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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남북조)

진문제(陳文帝) 진천(陳蒨): '남황후'를 세우려 한 황제

by 중은우시 2021. 6. 11.

글: 역사백가회(歷史百家匯)

 

진문제 진천에 대해 얘기해보자. 진천이라는 인물은 역사상 평가가 상당히 좋다: "어려서는 민첩하고 도량과 견식이 있었으며, 용모가 아름다웠다. 경전과 사서를 중시하여 행동거지가 우아했으며, 모든 일을 예법에 맞추어 했다." 한마디로 하면 학식도 있고, 용모도 뛰어난 자질이 높은 종합적인 인재라는 말이다. 다만, 진천이 등극한 것은 하늘의 조화라 할 수 있다.

 

기실 진나라에서 당시 진천의 지위는 아주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는 진나라의 창업자 진패선(陳覇先)의 조카이다. 이런 신분으로 후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역사상 완전히 불가능한 일은 아니나, 여러가지 전제가 만족되어야 한다. 황상에게 아들이 없어야 하고, 아들이 있더라도 무능하고 불효하여야 한다. 그러나, 진패선의 아들 중에서 인재가 있었다. 바로 진창(陳昌)이다.

 

진창에 대하여 사서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용모위려(容貌偉麗), 신정수랑(神情秀朗), 아성총변(雅性聰辯), 명습정사(明習政事)" 이런 아들을 두었으니 진패선은 분명히 만족했을 것이고, 그를 특별히 배양했다. 예를 들어, 진군(陳郡)의 사철(謝哲), 제양(濟陽)의 채경력(蔡景歷)으로 하여금 진창을 보좌하게 했고, 다시 오군(吳郡)의 두지위(杜之偉)를 파견해서 진창에게 경서를 가르치게 한다. 이들은 당시에 모두 명사들이고, 능력있는 자들이다.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으면 진창이 진나라의 미래 황제에 오를 터였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한다. 원래 당시 제국은 사분오열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이때까지는 아직 梁나라이다. 진패선은 이때 군정대권을 장악했지만, 아직 시기가 도래하지 않아 황제로 등극하지는 않고 있었다). 진패선은 내우외환을 해결하느라 바빴는데, 자신의 뒷마당에서 사건이 터질 줄은 몰랐다. 아끼는 아들이 당시의 적국인 서위(西魏)에 포로로 잡혀 장안으로 끌려간 것이다. 이를 통해 서위는 진패선을 협박했다.

 

진패선은 그래도 웅주이다. 자잘한 일에는 구애받지 않았다. 아들이 네 손에 있으면 죽이든지 말든지 네 맘대로 해라라는 태도를 보인다. 서위에서는 이 일은 가지고 너무 심하게 압박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진창은 그들에게 좋은 카드이니까. 그리하여 '인질'이지만 대우는 잘 해주었다. 당연히, 협상은 지지부진했다. 나중에 진패선은 황제에 오른다. 그러자, 인질문제가 다시 부상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과 진천이 무슨 관계일까 궁금할 것이다. 곧 진천이 역사무대에 등장하게 된다. 원래, 진(陳), 주(周) 두 나라의 협상은 아직 시작되기 전에(이때는 이미 서위가 주로 바뀐 후이다), 진패선이 먼저 사망하게 된다. 이는 신흥제국에 큰 문제이다. 그리하여 국면을 안정시키기 위해, 당시 군대의 총사령관인 후안도(侯安都)가 이렇게 제안한다. 나라에 하루라도 국군이 없을 수 없다. 그리하여 재능이 뛰어난 진천이 추대를 받아 황제에 등극하게 된다.

 

처음에 등극했을 때는 진천의 앞에 문제가 많았다. 그 중 아래의 두 가지가 가장 골치아팠다.

 

첫째, 당형제인 진창이 아직 살아 있다.

 

원래 북주는 진나라의 정치상황을 혼란시키기 위해 한가지 수완을 부린다. 즉, 공개적으로 그리고 기세등등하게 '후계자'인 진창을 진나라로 되돌려 보낸 것이다. 진창은 이때 분명 불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자기 부친이 일궈놓은 정치적 유산을 사촌이 다 차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창은 진천에게 서신을 보낸다. 그 뜻은 황제의 자리를 돌려달라는 것이다.

 

다만, 황제라는 자리는 누구든지 한번 오르고 나면 내려오기 싫을 거시다. 그래서 진천은 마음을 다져먹고, 진나라로 돌아오는 진창의 일행을 장강에서 침몰시켜버린다. 그리고 다음 날 진천은 매우 슬퍼하며 조서를 내린다: 전 진나라 태자는 강에서 배가 침몰하여 익사했다. 당연히 요란하게 장례식까지 치루어준다.

 

둘째, 후안도가 세력을 믿고 교만했다.

 

후안도는 진천을 황제로 옹립한 공이 있다. 게다가 군내내에서도 지위가 상당했다. 그러다보니, 점점 진천이라는 새 황제를 눈아래 두지 않게 된다. 그의 문객은 천명이 넘는다. 이들은 나라를 위해 도움이 되는 일은 별로 하지 않고, 그저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놀았다. 그리고 일부는 후안도와의 관계를 믿고, 도처에서 사람들을 괴롭히며 사건을 일으키고는 후안도의 집에 숨는다. 이런 일들에 대하여 진천은 후안도에게 무슨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일단 언급하게 되면 분명 험한 말이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진천은 식사자리를 마련해서, 후안도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식사도중에 술잔을 깨트리는 것을 신호로 금군이 달려들어 후안도를 참해버린다. 이렇게 하여 불안요소를 모조리 제거하고, 국가는 안정국면에 접어든다.

 

한가지 추가하자면, 진천의 일생에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고, 아주 재미있다.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즐겨 얘기하는 것이다. 진천이 아직 황제에 오르기 전에, 한 미남을 만난다. 이름은 한자고(韓子高)이다. 그는 "용모염려(容貌艶麗), 섬연결백(纖姸潔白), 진수고발(螓首膏髮), 자연아미(自然娥眉)"  두사람은 뜻이 잘 맞았다. 나중에 진천은 이런 맹세를 한다. 그가 나중에 등극을 하게 되면 반드시 '남황후'의 자리를 만들어 한자고를 앉히겠다는 것이다. 당연히 등극한 후에는 대신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닥쳐 결국 성사되지 못하기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