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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용7

진시황의 병마용(兵馬俑)과 "요괴(妖怪)" 이야기 글: 악남(岳南) 1974년 봄, 진시황릉의 아래에 위치한 섬서성 임동현(臨潼縣) 서양촌(西楊村)의 야외에서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한무더기의 도기파편을 발견한다. 나중에 국가문물국과 고고학자들의 감정을 거쳐 진시황릉에 배장된 병마용 군진(軍陣)으로 밝혀진다. 이해의 7월 15일 오후, 섬서성 고고학자인 항더저우(杭德洲), 위안중이(袁仲一)등 일행은 도구를 가지고 서양촌의 큰 나무 아래에 텐트를 치고, 농민들이 우물을 팠던 현장을 탐사하기 시작한다. 현지농민이 파낸 깊이 4.5미터의 네모난 갱을 보니, 단면으로 볼 때 농경층 이하는 홍소토(紅燒土), 회신(灰燼), 도편(陶片)과 병마용의 머리, 팔, 다리로 가득했다. 병마용은 이미 부서져서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크기는 알아볼 수 있었다. 이런 규격의 도용.. 2020. 12. 9.
<홍루몽>작자: 효렴공(孝廉公)과 조설근(曹雪芹) 글: 토묵열(土默熱) 호문빈(胡文彬) 선생의 <부상담홍류유고(扶桑談紅榴遺稿) - 황준헌(黃遵憲)과 일본우인의 홍루몽필담>이라는 글에서, 청나라 광서4년 무인년(1878년) 중국근대의 저명한 학자이자, 대시인이며 당시 일본대사관 참찬으로 있던 황준헌이 대사관직원인 매사(梅史), 칠.. 2020. 1. 16.
병마용(兵馬俑)중 녹색 얼굴의 진용(綠臉俑)을 둘러싼 수수께끼 작자: 미상 진시황릉 병마옹에는 각양각색의 진용이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녹색얼굴의 진용은 발견된 날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문가 학자, 보통관중들도 속속 각종 의문과 주장을 내놓고, 논쟁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진용의 얼굴은 왜 녹색이 되었을까? 이는 사람들의 .. 2018. 12. 2.
병마용갱은 누가 불태웠는가? 글: 진경원(陳景元) 고고여론몰이는 인심을 얻을 수 없고, 부도덕한 짓이다. 문제는 이렇게 발생해서는 안되는 일이 지금 다시 한번 세상 사람들의 앞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CCTV와 섬서TV의 현장중계를 통하여, 곧이어 각 매체의 제1면 뉴스를 통하여, 가장 높은 빈도로 계속.. 2012. 6. 11.
병마용을 발견하기 이전에 있었던 "요괴(妖怪)" 사건 글: 악남(岳南) 1974년 봄, 진시황릉의 아래에 위치한 섬서성 임동현 서양촌의 야외에서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도기무더기를 발견한다. 나중에 국가문물국의 고고학 전문가가 감정한 결과 진시황릉에 배장(陪葬)된 병마용 군진이었다. 그해 7월 15일 오후, 섬서성 고고학전문가인 항덕주(杭德洲), 원중.. 2009. 11. 19.
진시황릉을 둘러싼 논쟁 정리: 방산인(方山人) <<도시문화보>>와 <<금릉만보>>등 매체, 그리고 진경원(陳景元)이 시나닷컴의 블로그상에 연속하여 "병마용의 주인은 진시황이 아니다>>라는 놀랄만한 견해를 밝힌 이후, 고고학계의 권위자들은 서로 다른 의견을 나타내고 있고, 진경원도 이에 대하여 상대.. 2007. 6. 27.
병마용의 병사들은 왜 투구를 쓰고 있지 않은가? 진시황의 병마용을 가서 본 사람들은 한가지 사실에 의문을 느꼈을 것이다. 많은 사병들이 머리에 작은 동그란 모자를 쓰고 있는데, 고고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것은 마포(麻布)로 만든 두건이라는 것이다. 장교모양을 한 사람들은 소가죽으로 만든 판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다. 더 많은 사병.. 2006.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