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진숙함(陳叔涵)
중공은 걸핏하면 중국분열의 죄명으로 타이완독립인사, 홍콩독립인사, 신장독립인사 및 티벳독립인사들을 공격하곤 한다. 마치 중공만이 중국통일을 옹호하는 것처럼. 그런데, 중공은 기실 도둑이 도둑잡으라고 소리치는 격이다. 중공이야말로 중국분열의 시작용자(始作俑者)이고, 중공의 굴기는 완전히 중공이 중국을 분열시킨 결과이다!
중국역사가 20세기에 접어들었을 때, 모택동은 중국분열의 비조(鼻祖)가 된다. 그는 일련의 중국 각성(省)이 각자 따로 가자는 주장을 한다. 예를 들어 <기초가 없는 대중국을 타파하고, 많은 중국건설을 호남부터 시작하자> <절대찬성, '호남먼로주의(湖南門羅主義)'>, <'호남자치운동'을 마땅히 발기해야 한다>등등. 1920년 9월 30일 모택동은 장사의 <대공보>에 자신의 이름으로 <호남건설문제의 근본문제 - 호남공화국>을 싣고, 공공연히 중국을 27개국가로 나누자고 주장한다; 전국의 '총건설'을 일정한 시기내에 완성하는 것은 바라기 어려우니, 그렇다면 가장 좋은 방법은 아예 총건설을 도모하지 말고, 각 성이 분건설을 도모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기본관점은 '함께 모여서 잘 하기 어려우니, 각자 알아서 잘 하자'는 것이다. 1920년 10월 10일 모택동은 <통일반대>라는 글을 발표한다. 거기에서 그는 유명한 중국문제에 관한 명언을 남긴다: "중국의 일은 통일한다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일 위의 관점이 모택동의 중국분열에 대한 이론적 근거라면, 모택동 및 중공의 이후활동은 확실히 그의 이론을 실천한 것이다. 중공은 자신이 아주 약했을 때, 원래 의도는 중국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어 중국을 사분오열하게 만들려 했다. 중공은 확실히 그렇게 했다. 중공은 그때 중국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마음은 있었지만, 중국을 분열시킬 실력은 없었다. 소련은 중공보다도 더욱 중국을 분열시키고 싶어했다. 1927년 중공 창시자중 하나인 이대쇠(李大釗)가 당시 북양정부에 의해 교살형을 당한다. 그것은 이대쇠가 소련과 결탁하여,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실제증거를 찾아냈기 때문이었다. 즉, 소련은 중공을 이용하여 중국을 분열시키는 활동을 했다. 왜냐하면 중국이 분열되는 것이 소련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1929년 중국동북의 중동로사건이 발발한다. 중공은 공공연히 무장으로 소련을 보위할 것과 소련군이 흑룡강 하이라얼(海拉爾)로 진입하는 것을 도와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은 아주 분명하다. 중공은 성립이래 중국을 분열시키는 활동을 해왔다. 중공의 제2차 전국대표대회에서 명확하게 선언한다: 신장, 몽골, 티벳을 독립시켜 건국시킨다는 것이다. 중국분열의 의도가 명확하다. 단지, 중공은 당시 아직 힘이 미약하여, 분열활동을 직접 실시할 수 없었을 뿐이다. 소련이 중국에 대한 지지를 강화하면서, 중공의 실력도 점차 커진다. 중공의 중국분열행동은 점점 대담해진다.
1931년 소련과 코민테른의 지지하에 중공은 소위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을 건립한다. 이러한 중국을 분열시키려는 활동은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는다. 이 정권은 전후로 18개성, 4개직할현을 관할했다. 1937년 일본이 전면적으로 중국을 침략하면서, 중공은 유격전을 펼칠 수밖에 없게 된다. 항일하는 듯한 포즈를 취한다. 국민정부군이 일본침략군과 정면으로 전장에서 붙어 피를 흘릴 때, 중공은 후방에 숨어서 몰래 힘을 키우고 영역을 넓히면서, 중국을 세 갈래로 나누려 했다. 국통구(國統區), 일전구(日戰區) 및 중공의 소비에트구. 그후, 일본이 투항하면서, 국공내전이 발발한다. 힘을 기르며, 이일대로(以逸待勞)한 공산군이 소련의 대거지원하에, 국민정부의 피로에 지친 군대를 격패시키고, 중공은 대륙에 정권을 수립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역사는 사실로 증명한다: 중공이 커진 것은 중국을 분열시키면서부터이다. 그의 배후상사인 소련의 지원하에 그리고 일본군침략의 도움을 받아. 도광양회, 암도진창하면서 점차 세력을 키웠다. 즉, 중공은 중국분열의 최대수혜자이다.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 커진 후에 즉시 전체 중국을 점령하려는 야심을 드러낸다. 확실히 중공은 중국분열을 주장하기도 했고, 중국분열을 반대하기도 했다. 역량이 약할 때는 분열활동을 대거 벌이고, 역량이 강해지고나서는 중국분열을 반대했다. 전면항전이 발발한 후, 중공은 중화민국정부의 지휘에 복종했고, 무장역량도 국민정부군에 편입되어 신편국민혁명군 제4군, 제8로군이 되며, 국민정부에서 군수물자를 제공한다. 이는 설명한다. 국민당이건 공산당이건, 모두 중화민국이라는 이름하의 당파들이다. 단지 중공은 등록되지 않은 불법당파였을 뿐이다. 그러나, 중공이 국민당정권을 무너뜨린 후, 원래 현대중국의 합법적인 국호이던 중화민국은 중화인민공화국으로 바뀐다. 이것은 바로 중공의 독립선언이다. 중공은 앞장서서 중국대륙을 중국에서 독립해 나간 것이다! 중공 자신이 먼저 대륙을 독립시킨 것인데, 무슨 자격으로 타이완독립, 홍콩독립, 신장독립과 티벳독립을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중화민국이 대청제국의 영토와 주권을 승계할 때, 영토범위는 개략 1,300만평방킬로미터였다. 그러나 중공이 건립한 정권의 영토면적은 960만평방킬로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한번 물어보자. 나머지 300여만 평방킬로미터의 토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 잃어버린 큰 면적의 영토는 중공이 정권수립한 이래로 입을 다물고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중공이 감히 말을 꺼낼 수 없기 때문이다. 중공의 정권획득은 완전히 소련의 지원을 받아 얻어낸 것이다. 정당으로 성립시킨 것도 코민테른이 앞장서고, 소련이 대량의 경비를 제공하고, 당원을 대거 교육시켰기 때문이다. 소련군은 중국 동북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아내면서 무기장비를 대거 접수한다. 그후 이 무기장비를 중공에 넘겨준다. 그리하여 중공은 국민정부와 내전을 벌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내전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는 동북에서 시작되었고, 소련이 중국을 지원해주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소위 중공이 말하는 "소미가보창(小米加步槍, 쌀주머니와 소총)"으로 국민당군을 이겼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중공은 소련에 의존하여 성장했으니, 당연히 소련에 감사를 표해야 했다. 어떻게 감사를 표할 것인가. 중국의 300여만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넘겨준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많은 영토가 중국에서 영구히 떨어져 나갔다. 모두 중공이 한 짓이다. 정권을 획득하기 위하여, 중공은 뭐든지 내놓을 수 있었다. 스탈린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서, 큰 면적의 영토까지 예물로 바친 것이다.
중화민국정부는 타이완으로 물러난 후, 여전히 중화민국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고 있다. 다닞 영토와 주권이 타이완본섬과 금마팽호(금문도, 마조도, 팽호열도)에 미칠 뿐인 것이다.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은 누고도 부인할 수 없다: 중국대륙은 원래 중화민국의 대륙이고, 중국타이완도 원래 중화민국의 타이완이다. 중공이 타이완해협의 양안이 모두 중국인이라고 인정한다면, 왜 중공은 대륙정권을 중화민국에서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고친 것인가. 그게 대륙독립이 아닌가. 중국분열이 아닌가. 그렇다면, 타이완이 중화민국을 타이완공화국으로 고치는 것은 타이완독립이 되고, 중국분열이 된단 말인가. 그런 논리가 어디 있는가?
작년 미국의 몇몇 의원이 타이완을 방문했다. 비행기가 타이완에 도착한 후, 한 공화당의원은 트위터에 이런 글을 올렸다: 우리는 타이완공화국에 착륙했다. 이것은 바로 타이완이 주권독립된 국가라는 것이 국제적으로 완전히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조금만 역사적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중국역사상 분열된 시기가 적지 않았다. 고대 제왕은 통일을 추구했는데, 그것은 인민의 복리를 위해서도 아니고, 더 많은 노예들을 부리기 위해서이고, 더 많은 영토를 통치하기 위함이었다. 그 뿐이다. 당금 중공이 통일을 도모하는 목적은 제왕시대와 다를 바 없다. 단지, 중공의 본질이 사악하다는 것이다. 고대제왕은 비록 백성을 노예로 부리지만, 그들은 어쨌든 사람이었다. 내심에는 여전히 양심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중공은 인류역사상 유례가 없는 악마이다. 백성이 악마의 손아귀에서 어찌 잘 살 수 있겠는가. 영국이 홍콩을 식민통치하던 시기에 홍콩인들은 인권, 자유와 법치를 누렸다. 홍콩이 중공의 손아귀에 들어간 후, 가장 기본적인 인권조차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홍콩인들은 하나의 확실한 사실을 증명해 주었다: 중공은 모친의 품이 아니라 악마의 손아귀이다.
만일 중공이 지금도 모택동을 중공의 지도자라고 여긴다면, 모택동의 말을 잘 듣고 잘 음미하길 바란다: "중국의 일은 통일한다고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아마도 모택동이 일생동한 한 말중에서 가장 현명한 말일지도 모른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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