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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제10

한성제(漢成帝) 유오(劉驁)는 어떻게 죽었을까? 글: 진령신(陳令申) 한성제 유오는 한원제(漢元帝) 유석(劉奭)의 장남으로 서한의 제9대황제이다. 중국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색채의 황제중 하나이고, 가장 호색한 황제중 하나이며, 남총(男寵) 장방(張放)을 좋아했던 황제이기도 하다. 그와의 사이에는 "단수(斷袖, 한애제가 동공과 함께 자다가 먼저 깼는데, 소매가 동공에게 깔려 있어서, 소매를 빼면 장방이 깰까봐 소매를 잘랐다는 고사에서 나온 것으로 동성애를 의미한다)"의 성향이 있어 후세의 욕을 먹는다. 한성제는 26년간 재위했고, 정무는 돌보지 않았으며, 주색에 빠져 지냈고, 혼용무도(昏庸無道)했고, 외척을 관리로 등용했다. 그리하여, 서한왕조는 위기에 빠지고 갈수록 위험해진다. 동시에 서한왕조의 멸망에 화근을 심은 셈이 ㅣ된다. 그는 역사상 '황음호색.. 2022. 3. 19.
서한 황태태후(皇太太后)와 태황태후(太皇太后)의 대결 글: 유병광(劉秉光) 한원제(漢元帝)의 후비는 아주 많았다. 그중 영향력이 있는 사람은 3명이다. 첫째는 황후인 왕정군(王政君)이고, 둘째는 소의(昭儀) 부요(傅瑤)이고, 셋째는 소의 풍원(馮媛)이다. 당연히 이는 모두 한원제 시대에 그녀들이 얻었든 최종 봉호(封號)이다. 한원제는 평생동.. 2016. 8. 14.
[황자쟁위술] 교식위현술(矯飾僞賢術) – 각수예제패(恪守禮制牌) 중국고대에는 황제만이 쓸 수 있는 것들을 규정해두고 있었다. 예를 들어, 황금색 기와는 황제가 거처하는 황궁, 사찰, 능묘등의 건축물에만 쓸 수 있었다. 그리하여, ‘왕’에 불과한 조선왕궁에는 황금색 기와를 볼 수 없다. 그리고, 붉은색 글씨(朱批)도 황제만이 쓸 수 있다. 상소문이 .. 2015. 8. 4.
중국고대에 "상방보검(尙方寶劍)"이 존재했는가? 글: 생활문적(生活文摘) 어떤 TV드라마를 보면 우리는 자주 '상방보검'에 대하 묘사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포청천>에 나오는 포공(包公)은 상방보검을 갖고 있다. 중국역사상 정말 상방보검이 존재했을까? 이 문제는 중국의 진한(秦漢)시대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상방(尙方)".. 2015. 3. 2.
승상 장우(張禹): 정치(精致)한 이기주의자 글: 후홍빈(侯虹斌) 작년 연말, 북경대학 교수이자 저명한 학자인 첸리췬(錢理群)의 말 한마디가 웨이보에서 큰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북경대학을 포함한 우리의 대학은 일군의 '정치한 이기주의자'를 배양하고 있다. 그들은 아이큐가 높고, 세속적이며, 노련하고, .. 2014. 12. 12.
조비연(趙飛燕)은 왜 평생 불임이었을까? 글: 문재봉(文裁縫) 역사적으로 "환비연수(環肥燕瘦)"라는 말이 있다. '연수'는 바로 한성제의 황후인 조비연을 가리킨다. 전해지는 말에 따르면, 그녀는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출 수 있었다고 한다그래서, "미인이 말을 타면 말이 알지 못한다(美人上馬馬不知)"라고 형용한다. 조비연은 바로.. 2014. 10. 6.
왕망(王莽)의 진실: 유일한 민선황제 글: 나철욱(羅哲郁) 한고조 유방이 성덕명군(聖德明君)이라고 하면 필자는 동의할 수 없다; 왕망을 야심만만한 찬탈자라고 한다면 필자는 역시 동의할 수 없다. 진실한 역사를 환원시키면, 아마도 당신도 다른 결론을 내리게 될 것이다. 왕망은 반면인물이라고 말한다. 역사적으로 폄다포.. 2013. 7. 12.
허황후(許皇后): 역사상 가장 멍청한 재녀황후(才女皇后) 글: 조염(趙炎) 중국역사상 재녀라고 칭할만한 황후는 많지 않다. 그러나 '멍청한' 황후는 적지 않다. 이 현실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소위 "여자무재편시덕(女子無才便是德)". 여자는 재주가 없는 것이 바로 덕이다. 글을 읽지 않다보니 자연히 재녀가 나오기 힘든 것이다. 글을 읽지 않.. 2013. 2. 4.
왕정군(王政君): 다섯황제의 죽음을 지켜본 장수황후 글: 수은하(水銀河) 중국에서 황제 노릇을 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낮에는 한 무리의 남자(대신)를 상대해야 하고, 저녁에는 한 무리의 여자(후궁)를 상대해야 하며, 중간에 짬이 나더라도 이때는 남자도 여자도 아닌 자(환관)들을 상대해야 한다. 고생한 결과는 바로 그들 중에 대부분이 .. 2008. 12. 25.
한성제(漢成帝)와 조비연(趙飛燕) 글: 채동번(蔡東藩) 혼군인 한성제는 사방에 놀거리를 찾아다녔는데, 우연히 양아공주(陽阿公主)의 집을 들르게 되었다. 공주는 바로 가녀(歌女) 수명을 불러서 노래를 부르게 해서 흥을 돋구었다. 그중의 한 여인이 목소리도 곱고, 춤추는 자태도 가벼워보였다. 그리하여 한성제의 두 눈은 그녀의 몸.. 2007.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