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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한)

승상 장우(張禹): 정치(精致)한 이기주의자

by 중은우시 2014. 12. 12.

글: 후홍빈(侯虹斌)

 

작년 연말, 북경대학 교수이자 저명한 학자인 첸리췬(錢理群)의 말 한마디가 웨이보에서 큰 파란을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북경대학을 포함한 우리의 대학은 일군의 '정치한 이기주의자'를 배양하고 있다. 그들은 아이큐가 높고, 세속적이며, 노련하고, 잘 연기하고, 협력할 줄 알며, 체제를 이용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능하다. 이런 사람들이 일단 권력을 장악하면, 일반적인 탐관오리보다 위해가 더욱 크다."

 

그는 정확하게 보았다. 확실히, 이 시대에 많은 총명한 사람들은 탐욕스럽게 보이지도 않고, 나쁘게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얻으려는 이익은 확실하게 챙긴다. 네가 그들이 어떤 규칙을 어겼는지를 모를 뿐이다. '정치한 이기주의자'는 아주 무서운 사람들이다.

 

현재의 사람을 사례로 삼기는 미안하니, 옛사람을 가지고 얘기해보기로 하자. 한성제때의 승상 장우는 바로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다.

 

장우는 한성제의 스승이다. 승상이면서 동시에 일대 대유학자였다. 학문이 아주 뛰어났다. 특히 <논어>에 정통했다. 동시대에 <논어>를 연구한 사람으로 주운(朱雲)이라는 노(魯)지방의 사람이 있었다. 그는 한성제에게 글을 올려 이렇게 말한다: "황상께서 저에게 상방보검을 한 자루 내려서, 간신을 베어버림으로써 사람들에게 경계를 삼도록 하고 싶습니다." 한성제는 기이하게 생각하여 물었다: "너는 누구를 베려는 것이냐?" 그가 대답한다: "안창후(安昌侯) 장우입니다." 한성제가 대노한다: "너는 작은 관직을 가진 자로서 상관을 능멸하다니, 조정에 글을 올려 황제의 스승을 욕보였으니, 그 죄는 죽어 마땅하다." 곁에 있던 사람이 주운을 체포했다. 주운은 힘이 세서 대전의 기둥을 붙잡으니 그 기둥이 부러졌다. 한편으로 큰 소리로 말한다: "나는 용봉, 비간같은 충신처럼 죽을 것이니, 만족한다. 그러나 지금의 조정은 명성이 엉망으로 될 것이다." 어사가 그를 끌고 나가려 하자, 이를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하던 죄장군 신경기(辛慶忌)가 모자를 벗고, 인수(도장끈)를 풀고는 머리를 찧으며 말한다: 이 자는 아주 곧고 아주 미쳤습니다. 다만 모두 진심으로 폐하를 위하여 하는 말입니다. 만일 그의 말이 옳다면 죽여서는 안되고, 만일 그의 말이 옳지 않더라도 용인해야 합니다." 신경기는 계속 머리를 바닥에 찧었고, 머리에서 피가 흘렀다. 한성제의 화는 그제서야 풀렸고, 주운을 풀어준다.

 

한성제가 붕어한 후, 대신 두업(杜業)이 한애제에게 상소를 올려, 한애제에게 현명한 신하를 가까이 하고 간사한 소인을 멀리해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그러면서 한성제때의 여러 대신들에 대한 험담을 한다. 그중에 안창후 장우에 대한 것은 이러했다: "간인지웅(奸人之雄), 혹란조정(惑亂朝廷), 사선제부당어해내(使先帝負謗於海內), 우불가불신(尤不可不愼)". 한나라때, 장우처럼 평가를 낮게 받는 대유학자이며 황제의 스승인 사람은 실로 많지 않았다. 이것은 충분히 의심할 만한 일이다. 장우는 도대체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그렇게 목숨을 버려가면서까지 그를 죽이려 하였을까? <한서>를 보면 장우가 얼마나 나쁜지 알 수 있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의 행위는 항상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첫째는 승상으로서 장우는 돈이 너무 많았다. 전답을 4백경이나 샀고, 경하, 위하에서 직접 관개공사를 해서 물을 대어 아주 비옥했다. 그는 향락도 즐겼다. 생활이 사치하고, 호화별장이 있으며, 음악을 즐겼다. 이렇게 그는 사치했다. 둘째는 장우는 사람에 따라 말을 다르게 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사람을 만나면 사람말을 하고, 귀신을 만나면 귀신 말을 한다. 어떤 제자가 왔을 때는 장우가 그를 후원으로 데려가서 먹고 마시고 놀았다. 여자가 옆에서 시중도 들어주었다. 배우들이 공연도 했으며 밤 늦게 까지 놀았다. 어떤 제자가 왔을 때는 장우가 자리에 앉아서 도를 논하고 경학을 논했다. 후원으로 데려가지 않았다. 비록 이렇게 하는데 대하여 별다른 의견이 있을 수는 없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했다. 즉 속임수를 쓴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셋째는 걸핏하면 황제에게 토지를 달라고 요구했고, 자신의 사위와 아들의 관직을 청했다. 이것은 탐욕스러운 것이다. 넷째는 아부를 특히 잘했다. 황제의 몸이 좋지 않으면, 장우가 길일을 잡아서 목욕재계하고 점을 챘다. 만일 좋은 괘가 나오면 황제에게 올리고, 만일 좋지 않으면, 하루종일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즉 거짓되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점인데, 장우는 승상으로서, 상서의 직무를 행했고, 또한 황제의 스승이었다. 그러나 항상 왕봉(王鳳)의 권세를 두려워하여, 항상 왕봉에게 양보했고, 그의 직책을 다 하지 않았다. 결국 왕씨의 권력은 너무 비대해져서 아무도 견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이는 간사한 것이다. 

 

이런 사람에게 학문이 있고, 능력이 있고, 수완이 있으니, 그가 무슨 큰 나쁜 짓을 했다고 집어낼 수는 없다. 무슨 법을 어긴 것도 없다. 그저 평범한 사람의 각도에서 보자면 장우는 완전히 정상이다. 그저 지나치게 총명했을 뿐이다. 그러나, 장우의 이미지는 아주 난감했다. 그가 고급 지식인으로 볼 때는.

 

장우는 유학의 대가였고, 유가에서는 "인,의.예,지,신"을 강조한다. 개인의 도덕을 중시한다. 그래서 서한의 관리를 뽑을 때, '거효렴(擧孝廉)'의 제도를 취한 것은 직접적으로 도덕성과 연결시킨 것이다. 관리의 축출과 징벌에서 도덕은 극히 중요한 지위를 차지한다. 그러므로, 보통사람들에게 있어서 인지상정인 탐욕, 허위, 아부, 담소(膽小)등의 약점은 사대부에게는 기개가 없는 것이 되고 아주 보기 싫은 것이 되는 것이다. 장우가 범한 것은 무슨 과실이라기 보다. 도덕적으로 평범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시대의 눈으로 보면, 그는 대유학자라는 신분에서 보자면 장우는 억울할 것도 없다. 첸리췬이 분석한 것처럼, 이런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면, 확실히 무서운 일이 된다. 국가공기를 자신의 손바닥 위에 놓고 흔들면서 전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다.

 

탄식할만한 점은 오늘날 이런 '정치한 이기주의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이런 칭호로 불리운다: 엘리트. "우리의 교육체계는 현재 이런 '독있는 양귀비'를 대량으로 배양하고 있다"(첸리췬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