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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악비)

악비의 "직도황룡(直搗黃龍)"에 대한 새로운 해석

by 중은우시 2015. 2. 16.

글:오조양(吳朝陽)

 

모두 알다시피 "직도황룡"은 악비의 입에서 나왔다. 악비는 "곧바로 황룡부로 가서 금나라를 멸망시키고 이성(二聖,송휘종과 송흠종)을 모셔오겠다"(<설악전전>에서 인용)는 웅심장지를 드러냈다. 이 성어의 근원중 하나는 <송사.악비전>에서 나왔다.거기의 원문은 이러하다:

 

"비대희(飛大喜) 어기하왈(語其下曰): 직저황룡부(直抵黃龍府,여제군통음이(與諸君痛飮爾)"

악비는 크게 기뻐하며 그의 부하에게 말한다: 바로 황룡부로 가서 여러분들과 시원하게 술을 마시겠다.

 

사실상,이 성어는 <송사>보다 먼저 악비의 손자인 악가가 편찬한 남송 가정, 소정연간의 <금타수편> 및 <금타속편>에 나온다. 이 두책에는 세곳에 <송사>와 대동소이한 내용이 나온다. 즉, 이 책이 이 고사성어의 근원이다. 또한<송사.악비전>의 문자의 근원이기도 하다. 다만 3곳의 문자에서 쓴 것은 모두 "직도황룡(直到黃龍)"이지 "직저황룡(直抵黃龍)"이 아니다. 더더구나 "직도황룡(直搗黃龍)"은 아니다. "도(到)"와 "저(抵)"는 같은 뜻인 단어이다. 원시문헌을 보면 오늘날 널리 알려진 "직도황룡(直搗黃龍)"의 "도(搗)"는 분명 "도(到)"자가 의식적으로이든 무의식적으로이든 '와전'된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직도황룡'이 비록 현재 널리 알려져 있지만, 본문에서는 <송사>를 따라 "직저황룡"이라고 하기로 한다.

 

역사문헌에 근거하면, 악비의 금나라에 대한 작전목표는 명확하다. 그는 "옛 산하를 수복하는 것"뿐아니라, "정강지치를 설욕"하는 것도 있다. 악비는 <설악>에서 말하는 것처럼 반드시 금나라를 멸망시켜야한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수 있다. 다만, "북송의 영토를 회복"하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전쟁목표였다. "이성을 모셔오는 것"은 '국치를 설욕'하는 것의 표지이다. 이것은 남송 전국상하의 컨센서스이다. 그러므로 악비의 또 다른 중요한 전쟁목표가 된다. 이 전쟁목표는 악비가 남송의 군신들과 마찬가지로 항상 입에 달고 다니던 것일 뿐아니라, 마음 속으로도 확실히 그렇게 생각했고, 행동상으로도 그 목표를 향하여 매진했다.이 점을 명확히 해야만 우리는 "직저황룡'의 의미를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황룡"은 어느 장소를 말하는 것일까? 악비의 전쟁목표를 자세히 분석하면 답안은 다섯가지의 가능성이 있다: 첫째, 금나라의 수도(도성설), 둘째, 악비가 금나라의 수도라고 생각한 곳(오인도성설), 셋째, 금나라에서 정치,군사,경제적으로 가장 중요한 곳(대본영설), 넷째, 금나라에서 '이성'을 구금한 곳(구금지설), 다섯째, 악비가 이성이 구금되어 있다고 생각한 곳(오인구금지설)>

 

그러나, 역대이래로 악비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마치 '국치설욕'이 악비의 중요한 전쟁목표의 하나였다는 점을 잊은 듯하다. 그래서 위의 넷째, 다섯째 설을 가능한 답안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같다.

 

<사해(辭海)>의 "황룡(黃龍)"조를 보면, 이렇게 되어 있다: "부(府)의 이름....악비는 '직저황룡부, 여제군통음이'라고 하였는데, 황룡부는 널리 금나라 대본영을 가리키며, 실지를 수복하겠다는 결심을 나타낸 것이다. 일설에는 학비가 당시의 상경회녕부(上京會寧府)를 황룡성으로 오인했다고 한다. 소위 '직저황룡부'는 실제로 상경을 가리키는 것이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나온 것은 '대본영설'과 '오인도성설'이다. <사원(辭源)>에서는 그저 "남송대장 악비가 말한 '직저황룡부, 여제군통음이'가 여기를 가리킨다"라고만 했고, 아무런 해석도 달지 않았다. 저명한 송사전문가인 등광명 선생은 <'황룡통음'고석>이라는 글에서, 악비는 '연경(지금의 북경)'을 "황룡"이라고 오인했다고 인정한다. 기타 문헌에서도 모두 '도성설', '오인도성설' 및 '대본영설'에서 어렵게 선택하고 있다. 사실상 이 세가지 견해는 모두 성립되기 어렵다.

 

첫째, "황룡부"는 금나라의 "대본영"이 아니다. 입국초기, 금나라가 중시한 것은 근거지의 건설이다. 힘들여서 '황도(皇都)" 즉 "상경회녕부(上京會寧府)"를 경영한다. 요나라에 대한 전쟁이 진전되면서, 요양, 대동, 북경등 요나라의 옛 수도도 전후로 금나라의 '오경'이 된다. 그리하여 정치, 경제의 중심지가 된다. 다만, 황룡부는 시종 그저 여러 '군주(軍州)'중 하나였을 뿐이다. 주민도 겨우 1만여호에 불과했다. 이를 보면, 황룡부는 금나라의 '대본영'이 아님이 확실하다.

 

둘째, 황룡부는 금나라의 수도가 아니다. 이는 역사문헌을 뒤젹여보면 확실히 알 수 있고, 더 많은 말이 필요없다. 금나라에서의 지위가 높지 않으므로, '황룡부'를 가지고 '금나라' 혹은 '금나라도성'을 대체했다고 보는 것도 부정확하다.

 

셋째, 악비는 금나라의 수도를 '오인'하지 않았다. 북송말기, 송,금은 연합하여 요나라를 공격하고, 쌍방의 사절이 계속 오갔다. 북송이 마정, 조양사등은 여러번 금나라에 사신으로 간다. 그러므로, 송나라는 금나라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이뿐아니라, 선화7년(1125년), 허항종이 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고, <봉사행정록>을 써서 송나라에 널리 퍼진다. 이 책은 허씨가 사신으로 갔을 대, "웅주에서부터 직접 금나라황제가 있는 수도인 회녕부까지 모두 2750리"를 다녀온 상세한 일정을 소개하고 있다. 그의 33번째 노정이 시작점이 '황룡부'이다. '금나라황제가 있는 수도인 회녕부'까지는 아직도 8개의 노정이 남았고, 오백리길이나 된다. <건염이래계년요록>에 따르면, 허항종은 소흥5년(1135년)에 사망한다.이때 악비는 형호제치사였고, 양호를 열심히 경영하고 있었고 북벌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그가 '직저황룡'이라는 말을 하는 때까지는 아직 5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송,금의 교류는 이렇게 빈번했고, 문헌조건도 이렇게 상세했다. 악비는 문무에 모두 능했다. 금나라에 항거하는 장수로서 악비가 '연경'을 '황룡부'로 잘못 알았을 리는 없다. 혹은 '황룡부'가 금나라의 도성이라고 잘못 알았거나, '황룡부'가 금나라의 중요도시라고 잘못 알았을 리도 없다. 이런 것들은 모두 납득하기 어렵다. <'황룡통음'고석>이라는 글을 보면, 빈곳이 많은 문자에 근거하여 자신의 추측으로 빈 곳을 채워넣은 다음 '악비는 연경을 황룡부로 오인했다'고 결론내렸다. 여기에는 추측이 너무 많아서 믿기가 어렵다. 결론은 남송의 금나라에 대한 이해와도 부합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믿기 어렵다.

 

그러므로,악비의 '직저황룡'에서 말하는 '황룡'은 절대로 금나라의 도성 혹은 '대본영'이 아니다. 또 다른 곳을 가리킨다. 필자는 악비가 말한 '황룡부'라는 것이'금나라에서 송휘종,송흠종 두 황제를 구금한 장소'라고 본다.

 

송휘종,송흠종 두 황제의 구금지는 처음에 여러번의 변동을 거쳐 나중에 건염4년(1130년),오국성(五國城)으로 옮겨진다. 이 상황은 악비가 알고 있었다. <송사.왕륜전>에 따르면, "상인 진충이 왕륜에게 두 황제가 황룡부에 있다고 밀고한다. 왕륜은 주변과 홍호와 금나라로 진충을 항륭부에 보내어 뜻을 전하게 한다. 그래서 두 황제는 처음으로 송고종이 이미 즉위했다는 것을 알았다." <송사.홍호전>에는 이렇게 기록한다: "두 황제가 오국성으로 옮겨서 거주할 때, 홍호는 운중에 있었다. 사람을 보내어 몰래 글을 올리고, 복숭아, 배, 밤,보리를 바친다. 두 황제는 처음으로 송고종이 즉위했다는 것을 알았다." <건염이래계년요록> 권40 및 <삼조북맹회편> 권221을 참조하면 이 두 곳의 기록은 믿을 만하다. 모두 건염4년 왕륜, 홍호가 송휘종, 송흠종의 구금지를 알았고, 사람을 보내어 안부를 전한다. 단지 동일한 사건에서, '이성'의 구금지가 <삼조북맹회편>과 <송사.홍호전>에서는 '오국성'이라고 말했고, <송사.왕륜전>에서는 '황룡부'라고 말하였을 뿐이다.

 

왕륜은 이년후인 소흥2년 남송으로 돌아온다. '두 황제가 황룡부에 있다" 혹은 '두 황제가 오국성으로 옮겨서 거주한다"는 사실을 남송조에서 알았을 것이다. 소흥2년은 악비가 '직저황룡'을 얘기한 때로부터 8년이 남은 시기이다.악비는 자연히 이 사실을 잘 알았을 것이다. '정강지치'를 설욕하려는 것이 전쟁목표인 악비로서는 '황룡부'를 '두 황제가 구금된 곳'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이를 보면, '직저황룡'은 바로 '두황제를 모셔오기 위한 것'이다.

 

아마도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지 모른다. '두 황제'는 '오국성'에 있다고, 익비가 '황룡'을 '두 황제의 구금장소로 안 것'은 그의 오인이라고. 이 말은 기실 반드시 합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금나라의 오국성은 '호리개로(胡里改路)"의 속지이다. 다만 요나라때는 그렇지 아니했다. 요나라때, '오국부'는 비록 황룡부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황룡부의 속지였다. <요사>권33 <영위지.하>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오국부, 부아리국, 분노리국, 오리미국, 월리독국, 월리길국은 성종때 귀부하고, 본토에 거주하도록 명받고, 동북의 국경을 지켰다. 황룡부도부서사에 속한다." 권35<병위지.중>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황룡부도부서사:외연돌궐부, 오연돌궐부, 북당고부, 오국부." <금사>권42 <지리지.상>에는 이렇게 말한다: "호리개로, 국초에 만호를 두다. 해릉은 만호를 파하고, 고쳐서 절도사를 둔다." 즉, 금나라는 '오국성'을 포함하는 곳에 '호리개'로를 설치한다. 기실 해릉왕 완안량때는 1150년대의 일이다. 황룡이 '직저황룡'하려 할 때 오국부는 '주', '로'급의 건제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남송인들은 요나라때의 견해를 받아들여, 그곳을 황룡부의 속지로 보았다고 보는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악비가 말한 '직저황룡'은 '오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송사>에 황룡부와 오국성이 나란히 쓰인 원인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황룡부가 금나라의 도성이 아니고, 금나라의 대본영도 아니고, 악비가 금나라의 도성을 착각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리고 '두 황제를 모셔오는 것'이 악비의 전쟁목표였고, 악비는 '두황제'가 '오국성'에있다고 여겼다. 남송때는 '오국성'이 '황룡부'에 예속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렇게 결론내릴 수 있다: 악비가 말한'황룡'이 가리키는 것은 '두 황제가 구금된 곳'이다. 그가 '직저황룡'하려고 했던 이유는 '정강지치를 설욕하는 대표적인 일인 두 황제를 모셔오려 했다는 것이다. 이전에 여러 사람들이 '직저황룡'중의 '황룡'을 해석한 것은 모두 잘못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