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취간역사(大嘴侃歷史)
중국의 전설중에서, 상고시대의 인류시조인 여왜(女媧)는 한단의 고중황산(古中皇山)에서 흙으로 사람을 빚었으며 연석보천(煉石補天)했다. 그녀의 신력은 이들 진흙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어준다. 한단의 이름은 화하역사의 첫페이지부터 나타난다. 그곳은 전설에서 인류의 기원이 된 곳이다. 한단의 신기한 점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역사의 변화는 한단에서 시작되었다. 그것들은 원(源)과 류(流)의 관계이다.
기원전259년, 진시황 영정이 한단에서 태어난다. 그는 중국역사상 최초의 황제이고, 중국 내지 세계역사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에 유치했던 영아는 한단에서 출발하여 제후를 멸하고, 중국을 통일하여 불후의 공훈을 세우고, 만세에 추앙받는 '천고일제(千古一帝)'가 된다.
한단은 의문의 여지없이 인재를 배출한 도시이다. 문도(文韜)이건 무략(武略)이건 모두 그러하다. 그들중 호복기사(胡服騎射)를 주장하고, 고대 개혁개방, 변법도강의 선구자로 칭송받는 조무령왕(趙武靈王); 중국의 절반을 통일시키고, 가부(歌賦)를 할 줄 안 일대효웅 조조; 제갈량이 매번 자신을 그에 비유했고, 관중과 나란히 이름을 떨친 악의(樂毅); 공자사상에 대하여 비판적으로 승계한 대유학자 순자(荀子)' <시경>에 주석을 단 모장(毛萇); '백마비마(白馬非馬)'의 유심주의 궤변론으로 이름을 떨친 사상가 공손룡(公孫龍); 자천(自薦)으로 유명한 모수(毛遂)....그외에 '장상여(將相如)'의 염파(廉頗), 인상여(藺相如)는 모두 한단에 속한다; 전국4대명장중 한단은 2명을 차지한다(이목과 염파); 전국4공자중 1명인 평원군(平原君)도 역시 한단 사람이다. 그리고, 한단에는 두 명의 태극권의 종사(양로선, 무우양)이 있고, 2명의 경성경국의 미녀 조희(진시황의 생모)와 나부(羅敷)가 있다.
한단은 문화도시로서 또 다른 놀라운 점이라면 한단과 관련한 고사성어가 3000여개에 이른다는 점이다. "호복기사', '한단학보(邯鄲學步)', '완벽귀조(完璧歸趙)', '부형청죄(負荊請罪)', '황량미몽(黃梁美夢)', '모수자천', '지상담병(紙上談兵)', '위위구조(圍魏救趙)'등등 귀에 익숙한 고사성어는 모두 한단에서 나왔다.
거의 모든 시대에 한단은 풍부한 역사문화의 유적을 지니고 있다. 그것에는 신석기시대의 자산문화(磁山文化), 춘추전국시대의 조문화(趙文化), 조위시기의 건안문화(建安文化), 북제시기의 석굴문화....
<한서.지리지>의 견해에 따르면, 한단의 동성(東城) 아래에는 산이 하나 있는데 이름이 한산(邯山)이다. 단(單)은 끝난다(盡)는 의미이다. 한산의 끝자락이 바로 한단(邯單)이다. 그리고 성곽(城廓)이고, 성(城)의 이름에는 읍(邑)이 들어가므로, 그래서 '단(單)'자에 '읍(邑, 阝)을 붙여서, 한단(邯鄲)이 되었다.
신기한 점은 한단이 중국에서 유일하게 3천년간 이름이 바뀐 적이 없는 도시라는 것이다. 이는 중국역사상 유일무이한 경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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