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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교병변17

조광윤: 전설상의 미복사방(微服私訪) 글: 허석림(許石林) 송나라의 재상 조보는 사는 것이 아주 곤혹스러웠다. 다른 관리들은 퇴조한 후, 편안한 사복으로 갈아입고, 혹은 연회를 베풀거나, 혹은 금을 연주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가족들과 즐겁게 놀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가 그럴 수 없을 뿐아니라 만.. 2013. 4. 28.
양신(楊信)의 "사(詐)"와 조한(曹翰)의 "괴(乖)" 글: 안건회(晏建懷) 양신과 조한은 같은 점이 너무 많다. 나이도 비슷하고, 경력도 비슷하며, 최후도 비슷하다. 그들은 모두 군전소졸(軍前小卒) 출신으로 후주(後周)때 아교(牙校)와 같은 하급장교를 지냈다. 그리고 둘 다 송태조 조광윤 및 송태종 조광의를 따라서 전투에 참가한다. 모두.. 2012. 3. 28.
송태조 조광윤은 급사한 것이 아니다. 글: 유병광(劉秉光)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의 죽음은 사학계를 괴롭혀온 천년의 미스테리이다. 역대이래로 "촉영부성(燭影斧聲)"이라는 설이 있고,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의 죽음을 후궁의 스캔들과 관련시키기도 한다. 보통사람들은 조광윤이 비명에 죽었다고 알고 있다. 즉, 하.. 2012. 1. 7.
황포가신(黃袍加身): 조광윤은 훌륭한 연기자이다 글: 왕위(王偉) “황포가신”이라는 고사성어는 북송의 개국황제 조광윤(趙匡胤)에게서 유래되었다. 내용인 즉슨 이렇다: 조광윤의 부하가 그에게 황제에 오르라고 여러 번 요청했지만, 조광윤은 황제가 되고싶어하지 않았다. 부하는 황제가 입는 황색의 곤룡포를 강제로 그에게 입혔따. 조광윤은 어.. 2011. 4. 2.
천고기원(千古奇寃) : 조광윤의 진교병변에서의 역할 글: 고천유운(高天流雲) 송나라역사에 관한 자료를 뒤적거리다보면, 북송(北宋)의 개국에 관한 장면에 예외없이 이런 역사적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후주(後周)의 공제(恭帝) 시종훈(柴宗訓) 현득7년(960년) 원단에 거란이 침범했다. 조정에서 논의를 거쳐 금군통수, 전전도점검인 조광윤이 병력을 이끌.. 2007. 12. 20.
황제와 공신의 "죄수딜레마" 글: 후양방(侯楊方) 송나라의 개국은 희극적(戱劇的)이다. 겨우 이틀만에 이루어졌다. 당시 후주(後周)의 금군점검(禁軍點檢, 군총사령관에 해당함)을 맡고 있던 조광윤(趙匡胤)은 대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변경을 침입해들어온 요군(遼軍)과 사우러 가고 있었다. 군대를 이끌고 수도인 개봉을 떠나 멀.. 2007. 3. 25.
조보(趙普) : 송태조 조광윤의 군사 조보(922-992) 자는 칙평(則平), 조적은 유주 계현, 나중에 부친을 따라 낙양으로 옮김. 조보와 관련하여 가장 유명한 말은 "반부논어치천하(半部論語治天下, 절반의 논어를 가지고 천하를 다스리다)"이다. 그는 말년에 논어 이십권을 손에서 떼지 않았다고 하여 생긴 말이다. 어릴 때부터 관.. 2006. 2.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