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경16 지폐(紙幣)는 어떻게 남송을 흥하고 망하게 하였는가? 글: 천하전서(天下電書) 북송, 남송 가운데, 남송은 항상 문약(文弱)하다고 인식되고 있다. 기실 화폐제도에서 검토해볼만한 점이 있다. 남송은 대체적으로 북송의 제도를 그대로 승계하지만, 남송은 동남쪽의 일부 영토만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중심지가 남쪽으로 이전하게 되고, .. 2018. 2. 5. 사상잠화(四相簪花): 신기한 송나라때 이야기 글: 노채(老蔡) 명나라 구영(仇英)의 <사상잠화도> 송나라때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다. 문인과 사대부들은 그런 이야기를 모아서 기록으로 남기길 좋아했다. <몽계필담보록권삼> <후산담총> <청파잡지>에는 모두 같은 이야기 하나를 적고 있다. 즉, "사상잠화"이야기이다.. 2017. 12. 10. 송영종(宋英宗) 조서(趙曙): 비빈을 두지 않은 황제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후궁 비빈이 3천에 이르는 황제는 아주 많다. 그러나, 비빈을 두지 않은 황제는 보기 힘들다. 역사자료를 뒤져보면 이렇게 비빈을 두지 않은 황제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바로 송영종 조서이다. 송영종 조서와 황후 고씨(高氏)는 청매죽마(靑梅竹馬)의 서로 사랑하.. 2017. 10. 30. 송체자(宋體字)는 진회(秦檜)가 만든 것인가? 글: 정계진(丁啓陣) 송나라때의 저명한 매국노 진회를 변호사는 의견중 하나는, 바로 진회는 송체자를 발명하는데 공로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견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 송체자는 진회가 발명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서체전승과 문헌기록 두 방면에서 증명할 수 있.. 2014. 1. 14. 송휘종(宋徽宗)과 이사사(李師師) 글: 문재봉(文裁縫) 송휘종 조길(趙佶)은 일생동안 경박하게 지냈다. 화목석죽, 조수충어, 훈정서화, 산선도교를 좋아하는 외에, 여색을 목숨처럼 좋아했다. 나중에는 하루종일 여색에 빠졌다. 방탕한 생활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송휘종의 후궁은 구름처럼 많았고, 수량이 놀라웠다. .. 2013. 5. 18. 채경비(蔡京碑)의 막후이야기 글: 진령신(陳令申) 문헌자료기록에 따르면, 충칭(重慶)시 서부에 있는 다주(大足)의 북산(北山) 불만(佛灣)에 있는 많은 불상들 중에 석비(石碑)가 하나 서 있다. 높이는 3.7미터, 너비는 1.37미터이고, 비의 한가운데에는 전서(篆書)로 두 줄이 새겨져 있다: "조의간공신도비(趙懿簡公神道碑.. 2012. 9. 19.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