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풍국장16

청나라 유신(遺臣): 투항할 것인가 말 것인가? 글: 김만루(金滿樓) 청나라황제의 퇴위조서가 발표되는 날, 황권청등(黃卷靑燈) 아래, 두 전통적인 사대부인 정효서(鄭孝胥), 운육정(惲毓鼎)은 서재에 앉아서 통곡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날, 정효서는 "새벽같이 일어나서, 침상에서 일어나서 좌불안석하며, 식사를 해도 맛을 느끼지 .. 2012. 9. 18.
단기서(段祺瑞): 그는 어떻게 북양정부의 2인자가 되었는가? 글: 왕사군(王仕軍) 단기서(돤치뤼)는 북양군벌사상 명성을 떨치면서 논쟁이 있는 인물이다. 그의 굴기는 비록 여러가지 원인이 있지만, 어떤 각도에서 분석하더라도, 대포(大砲)와 긴밀하게 관련있다. 그는 대포로 인하여 유명해진 인물이라고 해도 될 정도이다. 어렸을 때의 단기서는 .. 2012. 3. 10.
양계초(梁啓超)와 채악(蔡鍔): 원세개(袁世凱)를 잠못이루게 한 사도(師徒) 글: 고문기(高文麒) 2003년 4월, 천진의 마르코폴로광장의 북쪽에 두 동의 나란히 선 이탈리아식 서양건물이 정식으로 관광객에게 개방되었다. 북쪽으로 놓여진 건물은 중화민국초기의 대사상가 양계초의 주택이고, 남쪽으로 놓여진 건물은 그의 서재인 그 이름도 유명한 음빙실(.. 2009. 4. 20.
원세개의 황제참칭전후의 몇 가지 에피소드 글: 녹순자(鹿順子) 1915년 12월 11일 원세개는 북경에서 황제를 참칭했다. 이를 전후하여 발생한 몇 가지 사건들을 언급하자면... 첫째, 원세개의 장남인 원극정(袁克定)은 부친이 황제에 오르면 자신이 태자가 될 것이라고 깊이 믿었다. 그리하여 부친으로 하여금 황제에 오르게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 2008. 8. 11.
단기서와 풍국장: 북양군벌내의 호랑이와 개 글: 장명(張鳴) 북양삼걸(北洋三杰)로 불리는 용(龍), 호(虎), 구(狗)는 각각 왕사진(王士珍), 단기서(段琪瑞), 풍국장(馮國璋)을 말한다. 왕사진을 용(龍)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실 그의 "신룡현수불현미(神龍見首不見尾, 신룡은 머리만 보이고 꼬리는 보이지 않는다)" 혹은 "장두로미(藏頭露尾, 머리는 감.. 2007. 11. 6.
원정설(袁靜雪) : 나의 부친 원세개 나의 부친이 임시총통선서를 한 후 다시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청황실은 중남해를 내놓았다. 우리는 다시 당시 철사사후통 육군부(지금의 중국인민대학 기숙사)에서 중남해로 이사했다. 나의 부친은 이때부터 중남해에 들어가 거주했고, 다시는 신화문(중남해의 정문)을 나서지 않았다. 이것은 "동흥.. 2007. 1.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