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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진시황)

병마용(兵馬俑)중 녹색 얼굴의 진용(綠臉俑)을 둘러싼 수수께끼

by 중은우시 2018. 12. 2.

작자: 미상





진시황릉 병마옹에는 각양각색의 진용이 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녹색얼굴의 진용은 발견된 날로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전문가 학자, 보통관중들도 속속 각종 의문과 주장을 내놓고, 논쟁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진용의 얼굴은 왜 녹색이 되었을까? 이는 사람들의 여러가지 추측을 불러왔다.


녹검용은 기출토된 1500개의 병마용의 진용중 유일하게 녹색얼굴을 가진 진용이다. 이 진용의 '녹색얼굴'은 어떻게 형성된 것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가? 진용은 제작초기에 복색, 병기부터 얼굴색, 용모까지 모두 진짜 사람, 진짜 말을 사실적으로 만든 것이다. 통상적으로 우리가 보는 진용의 얼굴색은 모두 분홍색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여 녹색얼굴의 병마용이 나타나게되었을까?


추측 1 장인들이 장난으로 만들었다.


섬서역사박물관 관장 청젠정(成建正)에 따르면, 이 녹색의 무릎꿇고 활쏘는 용은 병마용박물관에서도 딱 1번 전시했을 뿐이고, 평소에는 베로 병마용을 싸놓는다고 말한다. 이 진용은 고고팀이 1999년 9월 10일 제2호갱에서 발견한 것이다. 전체 병마용의 몸에는 색이 칠해져 있는데, 특히 얼굴의 채색은 완전하다. 눈은 흰색이고, 눈동자는 검은색이며 두 눈은 형형하게 빛난다. 다른 병마용과 다른 점이라면 옅은 분홍색의 얼굴색이 아니라 옅은 녹색의 얼굴색을 가졌다는 것이 특히 주목을 끈다. 이 진용의 출토는 전문가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왔는데, 어떤 사람은 '녹색얼굴'이 장인의 장난일 거라고 추측한다.


추측 2 만마군내의 나인(儺人)


어떤 학자는 '녹색얼굴의 진용은 군대 안의 나인'으로 보는 것이 비교적 정확할 것이라고 말한다. 원고시대에는 병과 악귀를 쫓는 무당의 제사활동이 군대내에서도 행해졌다. 첫째, 당시에 나례(儺禮)가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나무(儺舞)는 하, 상, 주때 예제에 포함되고, '국나(國儺)', '천자나(天子儺)', '대나(大儺)'등 서로 다른 규모와 등급의 나제(儺祭)가 있었다. 둘째, 나례는 군사적 성격과 관련이 있다. 진용갱의 진군진은 현실을 그대로 모방했는데, 주나라때, '나례'는 오례의 하나인 군례(軍禮)의 항복이 되었다. 나례의 주요임무는 정기구나(定期驅儺)와 죽은 제왕장상의 장례로 나뉜다. 주나라때 나례의 주인공은 방상씨(方相氏)(이다. 군정(軍政),군부(軍賦)를 담당하는 대신인 하관대사마(夏官大司馬)가 주재했다. 방상씨 본인은 작위가 없고, 사대부의 급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귀신과 병을 쫓는 하급전문장교이다. 방상씨는 '광부(狂夫)'라고 불리는데, 그것은 그들이 키도 크고, 힘도 세고, 능력이 뛰어난 군대내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주나라때 나례의 의미는 바로 '군인이 귀신과 병과 싸워서 이긴다'는 것이다. 셋째, 진문화와 초문화는 비교적 밀접한 관계에 있다. 무당을 중시하는 신비색채는 초문화의 최대특색이다. 진릉출토문물에는 비교적 많은 초문화특징이 있다. 예를 들어, 동거마(銅車馬)에 채색문양, 병마용갱에 청고니(靑膏泥)를 바른 것등은 모두 초나라문화와 비교적 강한 관계가 있다.


추측 3 얼굴을 녹색으로 칠해서 적군을 놀라게 하기 위한 것이다.


어떤 전문가의 추측에 따르면, 전국시대 출병하여 전투를 할 때, 어떤 국가에서는 왕왕 소의 뿔에 칼을 묶고, 사병의 얼굴에 각양각색의 색깔을 칠해서 죽군을 놀라서 도망치게 했다고 한다. 진용의 얼굴에 녹색을 칠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전문가의 해석에 따르면, 녹색은 아마도 피부색을 표현하는 또 다른 일종의 수법일 뿐이고, 원래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추측 4 장인이 색맹일 것이다.


"병마용2호갱이 한 과동(過洞)에서 당시에 8개의 무릎을 꿇고 활을 쏘는 진용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색을 칠하고 있었다. 나머지 진용의 얼굴색은 모두 분홍색이고 사람의 얼굴색에 가깝다. 단지 1개의 진용의 얼굴색깔이 녹색이어서 기이하게 여겼다." 서안 곤명로에 거주하는 노철문(魯哲文)은 진문화를 많이 연구해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녹색얼굴의 진용의 경우 얼굴은 녹색인데, 손은 분홍색이다. 이것은 녹색인종같은 가능성은 배제해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가지 가능성은 장인이 색을 칠할 때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진용을 제작한 장인은 식맹이어서 색깔을 착각했을 수 있을 것이다.


추측 5 창의적이고 개성적인 작품이다.


또 하나의 추측은 진용은 진시황지하왕국의 위수부대이면서, 동시에 도소(陶塑)와 채회(彩繪)가 결합된 예술품이다. 이 점은 병마용의 서로 다른 얼굴표정, 복장양식, 머리카락모양에서 확인된다. 진용이 사실의 기초 위에서 장인의 생활에 대한 세밀한 간찰과 인간개성에 대한 이해를 융합하였다는 것을 설명해준다. 녹색얼굴의 진용은 장인이 대담하게 개성을 드러낸 '특이한' 창의작품이다.


이 설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진나라때 장인들에 대한 요구는 아주 엄격하겨, 매 장인은 그의 작품에 책임을 져야 하고, 그의 이름을 새겨 놓았는데, 만일 실수를 하게 되면 처벌을 받아야 하고, 중대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래서 생명위험을 무릅쓰고 예술창작을 할 장인은 있을 수 없을 것이라고 본다.


추측 6 특별한 호신부


적지 않은 녹색얼굴의 진용을 본 여행객들은 고대인이 길상기복(吉祥祈福)등 예의활동을 중시했는데, 사병들이 전쟁터에 나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안'이다. 그래서 얼굴에 녹색을 칠했는데, 아마도 '평안'을 암시하는 호신부일 수 있을 것이다. 그 힘을 빌려 생명을 지키려 한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얼굴에 녹색을 칠하는 것이 호신부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역사문헌이나 전문자료에도 그에 관한 기록이 없다.


추측 7 소수민족의 상징


"희극무대의 검보(臉譜)를 보면 홍색은 충용(忠勇)을 대표하고, 백색은 간사(奸詐)를 대표하며, 흑색은 경직(耿直)을 대표하고, 녹색은 '외번(外藩)'을 대표한다. 즉, 소수민족의 상징이다." 독자 양샤오방(楊曉芳)은 이러게 말한다. 검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이를 통해서 녹색얼굴의 진용은 어떤 소수민족문화요소의 특색을 도용에 반영한 것이 아닐까라고 한다. 그에 따르면, 지리적 위치로 볼 때, 진나라사람들은 입국초기 농동(隴東)지구인데, 바로 지금의 감숙성 동부 천수 일대이다. 이곳은 다민족이 서로 만나는 곳이다. 진나라사람들은 소수민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역사문헌으로 보면, 진나라의 신민은 서로 다른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채광으로 유명해져서 진시황의 인정을 받은 파(巴)족의 과부청(寡婦淸)도 있고, 힘든 것을 견디며 산지에서 살아가는 총인도 있다. 총인은 지금 사천, 호남일대의 소수민족이다. 그리고 강족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중 하나이며, 진나라사람의 중요구성부분이 된다. 그리고 전쟁의 실제를 보더라도, 진군은 서로 다른 민족의 각종 전법을 광범위하게 흡수했고, 서로 다른 민족에 마음이 열려 있다. 강적 흉노에게서는 군사기술을 배운다. 이를 보면, 지하 진용군진의 녹색얼굴진용은 아마도 소수민족의 상징일 것이다.


추측 8 색깔이 변한 것이다.


"병마용은 지하에서 2000여년간 있었다. 몸에 칠한 채색안료에 변화가 발생했을 수 있다. 이 녹색얼굴 진용은 원래의 분홍색에서 녹색으로 변했을 것이다." 서안문리학원 1학년생인 류샤오(劉曉)의 의견이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전문가를 만나보았는데, 전문가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연구,분석을 거쳐, 병마용의 몸에 칠해진 채색안료는 변화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녹색은 주로 의복에 칠해졌다. 녹색은 바로 녹색이고, 분홍색은 피부색을 표현한다. 옅어지거나 하얗게 될 수는 있지만,녹색으로 변할 수는 없다. 이 병마용이 왜 녹색인지에 대하여 현재까지 제대로 된 해석은 없다.


녹색얼굴 진용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녹색얼굴 진용의 비밀을 풀고자 한다면, 문화재전문가들이 병마용에 대하여 더 깊이있게 연구하고 발굴해야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수수께끼가 풀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