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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릉왕10

남송(南宋)이 항주(杭州)를 도읍으로 정한 이유는....? 글: 심경독사(深更讀史) 정강지치(靖康之恥)이후 북송(北宋)이 멸망하고, 황족은 일망타진된다. 송휘종(宋徽宗)의 아홉째아들이자, 송흠종(宋欽宗)의 동생인 강왕(康王) 조구(趙構)만이 유일하게 그물에 걸리지 않은 물고기(漏網之魚)가 되었다. 그는 대신들의 옹립으로 하남(河南) 상구(商丘)에서 황제로 등극하니 그가 바로 송고종(宋高宗)이다. 그러나, 상구에서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금나라병사들이 쳐내려오기 때문에 황급히 양주(揚州)로 도망쳐야 했다. 다시 금나라군대가 양주로 쳐들어오자, 그는 다시 낭패하여 장강을 건너 진강(鎭江)을 거쳐, 항주(杭州)로 간다. 그러나, 항주도 안전하지 않았다. 1129년(건염3년) 구월, 금나라군대가 다시 장강을 건너 남으로 쳐내려온다. 송고종은 즉시 신료들을 데리고 남으로.. 2023. 2. 16.
금원사대가(金元四大家): 중국의 명의(名醫) 글: 원사문(苑嗣文) 금나라(1115년-1234년), 중국역사상 여진족이 건립하여 중국의 북방과 동북지방을 통치한 봉건왕조.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가 건립했다. 서로는 서하, 몽골등과 국경을 접했고, 남으로는 남송과 대치했다. 모두 10명의 황제, 119년간 존속했다. 천경4년(1114년) 금태조 완안.. 2020. 2. 27.
해족(奚族): 그들은 누구인가? 글: 왕덕항(王德恒) "구백해영(九百奚營)"은 요성종(遼聖宗)시기(983-1030)에 처음 설\되었다. 금(金)이 요(遼)를 대체한 이후에도 계속 존재한다. 금의 해릉왕(海陵王) 천덕(天德)2년(1150년)에 구백해영의 서쪽에 한주성(韓州城)을 건립한다. 구백해영의 명칭은 점점 사라진다. 다만 사서에서.. 2018. 8. 4.
강대했던 금(金)나라는 왜 신속히 멸망했는가? 글: 냉열군사사(冷熱軍事史) 12세기초, 완안아골타(完顔阿骨打)는 2500명을 이끌고 거병하여, 동북지구의 여진족 부락을 통일하고 대금왕조(大金王朝)를 건립한다. 대다수의 (반)유목민족과 마찬가지로, 여진인들은 용맹하고 무를 숭상하며 기마와 궁술에 능했다. 12년의 짧은 기간만에 그.. 2017. 2. 7.
악비의 "직도황룡(直搗黃龍)"에 대한 새로운 해석 글:오조양(吳朝陽) 모두 알다시피 "직도황룡"은 악비의 입에서 나왔다. 악비는 "곧바로 황룡부로 가서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성(二聖,송휘종과 송흠종)을 모셔오겠다"(<설악전전>에서 인용)는 웅심장지를 드러냈다. 이 성어의 근원중 하나는 <송사.악비전>에서 나왔다.거기의 원.. 2015. 2. 16.
역사상의 '술주정' 글: 독서삼매(讀書三昧) 술주정은 말 그대로 술을 마시고 하는 말이다. 평상시에 말하기 곤란하거나 말하기 어렵거나 심지어 말할 수 없는 말을 왕왕 술기운을 빌어서 얘기하게 된다. 그러나, 술주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마는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어떤 경우는 자신이 원하는 결과.. 2014. 5. 30.
대운하의 죽음 글: 홍촉(洪燭) 1980년대, TV다큐멘터리중에 <화설운하(話說運河)>라는 것이 있었는데, 옛날을 그리워하는 필치로 겅항대운하(京杭大運河)의 성쇠와 시말을 그렸다. 촬영팀이 대운하일선을 직접 다녀보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옛날이라면 그렇게 하려면 얼마나 많은 신발이 닳아 없.. 2012. 3. 18.
아구타(阿骨打) : 금나라의 시조 흑룡강성 아성시의 아구타 어용(御容)으로 알려진 마애석각 탁본 아구타(完顔阿骨打, 1068-1123)는 여진인이다. 그가 창건한 금(金)나라는 중국역사상 3가지 주요한 흔적을 남겼다: 요(遼)나라를 멸망시키고, 북송(北宋)을 멸망시키고, 북경(北京)을 처음으로 수도로 삼았다. 이중 첫번째 일은 아구타 자신.. 2008. 2. 15.
송효종(宋孝宗) : 10명의 처녀때문에 황제에 오른 인물 송효종 조신(趙昚, 1163-1189년 재위)은 남송(南宋)의 두번째 황제이다. 그는 원래 송고종(宋高宗) 조구(趙構)의 아들이 아니었고, 송나라의 개국황제인 송태조(宋太祖) 조광윤(趙匡胤)의 후손으로 조광윤의 둘째아들인 조덕방(趙德芳)의 6대손이며, 어릴 때 이름은 백종(伯琮)이었고 자는 원.. 2007. 10. 25.
해릉왕(海陵王) : 가장 가식적이었던 황제 어떤 사람은 살펴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사람이 있다. 금나라의 황제였던 '해릉왕'은 바로 보면 볼수록 재미있는 사람이다. 왜 그런가? 그는 아주 가식적인 행동을 잘하는 사람이었다. 젊었을 때, 해릉왕은 다른 사람과 달랐다. 한번은 다른 사람의 부채에 대련(對聯)을 써주었다. 내용은 이랬다. "대병.. 2007. 3.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