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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함풍제)

사무황제(四無皇帝) 함풍제(咸豊帝)

by 중은우시 2022. 8. 23.

글: 천마행문(天馬行文)

 

함풍제의 본명은 애신각라(愛新覺羅) 혁저(奕詝)로 청나라의 제9대 황제이다. 그는 20살에 등극했으며, 11년간 재위하다가 31살에 병사한다. 그는 중국역사상 마지막으로 실제 통치권을 가졌던 황제이고, 청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비밀입저(秘密立儲)로 황위를 승계한 황제이기도 하다.

 

많은 사학자들은 함풍제를 "사무"황제라고 부른다. 무원견(無遠見), 무담식(無膽識), 무재능(無才能), 무작위(無作爲)

 

1. 무원견

 

함풍제가 등극했을 때, 대청의 국고는 텅 비어 있었고, 군대는 해이해져 있었으며, 정치는 부패하고, 민생은 도탄에 빠져 있었다. 농민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났다. 서방열강은 더더욱 호시탐탐하고 있었다. 함풍제가 재위한 11년간, 청왕조는 내우외환이 끊이지 않았다. 1851년부터 1864년까지 국내에서 중국역사상 최대의 농민반란인 태평천국의 난이 일어난다. 1856년에서 1860년에는 제2차 아편전쟁이 발발한다.

 

내우외환속에서 비바람에 흔들리는 난세에 그는 여전히 천조상국(天朝上國)의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뿐아니라, 자신이 만물의 주인이라는 환상 속에 탐닉했다. 천하의 대세가 이미 변하고 있으며, 세계의 국면이 바뀌었다는 것을 꺠닫지 못했다. 그외에 그는 죽기전의 권력이양에서도 실수를 거듭한다. 그 결과 서태후가 조정을 독단하게 되어 청왕조의 쇠퇴는 가속화된다.

 

2. 무담식

 

함풍제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았다. 얼굴은 누렇게 떴고, 각혈등 고질병이 있었다. 어의가 그에게 약처방을 내리는데, 사슴피(鹿血)이 그의 병을 고치는데 좋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궁안에 100여마리의 사슴을 키우면서 언제든지 사슴피를 마셨다. 사슴피는 그의 목숨을 연장시키고, 곁에 없어서는 안될 구명양약이 된다.

 

그는 삶에 집착하고 죽음을 겁냈다. 단지 황제라를 지위가 그에게 가져다주는 편리함을 누리고자 했을 뿐, 그의 눈앞에 놓인 내우외환을 직면할 용기는 없었다. 1861년, 영국프랑스연합군이 북경성으로 쳐들어온다. 열강은 도처에서 방화와 약탈을 하면서, 온작 악행을 저지른다. 함풍제는 그러나 놀라서 어쩔 줄 몰랐고, 최종적으로 한 결정은 서태후와 숙순등을 데리고 밤을 새워 북경성을 도망쳐 승덕의 피서산장으로 가는 것이었다.  

 

3. 무재능

 

함풍제는 몸에 장애가 있고, 자질이 평범했다. 그가 황위를 계승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스승 두수전(杜受田)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도광제(道光帝)는 말년에 황사자 혁저와 황육자 혁흔(奕訢)이 유력한 황위계승 후보자로 떠오른다. 황육자 혁흔은 자질이 총명하고, 문무를 겸비하여 도광제의 사랑을 받았다.

 

혁저의 스승 두수전은 혁저의 지식이 혁흔만 못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시정을 논하거나 말타고 활쏘기를 겨루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았다. 그리하여 혁저에게 인효(仁孝)의 마음으로 도광제의 마음을 얻도록 가르친다. 혁저의 소위 인효지심은 결국 도광제의 마음을 움직였고, 결국 도광제는 그에게 황위를 물려줄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4. 무작위

 

함풍제에게는 네 가지 나쁜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여색을 탐하고, 희극을 보는 걸 즐기며, 술을 마시는 것을 좋아하고, 아편을 피우는 것을 좋아했다.

 

함풍제는 스무살에 등극하여 그의 부친 도광제나 옹정제가 재위한 기간과 비교한다면, 아직 젊어서 큰 일을 해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중대한 사건들 앞에서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했고, 그저 주색에 빠져서 조정을 내팽개치고, 나라와 백성을 망치고 해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