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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패선7

우주대장군(宇宙大將軍) 후경(侯景)의 황제몽(皇帝夢) 글: 진량(陳良) 남북조시기는 중국이 남북으로 분열된 상태였다. 남조(南朝)는 차례로 송(宋), 제(齊), 양(梁), 진(陳)으로 이어지고, 북조(北朝)는 차례로 북위(北魏), 동위(東魏)와 서위(西魏), 북제(北齊)와 북주(北周)이다. 이 시기는 이전의 동진(東晋), 오호십육국(五胡十六國)을 포함하여, 왕조교체가 아주 빈번했고, 적지 않은 강자들이 속속 등장했다. 힘만 있으면 제왕이 될 수 있었다. 이는 바로 "성두변환대왕기(城頭變幻大王旗)", "강산대유황제출(江山代有皇帝出), 각령풍소약간년(各領風騷若干年)"이었다. 진승(陳勝)이 "왕후장상에 씨가 따로 있느냐"고 말한 것처럼 특히 난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황제몽을 꿈꾸었던가? 후경(侯景)이라는 사람은 그런 꿈을 꾸었을 뿐아니라 며칠간 황제를 지내기.. 2023. 6. 13.
진문제(陳文帝) 진천(陳蒨): '남황후'를 세우려 한 황제 글: 역사백가회(歷史百家匯) 진문제 진천에 대해 얘기해보자. 진천이라는 인물은 역사상 평가가 상당히 좋다: "어려서는 민첩하고 도량과 견식이 있었으며, 용모가 아름다웠다. 경전과 사서를 중시하여 행동거지가 우아했으며, 모든 일을 예법에 맞추어 했다." 한마디로 하면 학식도 있고, 용모도 뛰어난 자질이 높은 종합적인 인재라는 말이다. 다만, 진천이 등극한 것은 하늘의 조화라 할 수 있다. 기실 진나라에서 당시 진천의 지위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는 진나라의 창업자 진패선(陳覇先)의 조카이다. 이런 신분으로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역사상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여러가지 전제가 만족되어야 한다. 황상에게 아들이 없어야 하고, 아들이 있더라도 무능하고 불효하여야 한다. 그러나, 진패선의 아들 .. 2021. 6. 11.
남조(南朝) 진(陳)의 4명 황제는 모두 선종(善終)했다. 글: 풍현일(馮玄一) 남북조시대를 얘기하자면 처음 받는 인상은 동탕불안(動蕩不安)하고 살륙이 무수히 벌어지고, 왕조교체가 빈번했으며 황제도 주마등처럼 계속 교체되었으며, 매번 왕조교체마다 혈우성풍이 불었고, 사방에서 살륙이 일어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건강(지금의 남경)에 도읍을 정했던 진왕조는 완전히 예외이다. 진왕조의 4명 황제는 모두 선종했다. 마지막황제인 진후주조차도 선종한다. 아래에서 하나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1. 진무제(陳武帝) 진패선(陳覇先) 진패선은 자가 흥국(興國)이다. 이름 자체가 패기넘친다. 그는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였으나 뜻은 크게 품었다. 그는 진취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군대에 들어가서 전공을 세워 양(梁)나라에서 자리를 잡는다. 양무제는 불교를 독실히 믿어, 후경(侯.. 2020. 7. 10.
의문진씨(義門陳氏): 천하제일가 글: 능한화지초(凌寒花枝俏) 중국에서 진(陳)는 평범하기 그지없는 성씨이다. 최신의 성씨통계에서 진시는 이(李), 왕(王), 장(張), 유(劉)의 뒤를 이어 5위에 랭크되었다. 아는 사람중에 진씨가 한 명도 없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모든 성씨는 역사를 얘기하면 전설적이고 비장한 점.. 2018. 12. 28.
진패선(陳覇先): 사후 30년만에 유골이 불태워진 개국황제 글: 진령일백(秦嶺一白) 진패선의 일생은 그의 이름과 마찬가지로 패기가 넘쳤다. 가난한 집안 출신의 그는 귀인의 도움과 스스로의 노력으로 마침내 남조의 권력최고봉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천도는 다시 윤회하는 법. 보복이 빠지지 않았다. 남량(南梁)의 무제(武帝) 소연(蕭衍)의 전.. 2018. 5. 11.
"위무왕상소용(魏武王常所用)" 석패(石牌)는 위조된 것이다. 글: 임규성(林奎成) 조조묘의 진위는 2009년말부터 소식이 나와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조지지파"들은 여러가지 증거를 내놓고 있고, "철증(鐵證)"을 내놓고 있다. 이에 비하여 "조조반대파"는 비록 여러 각도에서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저 의문제기에 그치고 있다. 지금까지 상대방.. 2013. 4. 13.
진패선(陳覇先)과 왕승변(王僧辯): 원한은 복수를 낳고… 글: 예방육(倪方六) 진패선(진무제) 사건은 왕왕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아마도 이것이 민간에서 말하는 인과응보인지도 모르겠다. 특히 도굴사건을 보면, 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소명태자 소통(蘇統)은 두즉(杜崱)의 조상묘를 파헤치고, 나중에 두즉은 소통의 묘를 파헤친다. 이 글에서 얘기할 것도 이런.. 2010. 10.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