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림원8

심보정(沈葆楨): 청나라의 남양대신(南洋大臣) 글; 소소우마왕(小小牛魔王) 남양대신, 북양대신은 모두 청나라말기의 중요직위이다. 두 직위는 광서연간에 설립되었고, 외교군정을 장악했다. 일반적인 관리들과 나란히 언급할 수준이 아니다. 북양대신중 명성이 가장 혁혁한 사람은 이홍장(李鴻章)이다. 이홍장은 직예총독으로 북양.. 2019. 5. 31.
옹정제(雍正帝)는 왜 연갱요(年羹堯)를 죽였을까? 글: 진휘(陳輝) 옹정은 왜 연갱요를 죽였을까? 지금까지 역사학자들은 여러가지 설이 분분하다. 역사학 박사인 정소유(鄭小悠)가 최근에 출간한 <연갱요의 죽음>(한당양광.산서인민출판사출판)에서는 여러가지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어, 연갱요는 한번도 옹정의 적계(嫡係.. 2018. 6. 19.
진대사(秦大士): 청나라때 장원을 한 진회의 후손 글: 소명진(蘇明眞) 천년이래로 진회(秦檜)의 악명은 그의 동족들로 하여금 그의 그림자 속에서 살도록 만들었다. 진회의 후손들 중에서 관직에 나간 사람은 아주 드물다. 청나라 건륭제 때에 이르러, 진대사라는 장원이 나타난다. 사료 기재에 따르면, 진대사는 자가 간천(澗泉)이고, 호.. 2018. 1. 11.
석형(石亨): 탈문지변의 공신 글: 두문자(杜文子) '탈문지변(奪門之變)'을 일으켜 명영종 주기진(朱祁鎭)은 '태상황'에서 다시 '황상'이 되었다. 여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인물이 바로 석형이다. 석형은 무장으로 전공이 혁혁했다. 명영종을 옹립하여 복위히킨 후, 자신의 권력과 부에 대하여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내.. 2014. 10. 2.
옹정제는 왜 생모와 사이가 나빴는가? 글: 김만루(金滿樓) 옹정은 황위를 얻은 후, 생모인 덕비(德妃) 우야씨(烏雅氏)의 첫반응은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마음 속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청세조실록>의 기록에 따르면, 우야씨는 옹정이 즉위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나의 아들이 대통을 승계하도록 명하는 것은 .. 2014. 6. 23.
기효람은 왜 포송령을 적대시했는가? 글: 이치아(李治亞) 같은 청나라의 문단 대가로서, 기효람과 포송령은 많은 명작과 명구를 남겼다. 기효람의 <열미초당필기>와 포송령의 <요재지이>는 모두 청나라때의 명작이다. 그런데, 기효람의 필기에는 포송령에 대한 극도의 분개함을 나타낸다. 이것은 또 무슨 이유에서일.. 2014. 2. 1.
강희제의 근신 고사기(高士奇)의 "기(奇)" 글: 포강객(浦江客) 강희연간의 대신 고사기는 역사상 쟁의가 아주 큰 인물이다. 높이 평가하는 사람은 하늘보다 높이 평가하고, 낮게 평가하는 사람은 땅바닥보다 낮게 평가한다. 실로 기중지기(奇中之奇)라 아니할 수 없다. 고사기는 자가 담인(澹人)이고, 호는 강촌(江村)이며 조상은 .. 2014. 1. 15.
엄숭(嚴嵩)의 여러가지 얼굴: 서생에서 간신까지 글: 범군(范軍) 청순(淸純) 처음에 엄숭이라는 명인이 세상에 남긴 얼굴은 청신가인(淸新可人)이다. 마치 일개 서생과 같다. 강서 분의(分宜) 사람인 그는 5살때 글을 읽기 시작하고, 9살때 현학에서 공부했으며, 10살때 현시에서 성적이 이미 발군이었다. 19세이 향시에 합격하여 거인(擧人).. 2013. 7.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