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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산장14

사무황제(四無皇帝) 함풍제(咸豊帝) 글: 천마행문(天馬行文) 함풍제의 본명은 애신각라(愛新覺羅) 혁저(奕詝)로 청나라의 제9대 황제이다. 그는 20살에 등극했으며, 11년간 재위하다가 31살에 병사한다. 그는 중국역사상 마지막으로 실제 통치권을 가졌던 황제이고, 청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비밀입저(秘密立儲)로 황위를 승계한 황제이기도 하다. 많은 사학자들은 함풍제를 "사무"황제라고 부른다. 무원견(無遠見), 무담식(無膽識), 무재능(無才能), 무작위(無作爲) 1. 무원견 함풍제가 등극했을 때, 대청의 국고는 텅 비어 있었고, 군대는 해이해져 있었으며, 정치는 부패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농민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서방열강은 더더욱 호시탐탐하고 있었다. 함풍제가 재위한 11년간, 청왕조는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았다. 1851년부터 .. 2022. 8. 23.
팔국연합군이 북경성으로 쳐들어올 때, 서태후는 왜 서안으로 도망쳤을까? 글: 장금(張嶔) "중국인들은 수도를 점령당하는 치욕과 함께 20세기를 맞이했다"고 말하는 '경자국난(庚子國難)'때 서태후가 서안(西安)으로 도망친 것에 대하여 많은 역사애호가들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서안으로 도망쳐서는 안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서태후의 이번 소위 "서수(西狩)"는 시기가 맞지 않았다. 첫째는 서북대지는 사상유례없는 가뭄으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예를 들어, 서태후가 "서수"하는 과정에서 지나간 산서(山西)는 '경자국난'전에 이미 여러 해동안 가뭄으로 피해를 입었고, 심지어 '밭이 메말랐고' '보리싹이 시들었다' 산서의 전체 35개 주현(州縣)은 재해를 당해 있었다. 그리고 서태후가 '도망쳐 숨은' 서안은 어떠했을까? 섬서는 재해를 당한 주현이 더욱 많아서 60여곳에 .. 2020. 12. 15.
태평천국을 진압후 조정에서 후작, 백작을 받은 사람은? 글: 비비료오락(飛飛聊娛樂) 1864년 증국전(曾國荃)이 상군(湘軍)을 지휘하여 천경(天京, 지금의 남경시)을 함락시키면서 중국의 절반을 석권했던 태평천국운동은 끝이 난다. 청나라조저에 있어서 이어서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은 공신들에게 봉상(封賞)하는 것이다. 증국번(曾國藩) 의문.. 2020. 3. 1.
함풍제의 신체를 망가뜨린 3가지 취미 글: 노하(老何) 애신각라 혁저(奕詝)는 청나라의 9번째 황제로 역사에서는 '함풍제(咸豊帝)'라 칭한다. 1851년, 함풍제가 즉위하니 나이 21살이었다. 그는 11년간 재위했으며, 31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함풍제가 죽은 후, 남겨진 젊은 예허나라씨(서태후)는 나이어린 장남 재순(載淳)을 보좌하.. 2019. 6. 19.
아방궁의 역사진상(2): 이년만에 아방궁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다. 글: 진경원(陳景元) 이방궁의 문제에서, "파"이든 "립'이든, 모두 신중한 문제이다. 모두 각종의 논증을 거쳐야하는 문제이고, 논증중에는 반드시 사실을 가지고 말해야 하고, 증거를 가지고 말해야 한다. 과거에 모택동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불파불립(不破不立), 선파후립(先破候立), .. 2018. 2. 23.
서태후는 자신이 죽은 후의 일을 어떻게 안배했는가? 글: 중천비홍(中天飛鴻) 자희(慈禧), 만주족. 예허나라씨. 안휘 휘냥 지광태도, 증삼등승은공 혜징(惠徵)의 딸. 옥첩(玉牒), 즉 황족족보에 기록된 내용은 이러하다: "예허나라씨. 혜징의 딸" 아명은 난아(蘭兒)이며, 예허나라가족중에서는 그녀가 행아(杏兒)라고 불리웠다. 함풍원년, 즉 1851.. 2018. 2. 19.
건륭제는 왜 6번이나 강남으로 내려갔는가?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청나라 300년역사중에서 단지 2명의 황제만이 6번 강남을 내려갔다. 한 명은 강희제이고, 다른 한명은 그의 손자인 건륭제이다. 강희제가 강남으로 6번이나 내려간 것은 국계민생을 위해서였고, 적지 않게 실질적인 일들을 했다. 그러나, 건륭제가 6번 강남으로 내.. 2018. 2. 4.
중국의 4대 저명한 착자(錯字) 글: 주해빈(周海濱) 이것을 천하제일착자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황제의 친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가의 중요장소의 문에 걸려 있다. 승덕 피서산장의 정궁내 오문 위에 하나의 편액이 걸려 있다. 편액의 사방은 금도으이 용 부조가 새겨져 있고, 파란색의 편액 에는 4개의 금빛 찬란.. 2017. 4. 6.
[황자쟁위술] 이세탈인술(以勢奪人術) 온치후방패(穩治後方牌) 도광제편 도광제(道光帝)의 이름은 민녕(旻寧, 즉위전의 이름은 綿寧이었으나 피휘의 편의를 위하여 개명함)으로 건륭47년(1782년)에 태어났다. 도광제는 청나라 황제중 유일하게 황후의 적장자로 제위에 오른 인물이다. 도광제는 가경제(嘉慶帝) 영염(永琰, 즉위후에는 피휘의 편의를 위하여 顒.. 2015. 8. 13.
송나라: 대항해시대 글: 오구(吳鉤) 1793년, 청나라 건륭58년, 83세의 건륭제는 승덕 피서산장에서 특수한 손님을 맞이하였다. 바로 '영이(英夷)'가 파견한 매카트니사절단이다. 영국국왕은 사절단을 불원천리 대청국까지 보냈다. 이는 당연히 건륭의 생일축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청나라정부에 양국통상을 요.. 2015. 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