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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대학60

우다오커우 비서방 멸망기(五道口秘书帮覆灭记) 글: 중서ABC​베이징시 하이덴구 우다오커우를 돌아다니려면 사람들은 두 군데는 반드시 가보아야 한다.​하나는 줄을 서서 "우다오커우대추케익(枣糕)"을 먹어야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기한 랜드마크건축물을 쳐다보는 것이다. 밀물처럼 계속 밀려오는 사람들 틈에서 항상 누군가 고개를 들면서 입가에 '우다오커우'라는 말을 읍조리게 된다. 사람들은 거기에 다른 곳은 비견할 수 없는 이름을 붙여준다: "금융황포(金融黄埔, 황포는 황포군관학교로 중국의 유명한 장군들을 배출한 사관학교임)"​그렇다. 이 신기한 건축물은 바로 청화대학우다오커우금융학원(清华大学五道口金融学院)의 강의동이다."우다오커우"라는 지명은 금융권내에서 아주 유명하다. 많은 재경계통의 사람들이 꿈에도 .. 2024. 4. 24.
북경전자과기학원: 중국에서 가장 신비한 대학 글: 방심(方尋) 베이징에 이런 신비한 대학이 있다. 985도 아니고 211도 아니다(985공정과 211공정은 중국의 교육부, 국무원등 중앙정부에서 지원하는 일류대학을 가리킴). 그러나, 매년 합격점수는 985, 211대학들보다 높다. 체제내에 취직하기 어려운 현재에도 그 대학은 93%를 넘는 졸업생이 체제내에서 일한다. 중앙판공청, 각성청등 전국의 각급당정기관을 포함해서. 그곳은 바로, 북경전자과기학원이다. "5대관교(五大官校)"중 하나로 불린다. 1. 최강의 "사비원교(四非院校), 합격점수는 북대,청화 바로 다음이다. "북경전자과기학원"은 베이징에서 아주 신비한 본과대학이다. 인터넷에 학교에 대한 선전이 아주 적고, 심지어 학교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도 많을 정도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전문대.. 2023. 6. 20.
"헝쉐이중학(衡水中學)": The dragon slayer will eventually become an evil dragon. 글: 장천기(張天祁) "신발끈을 매고 있던 학생이 얼굴을 발에 걷어차였다. 그가 몇분 늦었다는 이유로." "한 학생이 수업이 끝나자 허리를 쭉 폈다가, 선생님에게 불려나가 교실밖에서 수업내내 꿇어앉아 있었다." "겨울에 달리기를 할 때 겉옷을 입을 수 없다." 한 자칭 헝쉐이2중(衡水二中, 헝쉐이제2중학)에 다닌다는 학생이 SNS에 호소한 내용이다. 이 글만 보면, 학생들이 학교에 다니는 것인지, 감옥에 갇힌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2023년 구정이 지난 후 며칠이 지나지 않아, 헝쉐이2중의 학생들 항의사건이 인기검색어에 오른다. 헝쉐이에는 더 유명한 헝쉐이중학(衡水中學)이 있다. 헝쉐이계열 중학을 대표로 하는 '수퍼중학'들은 왕왕 가혹하고 세밀한 관리감독으로 유명하다. 욕하고, 체벌하고, 인.. 2023. 5. 20.
주은래(周恩來)와 유소기(劉少奇)의 암중각축(暗中角逐) 글: 고문겸(高文謙) 1966년 8월 5일, 모택동은 에서 이상하리만치 격렬한 어조로 직접 이름을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유소기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반동의 부르조아계급입장에 서서, 부르조아계급독재를 실행하여,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거대한 문화대혁명운동을 탄압하고, 시비를 전도하고, 흑백을 혼동하며, 혁명파를 토벌하고, 다른 의견을 억누르며 백색공포를 실행하며 스스로 득의하며 부르조아계급의 위풍을 키우고, 프롤레타리아계급의 뜻을 꺽었다. 어찌 그렇게 독하단 말인가?" 모택동은 글에서 1962년 조정시기의 소위 '우경'문제를 연결시켜, 기세등등하게 유소기와 최종대결을 벌이겠다는 자세를 취한다. 모택동의 이 글은 그후 전체회의에 인쇄되어 배부되어, 회의참석자들이 유소기를 공격하는 무기가 된다. 전체회의는 바로 .. 2023. 5. 18.
전학삼(錢學森)의 의문: "왜 중국의 학교는 걸출한 과학기술혁신인재를 길러내지 못하는가?" 글: 흡광(恰光) 2021년 7월 소속의 잡지에는 "중국, 인도, 러시아와 미국대학에서 STEM교육의 기능수준과 수확(Skill levels and gains in university STEM education in China, India, Russia and the United States)"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가 실렸다. 이 Supertest라는 시험연구는 스탠포드대학, 모스크바국립고등경제학원(HSE University Moscow), 교육시험서비스센터(ETS) 및 베이징대학, 칭화대학과 인도의 합작대학이 공동으로 수행했다. 이 중국, 인도, 러시아와 미국의 공대행들이 생물학을 학습하는데 관한 대규모 연구에서, 연구자들은 컴퓨터학과와 전자공업전공학생들이 물리, 수학과 비판적사고능력분야에서의 진보를 .. 2023. 4. 22.
직접 목격한 북경대학, 청화대학 입학과정의 괴이한 현상 글: 청년력(靑年力) 입학선발때 나는 계속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학생을 북경대학에 뽑아야 할까?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생각해왔다. 학교도 학생을 선택하지만, 학생도 학교를 선택한다. 입학선발위원으로서 마땅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한 학생을 북대 혹은 청화로 데려오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일 것이다. 더 해야할 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더 많이 학생에게 제공하여, 그로 하여금 정보의 장벽을 넘어 자기가 좋아하는 학교와 전공을 선택하게 하는 일일 것이다. 한 대학선배의 말에 따르면, 초심(初心)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학선발위원으로 오래 일하다보니 갈수록 많은 괴이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초심은 어디로 갔을까? 괴이한 현상 1: 학생.. 2023. 4. 18.
오함(吳晗): 평생 중공에 충성하였으나, 중공의 감옥에서 죽은 어용학자 글: 진뢰(秦雷) 오함(吳晗)은 청빈한 집안 출신으로 자신의 근면함과 노력으로 호적(胡適)에게 인정을 받아, 1931년 청화대학 사학과에 합격하고, 1934년 청화대학을 졸업한 후 학교에 남아 교편을 잡는다. 재능이 출중하여 1937년에는 겨우 28살의 나이로 운남대학 교수로 채용된다. 1940년 오함은 서남연대(西南聯大)로 옮겨 교수가 되고 그때부터 공산당과 접촉하게 된다. 오함의 부인 원진(袁震)은 중공원로 동필무(董必武)의 제자이고, 두 사람은 함께 중경으로 가서 동필무를 만난 적도 있다. 1943년 7월, 오함은 곤명(昆明)에서 중국민주동맹(中國民主同盟)에 가입하고, 공산당이 조직한 "서남문화연구회"등에서 활동하면서, 완전히 호적의 "독서구국(讀書救國)"론을 포기하며 중국공산당의 지도를 받으며, .. 2023. 2. 25.
류창동(劉强東)사건: 가장 수치스러워야할 인물이 드러나지 않았다. 글: 연무쌍(燕無雙) 류창동사건이 이미 종결되었다. 요 며칠간 인터넷에는 그에 관한 글이 아주 많이 올라오고 있다. 장저텐(章澤天, Nancy Chang, 류창동의 부인)이 잘 생각했다고 칭찬하는 것도 있고, 류창동의 허리띠가 너무 느슨했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고, 장저텐이 돈때문에 참았다고 조롱하는 것도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유학생 류징야오(劉靜堯)가 후안무치하다고 욕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모두가 주목하지 않은 한 인물이 있다: 정말 수치스러운 인물은 바로 그 여학생을 부호와 만나도록 주선한 중국교수가 아닐까? 1 중국의 배주(陪酒, 술자리에 여자를 앉히는 것)문화는 역사가 길다. 남자들끼리만 술을 마시면 재미가 없다. 재능있는 젊은 여자들을 몇몇 불러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술을 권하게.. 2022. 10. 7.
장백령(張伯苓): 남개대학(南開大學)의 창립자, 그리고 주은래(周恩來)와의 관계 글: 임휘(林輝) 당금 중국대륙의 명문대학중에서 천진의 남개대학은 역사가 깊은 곳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이 대학에서 주은래가 공부한 적이 있다고 알고 있다. 남개대학의 창립자인 장백령은 남개대학을 창립했을 뿐아니라, 남개중학, 남개여자중학, 남개소학, 중경남개중학등 남개시리즈학교들을 창립하여, 민국시기 중국 사립학교의 모범이 되었다. 장백령은 스스로를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나는 천재도 아니고, 장점이랄 것도 없다. 내가 평생 노력하여 자그마한 성취를 이룬 것은 내가 교욱에 대하여 신앙과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일 뿐이다." 그와 일찌기 남개대학을 다닌 적이 있는 주은래간의 이야기도 중공의 당매체에서 계속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는 것이 있다. 옛날 주은래는 장백령에게 제적당.. 2022. 7. 22.
진대손(陳垈孫): "무문서동(無問西東), 방득시종(方得始終)" 글: 민국문예(民國文藝) 1943년, 서남연대(西南聯大) 경제학과. 교실은 학생들로 물샐 틈도 없었다. 경제학과 학생들 뿐아니라 다른 과에서 온 사람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 인기있는 과목은 재미있고 통속적인 과목이 아니었다. 추상적인 용어들이 난무하는 전문과목이었다. 경제학개론. 이 강의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교수가 비범하기 때문이었다. 수업을 시작하기 5분전, 한 키가 큰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그는 잘 다림질된 흑색의 양복과 하얀색의 와이셔츠를 입고 있었으며, 그 모습은 임풍옥수(臨風玉樹)같았다. 그는 강단에 서서, 가볍게 미소를 짓고는, 담담하고 고귀한 기질을 드러냈다. 순식간에 시끄럽던 강의실은 조용해지기 시작한다. 그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칠판에 영문단어 하나를 적었다. "wants" 그후.. 2022.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