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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민테른24

누가 중국을 분열시키는가? 글: 진숙함(陳叔涵) 중공은 걸핏하면 중국분열의 죄명으로 타이완독립인사, 홍콩독립인사, 신장독립인사 및 티벳독립인사들을 공격하곤 한다. 마치 중공만이 중국통일을 옹호하는 것처럼. 그런데, 중공은 기실 도둑이 도둑잡으라고 소리치는 격이다. 중공이야말로 중국분열의 시작용자(始作俑者)이고, 중공의 굴기는 완전히 중공이 중국을 분열시킨 결과이다! 중국역사가 20세기에 접어들었을 때, 모택동은 중국분열의 비조(鼻祖)가 된다. 그는 일련의 중국 각성(省)이 각자 따로 가자는 주장을 한다. 예를 들어 , 등등. 1920년 9월 30일 모택동은 장사의 에 자신의 이름으로 을 싣고, 공공연히 중국을 27개국가로 나누자고 주장한다; 전국의 '총건설'을 일정한 시기내에 완성하는 것은 바라기 어려우니,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 2022. 8. 20.
왕명(王明): 신비한 최고지도자 글: 호기조장(好奇組長) 이전에 학교에 다닐 때, 교과서에서 왕명을 언급할 때면 좌경착오와 우경투항주의착오를 저질렀다고 하여, 좌우로 모두 착오를 저지른 사람이라고 하였다. 역사서에 이름이 오를 정도면 그는 아주 중요한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왕명은 거의 부호화된 인물로, 많은 사람들은 그의 기본적인 평생이력조차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왕명은 1904년 안휘(安徽) 육안(六安)에서 태어났고, 원래 이름은 진소우(陳紹禹)이다. 왕명은 그가 나중에 쓴 가명이다. 그때 혁명에 참가한 사람들은 가명을 많이 썼다. 어떤 때는 가명이 원래 이름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널리 알려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박고(博古)같은 경우이다. 1925년, 왕명은 무창상과대학(武昌商科大學)에서 공부한다.(.. 2022. 7. 3.
중국공산당 건당(建黨)의 내막 글: 방주자(方舟子) 중국공산당이 상해에서 제1차전국대표대회("1대")를 개최한 것을 중국공산당 성립의 표지로 본다. "1대"는 7월 1일에 개최된 것이 아니다. 이 날짜가 공산당건립기념일로 정해진 것은 모택동이 임의로 지정한 것이다. 공산당이 성립된 초기에는 도망다니느라 바빴기 때문에 매년 건당을 경축하지도 못했다. 1938년 공산당이 섬서북부에 근거지를 마련 하고, 안정되고난 후에 비로소 모택동은 매년 건당을 기념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다만, 모택동이 비록 1대 대표이고, 기록을 책임진 대표이기는 하지만, 자신도 "1대"를 도대체 언제 개최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당시 연안에는 또 한명의 "1대"대표인 동필무가 있었다. 모택동은 동필무를 찾아가서 물어본다. 동필무도 구체적으로 어느 날에 개최했는지.. 2021. 12. 23.
진독수(陳獨秀): 중공 제1대 총서기의 최후 글: 왕우군(王友群) 금년은 중국건당100주년이다. 100년동안, 중공은 전후로 12명의 총서기(당수)가 있었다. 제1대 총서기는 진독수이다. 재직기간은 1921년 7월부터 1927년 8월까지이다. 그후 진독수는 면직당하고, 당적을 박탈당했으며, '일본스파이'로 몰렸고, 여러 '막수유(莫須有)'의 죄명을 뒤집어 쓴다. 진독수는 자가 중보(仲甫), 호는 실암(實庵)이며, 안휘 회녕 사람이다. 청나라때 과거에 급제한 수재(秀才)이다. 5번 일본으로 건너가 공부를 하거나 피난을 했다. 북경대학 교수, 북경대학 문과대학장을 지냈고, 5.4운동의 지도자중 한 명이다. 1920년 4월 소련공산당(볼세비키) 극동국 블라디보스톡분국 외국처는 그레고리 보이틴스키(중국명 吳廷康)를 중국으로 파견하여 마르크스레닌주의를 선전.. 2021. 4. 20.
중공 제5대 총서기 장문천(張聞天)의 최후 글: 왕우군(王友群) 1976년 7월 1일은 중공성립55주년기념일이다. 이날, 일찌기 제5대 중공총서기를 지낸 장문천은 그의 유배지인 강소(江蘇) 무석(無錫)에서 심장병이 돌연 발작한다. 당시 그의 안색은 창백하고, 식은 땀이 흘렀으며, 손에 쥐고 있던 외국어자료를 바닥에 떨어뜨린다. 앞뒤로 10분도 안되는 동안에 그는 세상을 떠난다. 장문천이 사망한 후, 중공은 부고를 발하지 못하게 막고, 추도회도 열지 못하게 막았다. 유골함에도 장문천의 이름을 쓸 수 없었으며, 유골함을 장의관의 정청(正廳)에 놓지 못하게 하였으며, 단독으로 아주 작은 창고 안에 놓아두게 했다. 유일하게 일본, 미국, 소련을 유학한 중공당서기 장문천, 가명은 낙보(洛甫)이다. 1900년에 태어났으며, 상해 남회(南匯) 사람이다. 19.. 2021. 4. 8.
모택동은 준의회의(遵義會議)에서 중국공산당 최고지도자의 지위를 확립했는가? 글: 원빈(袁斌)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의 전당 및 전군의 최고지도자지위를 확립했다는 것이 중공의 일관된 설명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역사학자들은 장정역사연구를 통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혔다. 현존하는 자료와 학자 허팡(何方)등의 연구에 따르면, 준의회의는 중공이 장정으로 도망하는 도중에 귀주 준의에서 거행한 중공중앙정치국확대회의이다. 주로 박고, 주른애, 이덕이 장정에서 통솔하던 군사노선의 잘못을 반성한 것이다. 그때 중앙홍군의 장정을 통솔한 사람은 소위 "삼인단"(총서기 박고, 정치국상위 주은래 및 코민테른 대표 이덕)이다. 회의에서 박고는 5차에 걸친 포위소탕에 대한 총괄보고를 했고, 주은래는 부보고(副報告)를 했다. 정치국상위 장문천(張聞天)은 '반보고(反報告)'를 하여, 삼인단의 군사노선의 .. 2021. 4.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