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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페이17

진사경(陳嗣慶): 우리집 둘째 삼모(三毛, 싼마오) 글: 진사경(陳嗣慶) 나의 딸 진평(陳平)의 원래 이름은 진무평(陳懋平)이다. "무(懋)"는 집안에서 그녀 대의 항열자이고, "평(平)"자는 그녀가 태어난 해는 전쟁이 빈번하고 부친으로서 이 세계에 전쟁이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아이에게 "평화(和平)"의 사명을 준 것이다. 나중이 이 아이는 글자를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어떻게 해도 "무(懋)"자를 쓰지 못했다. 매번 이름을 쓸 때면 모두 가운데 글자를 빼버리고 자기를 "진평"이라고 했다. 그뿐아니라, "진(陳)"자의 왼쪽 변을 오른쪽으로 옮겨서 오른쪽에 썼다. 그렇게 되니 부친으로서 나는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은 것은 23살때였다. 나중에 나는 그의 동생들에게서도 모두 "무(懋)"자를 빼버렸다. 한해는.. 2022. 9. 2.
펠로시의 타이완방문: 중국당국 "패배자인"의 여러가지 악영향 글: 사전(謝田) 미중대(美中臺)관계에서 역사적인 순간이다. 대만현지시간 8월 2일 저녁 10시 44분, 미국 하원의장 펠로시를 태운 군용비행기인 미공군 C-40행정전용기 번호 Spar19가 평안하게 타이페이의 쏭산(松山)공항에 착륙했다. 양안삼지(兩岸三地)의 사람들은 "눈을 씻고 기다렸고" 마침내 결과가 나왔다. 이 순간, 쏭산공항부근에서 구경하는 타이완민중들과 전세계 수십만명의 실황중계를 지켜보던 사람들은 조렸던 마음을 내려놓고, 즐거워했거나, 혹은 비통함 속에서 크게 상심했다. 바로 이 순간 전세계는 모두 인식하고 알았다. 타이완이 크게 이기고, 미국은 지지 않았으며, 중국은 패배를 자인했다. 중국 공청단중앙의 "패배선언"은 이러했다: "미중대국간의 힘겨루기는 어쨌든 한판의 '바둑'과 같다. '돌'.. 2022. 8. 5.
리투아니아 외교관완전철수와 관련한 네가지 관전포인트 글: 왕우군(王友群) 12월 15일, 리투아니아 외교부는 주중대사관의 전체 외교관을 소환하고, 앞으로 대사관영사관업무는 원격처리방식으로 운영한다고 밝혔다. 로이터의 보도에 따르면, 리투아니아 주중국대사관의 외교관 및 그 가족은 전부 베이징을 떠났다. 이는 7월 20일 리투아니아가 수도 벨뉴스에 '주리투아니아타이완대표처'를 설립하는데 동의한 후, 중국과 리투아니아의 관계는 급속히 악화되었으며, 이는 리투아니아가 취한 최신조치이다. 리투아니아 외교관이 모조리 중국에서 철수한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필자의 생각에 네가지 포인트가 있다. 첫째, 이는 중국외교의 한차례 실패이다. 11월 18일, '주리투아니아타이완대표처'의 간판이 정식으로 벨뉴스 J. Jasinskio대로 16B호의 벽에 붙었다. 이는 .. 2021. 12. 17.
타이페이 최고층건물의 역사 글: 섭륜회(葉倫會) 타이페이부(臺北府)는 1775년에 건립되고, 1882년에 타이페이성(臺北城)이 건립된다. 1884년에는 동문, 남문, 서문, 북문과 소남문이 차례로 준공된다. 당시 타이페이의 최고층건물은 성문(城門)이었다.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건물의 높이는 점점 올라간다. 1919년 중앙첨탑의 높이가 60미터인 총독부(總督府)가 완공되어, 타이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라 칭해진다, 반세기후에 관공사업의 필요에 따라, 5성급 관광호텔인 카이저호텔이 준공되어, 건축물은 총독부보다 높을 수 없다는 암묵적 규칙이 깨져버린다. 타이페이의 '최고층빌딩'을 차례로 살펴보게 되면, 청나라때의 성문, 일본통치기간의 '총독부' 즉 현재의 총통부. 그후 차례로 나타난 최고층빌딩은 각각 타이완 최초의 백화점인 키쿠모토.. 2020. 6. 27.
대만, 홍콩의 선거결과는 대륙에 무엇을 말하는가? 글: 주효휘(周曉輝) 의문의 여지없이 1월 11일 아침부터 북경의 고위층과 여러부서의 눈길은 모두 바다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대만섬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이날 대만인이 선거로 중화민국 제15대총통, 부총통 및 제10기 입법위원 113명을 선출하기 때문이다. 비록 선거전에, 중공당.. 2020. 1. 12.
"선덕실솔관(宣德蟋蟀罐)" 소실의 수수께끼 글: 홍우(洪宇) 중국역사상 귀뚜라미를 기르고(養蟋蟀), 귀뚜라미싸움을 시키는 것(鬪蟋蟀)과 같은 취미는 풍아(風雅)한 사람들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오락종류였다. 당나라 천보(天寶)연간 귀꾸라미는 관상물로서 금사롱(金絲籠)에 넣어서 베개 옆에 두었다. 그리고는 귀뚜라미의 완전(.. 2019. 10. 30.
장개석이 손자 3명을 후계자로 양성하려던 계획은 어떻게 실패하였는가? 글: 우인연화(愚人煙火) 장경국(蔣經國)의 부인 장방량(蔣方良)은 모두 4명의 자식을 낳았다. 각각 장효문(蔣孝文, 장남), 장효장(蔣孝章, 장녀), 장효무(蔣孝武, 차남), 장효용(蔣孝勇, 막내아들)로 3남1녀이다. 이 세 아들에 대하여 장경국은 일기에서 이렇게 평가한 바 있다: "효문은 멍청.. 2019. 5. 4.
장개석이 대만으로 도망칠 때 데려간 3명 글: 소담야사(笑談夜史) 장개석은 모두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민정부의 최고총사령관일 뿐아니라, 항일투쟁과정에서 빠질 수 없는 지도자이다. 우리는 모두 회해전역(淮海戰役)이 끝난 후 장개석은 대만으로 도망쳤고, 그가 대만으로 옮겨갈 때 그가 좋아했던 골동품, 서화등 문화재를 .. 2019. 4. 15.
장경국(蔣經國)은 어떻게 장개석(蔣介石)의 후계자로 확정되었는가? 글: 삼창(森彰) 역사의 철칙에 따르면, 어떤 독재정권도 권력자가 병사한 후, 권력승계문제를 놓고 반드시 투쟁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은 장개석이 병사한 후에도 여전히 존재했다. 대만으로 간 후에 장경국의 장개석의 지지하에 신속히 정보조직을 장악했다. 그리고 이것은 단.. 2018. 12. 18.
왕희지(王羲之)의 "상란첩(喪亂帖)": 왕희지와 일본서예 글: 사전(謝田) 서예는 고대인들의 마음 속에서 아주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역대이래로 명가의 서예작품은 귀중하게 소장해왔다. 특히 서성(書聖) 왕희지의 작품은 더욱 그러했다. 왕희지에 대한 숭배는 중국에서만 1천여년간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니라, 당나라때부터, 왕희지의 서예는.. 2018. 3.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