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교병변17 조광윤은 주세종의 아들들을 어떻게 하였는가? 글: 왕국동(王國棟) 960년, 조광윤은 진교병변으로 후주(後周)의 강산을 빼앗아 북송(北宋)정권을 건립했다. 그러나 후주세종 시영(柴榮)의 가족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냐는 그의 큰 난제였다. 주세종 시영에게는 7명의 아들이 있었다. 장남 시종의(柴宗誼), 차남 시종성(柴宗誠), 삼난 시.. 2018. 12. 2. 진박(陳搏): 화산파의 조사로 알려진 그가 진교병변(陳橋兵變)의 기획자인가? 글: 취역사(趣歷史) (진박은 무협지에서 화산파의 조사로 알려져 있다) 사료에서 아주 재미있는 기록을 보았다. <소씨견문록>에 따르면, 진박은 일찌기 흰색나귀(白騾)를 타고 수백명의 떠돌이소년을 데리고 변량성(汴梁城)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도중에 돌연 놀라운 소식이 전해져 .. 2018. 8. 10. 애산해전(崖山海戰): 송나라의 비장한 최후 글: 강생연(姜生淵) 1279년, 애산(崖山), 바다에서 파도는 거칠었고, 바닷바람소리는 드높았다. 좌승상 육수부(陸秀夫)는 처자식이 울고불고 하는데도, 그들은 바다로 밀어넣었다. 그 후에 몸을 돌려 나이 겨우 7살 된 송회종(宋懷宗)에게 말한다: 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폐하는 마땅.. 2017. 10. 1. 진교병변(陳橋兵變)의 또 다른 버전 글: 장효민(張曉珉) 진교병변이라는 이 사건은 후인들이 최대의 정치적업적이라고 반복해서 얘기한다. 조광윤이 왕조를 바꾸어서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것이 아니라, 이 황제는 부하를 통제하고, 기존질서를 바꾸지 않아서, 백성들이 전란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주고, 이를 통하여 문.. 2016. 3. 2. [황자쟁위술] 광결붕당술(廣結朋黨術) 교장외위패(交將外圍牌) 병법에 이런 말이 있다: “장수는 밖에 나가 있으면, 군왕의 명도 받들지 않을 수 있다(將在外而君命有所不受).” 이는 봉건시대에 지방에 주둔하며 병사를 거느리는 장수의 권한은 공공연히 황제의 명에 항거할 수 있을 정도였다는 것을 말해준다. 당나라때가 최전성기인데, 그때의 지.. 2015. 8. 25. [황자쟁위술] 무장탈위술(武裝奪位術) – 시살부형패(弑殺父兄牌) 송명편 송나라를 건국한 송태조 조광윤은 960년 진교병변(陳橋兵變)으로 황제에 오른 후 17년간 황제로 지내다가, 976년 십월 십구일 밤에 갑자기 사망하는데, 그가 병을 앓았다는 기록은 없다. <송사>에는 그의 죽음을 아주 간단하게 기록하고 있다: “황제께서 만세전에서 붕어하시니 나이 .. 2015. 8. 6.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