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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원배14

100년전 중국 지식인들의 기개 글: 굴강적아아(倔强的丫丫) 채원배(蔡元培): 자유가 없는 대학교장은 하지 않겠다. 채원배는 일생동안 여러번 사직했다. 그중 북경대학 교장으로 있을 때만 하더라도 전후로 여러번 사직했다. 그는 1917년 1월 4일 북경대학 교장직에 올랐는데, 7월 3일 여원홍(黎元洪) 총통에게 사직서를 제출하여, 장훈(張勛)의 복벽(復辟)에 항의했다. 1923년 1월 17일 채원배는 다시 분노하여 사직서를 제출한다. 다음 날 그는 에 북경대학 교장직무를 사임한다는 성명을 싣는다: "채원배는 인격을 지키려는 생각에서, 사법독립과 인권에 간섭해야한다고 주장하는 교육당국과는 더 이상 연락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미 총통에게 국립북경대학 교장의 직을 사임하겠다고 하였다. 오늘부터 더 이상 학교 업무를 보지 않겠다. 이에.. 2021. 12. 2.
손월기(孫越崎): 5.4운동에서 삼협공정반대운동까지.... 글: 왕유락(王維洛) 역사는 만화경이다. 원래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같은 사건, 서로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하나로 연결시킨다: 6.4운동의 폭력진압과 삼협공정의 추진, 5.4운동때 천진의 학생지도자와 북경대학의 교장 채원배, 북양대학에서 제적된 학생과 민국시대의 가장.. 2019. 5. 16.
오치휘(吳稚暉): 민국제일매장(民國第一罵將) 글: 채휘(蔡輝) "출판계에서, 요 칠년간 2,3부 이상 볼만한 책이 없다....나중에 내가 찾고 찾다가 겨우 오치휘 선생의 <상하고금담(上下古今談)>을 얻어서, 무호로(蕪湖路)로 가져가서 읽었다. 나는 이런 괴현상을 보고는 정말 방성대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중국인이 배가 고프.. 2018. 10. 24.
홍루몽의 작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글: 자주군(煮酒君) 홍루몽의 작가가 누구냐고 얘기하면 아마도 90%이상은 조설근이라고 말할 것이다. 확실히 이것은 많은 사람들 사이에 컨센서스가 이루어진 것같다. 그러나,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은 기실 중화민국시대에 이루어진 하나의 고증때문이다. 홍루몽은 처음에 <석두기(石.. 2016. 5. 1.
왕국유(王國維) 자살의 수수께끼 글: 양혜왕(梁惠王) 1927년 6월(음력 오월 초사흘), 저명한 학자 왕국유는 이화원의 곤명호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나이 겨우 51살이었는데, 장년이라고 할 만한 나이였다. 그의 죽음은 중국학술계에 큰 손실이었다. 그래서 저명한 역사학자 고힐강이 쓴 기념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는 학.. 2015. 1. 19.
북양총리 조병균(趙秉鈞)은 왜 원세개에게 암해(暗害)를 당했는가? 글: 장부걸(張溥杰) 조병균은 자가 지안(智安)이고 하남 임여(臨汝) 사람이다. 1859년에 태어나서 1914년에 사망한다. 그의 신세내력은 상당히 전설적이다. 상당히 "이 형님은 하나의 전설이다"라는 대단한 기운이 느껴진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는 "어려서는 유랑아로 성이 무엇인지도 .. 2014. 1. 14.
이대쇠(李大釗, 리다자오)의 후손중 3명의 고관 글: 왕남방(王南方) 이대쇠는 하북성 낙정현(樂亭縣) 사람이다. 중국공산주의운도으이 선구이며 최초의 마르크스주의자이고, 공산당의 주요 창시자중 한 사람이고, 저명한 학자이다. 이대쇠는 비록 일찌감치 떠났지만, 풍부한 혁명유산과 정신재부를 남겼다. 그가 만든 청정근근(淸正勤.. 2013. 12. 26.
홍루몽은 어떻게 중국제일명저로 되었는가? 글: 주가웅(朱家雄) "사대명저(四大名著)"는 오늘날 중국인들에게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은 말이다. <삼국연의>, <수호전>, <서유기>, <홍루몽>(책이 만들어진 순서)의 이 4권의 거작은 중국백성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소설이며, 방대한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을 뿐.. 2013. 12. 24.
북경대학은 "세 마리 토끼"때문에 유명해졌다. 글: 유계흥(劉繼興) 호적(胡適)은 농담처럼 이렇게 말할 바 있다: "북대는 세 마리 토끼때문에 유명해졌다" 이 "세마리 토끼"는 각각 채원배(蔡元培), 진독수(陳獨秀), 호적이다. 세 사람은 모두 토끼띠이다. 채원배는 동치 정묘년(1867년)생이고, 진독수는 광서 기묘년(1879년)생이며, 호적은 .. 2013. 11. 27.
송교인암살사건: 그는 어떻게 암살당했는가? 글: 김만루(金滿樓) 송교인은 근대 호남의 걸출한 인물이다. 그의 일생은 유성과 같다. 생명중 가장 휘황하고 가장 찬란한 순간에 사라졌다. 역사와 후인들에게 큰 유감과 상상의 공간을 남겼다. 송교인의 생명은 아주 짧았다. 암살당하는 그 해에 그는 겨우 32살이었다. 그러나 이 32년의 .. 2013.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