크다. 만일 면적만으로 보자면, 초나라는 확실히 전국칠웅중 가장 큰 나라이다. 불완전한 통계에 의하면 초나라의 국토면적은 150평방킬로미터에 달하고, 인구는 500여만에 이르렀다. 진나라가 최전성기때의 면적은 340만평방킬로미터에, 인구 2천만이다. 사진 삭제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진나라가 육국을 멸망시킬 때, 초나라의 영토면적은 진나라보다 작지 않았다. 전국시대 중기, 초나라의 면적은 진나라보다 훨씬 넓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초나라는 전국시대의 각국들 중에서 영토면적인 가장 넓은 제후국이었다. 초나라는 영토면적이 광대했을 뿐아니라, 인구도.. 2022. 9. 2.
장평지전(長平之戰): 백기(白起)와 조괄(趙括) 글: 리야Leon(狸爺Leon) 백기는 삼십여년간 진(秦)나라 장수로 있으면서, 70여개의 성을 공성하면서 한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후세인들은 그를 진나라의 왕전, 조나라의 염파, 이목보다 앞자리에 놓아 전국4대명장중 첫번째로 꼽았다. 그러나, 백기에게는 자랑스럽지 못한 이름이 하나 있다. .. 2016. 8. 12.
전국시대 4명의 변법가 글: 하림여추생(夏臨與秋笙) 전국시대는 풍운이 변환하고 백가쟁명했다. 그리하여 적지 않은 대담한 역사인물을 배출한다. 영웅이라고 말할 수 없을지는 몰라도, 역사에 이름을 남긴 호걸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얘기할 사람은 전국시대 4명의 변법의 달인들이다. 전국시.. 2015. 5. 6.
한단(邯鄲): 3천년간 이름이 바뀌지 않은 도시 글: 대취간역사(大嘴侃歷史) 중국의 전설중에서, 상고시대의 인류시조인 여왜(女媧)는 한단의 고중황산(古中皇山)에서 흙으로 사람을 빚었으며 연석보천(煉石補天)했다. 그녀의 신력은 이들 진흙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한단의 이름은 화하역사의 첫페이지부터 나타난다. 그.. 2014. 9. 7.
통만성(統萬城): 마지막 흉노 글: 김만루(金滿樓) 최근, 섬서 정변현(靖邊縣)의 통만성 유적지내에서 의외로 규모가 거대한 건축기지가 발굴되었다. 4면의 기울어진 토목구조형식은 당시 높은 누각식건축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추측으로는, 이 건축의 건조연대가 당말오대시기일 것이라는 것이다. 통만성은 이전에 .. 2013. 11. 10.
모택동의 선조는 모수자천의 모수(毛燧)인가? 글: 이자지(李子遲) 며칠 전에 북경에서 하북성 한단(邯鄲)시 문예이론가협회 주석 왕승준(王承俊)과 만나서, 일찌기 전국시대 조나라의 도성이었던 하단의 유구한 역사를 얘기했다. 한단은 중국역사문화명성이며, 중국성어전고의 고장이고, 중국산문의 도시이고, 중국태극의 고향이며, .. 2013. 11. 10.
"세 명의 총잡이" 이론과 전국칠웅의 쟁패 글: 과학송서회(科學松鼠會) 이렇게 가정해보자. 두 명의 총잡이 갑과 병이 있다. 그들이 생사결투를 벌이는데, 갑의 사격술을 비교적 정확하여 명중률이 80%이다. 그러나, 병의 사격술은 떨어져서 명중률이 겨우 40%에 불과하다. 만일 두 사람이 일정한 거리를두고 동시에 상대방을 향하여.. 2013. 8. 15.
한(漢)과 흉노(匈奴)의 "60년평화"는 누가 가져다주었는가? 글: 정만군(程萬軍) 역사는 한원제(漢元帝)를 평범한 군주(庸君)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그가 집권하던 시기에 한왕조의 외환은 날로줄어들고, 흉노가 적극적으로 한나라에 전쟁을 걸어오는 일은 아주 적었다. 한과 흉노간의 "60년평화"가 도래한 것이다. 이것은 무엇때문일까? 당연히, 여.. 2012. 9. 19.
척설오추(踢雪烏騅): 황제가 하사한 천리마 글: 안입지(安立志) 최소한 호복기사(胡服騎射)부터, 전마(戰馬)는 군인들이 전쟁을 수행하는데 중요한 반려였다. 북방의 흉노, 거란, 여진, 몽골등 민족이 중원을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심지어 유라시아대륙을 종횡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기병(騎兵)이 강대했기 때문이다. 이 전통은 냉.. 2012. 8. 19.
한단(邯鄲): 3천년간 이름이 바뀐 적이 없는 도시 글: 가운봉(賈雲峰) 왜황궁 인류의 역사가 처음 시작한 곳은 현대사처럼 확실하지 않고, 모호하며 신비롭다. 동방이건 서방이건 역사의 시작은 신화와 전설이다. 사람은 역사의 주인공이다. 사람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래서, 다윈의 ‘진화론’을 모르는 조상들은 사람을 만든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 2011. 6.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