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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조광윤)

진교병변(陳橋兵變)의 또 다른 버전

by 중은우시 2016. 3. 2.

글: 장효민(張曉珉)


진교병변이라는 이 사건은 후인들이 최대의 정치적업적이라고 반복해서 얘기한다. 조광윤이 왕조를 바꾸어서 새로운 왕조를 개창한 것이 아니라, 이 황제는 부하를 통제하고, 기존질서를 바꾸지 않아서, 백성들이 전란의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주고, 이를 통하여 문명과 이성의 신시대를 개창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아마도 사람들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부대를 통제하고 부하를 관리하는 것은 군대의 가장 기본적인 자질인데, 어떻게 이것을 최대의 정치적 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이 말은 틀리지 않는다. 다만 경험주의의 잘못을 범했다. 우리가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시가 어떤 시대였냐는 것이다.


그 때는 제자백가가 완전히 통제력을 상실한 시대이다. 그 때는 그저 강한 권력만 믿는 시대였다. 그 때는 중국이 대분열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 성을 함락시키고, 쿠데타가 일어난 후에 방화살인약탈을 벌이면서 개인적인 욕심을 채우는 것은 너무나 정상적인 일이었다.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는 사병작전의 유일한 동력이다. 네가 사병들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면, 그들 사병들은 아예 너를 따르지 않을 것이다.

멀리는 볼 것도 없이, 진교병변 10년전에 그 '일대명주'라고 불리던 곽위가 정변을 일으킨 후, 이렇게 명령을 내린 바 있다: 개봉성을 함락시킨 후, 사병은 그 안에서 3일간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다. 하고싶은대로 하면 된다. 나도 절대 막지 않겠다.


사료의 기재에 따르면, 이 새 황제의 수권하에 개봉성은 즉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다. 길거리에는 흥분한 후주의 사병으로 넘쳐났다. 이들 사병은 사람을 보면 죽이고, 재물을 보면 빼앗고, 부녀를 보면 간음했다. 개봉성으로 들어가는 도로는 시체로 길이 막힐 정도였고, 울음소리가 들판을 가득 채웠으며, 변하의 물도 붉은 색으로 바뀐다.

나중에, 이 활동이 단 하루가 지속되었는데, 곽위의 부하인 왕은, 곽숭, 조광윤등이 도저히 더 이상 두고 볼 수 가 없어, 그들이 연명으로 보고한다. 더 이상 이렇게 지속하면, 우리는 칭왕칭패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봉성에 백성 한 명도 남지 않게 되어, 텅빈 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곽위는 급히 명령을 거두고, 활동을 앞당겨 끝낸다고 선포한다. 다만, 참여했던 병사들은 이미 한창 흥이 올랐는데, 어찌 중도에 그만둘 수 있겠는가? 나중에 곽위가 직접 일을 벌이는 장수 몇 명을 직접 처형한 후에 모든 병사들이 비로소 멈추었다. 그제서야 자신의 군영으로 되돌아갔던 것이다.


이를 보면, 역사의 증인으로서, 당시 개봉성이 피비린내나는 시신으로 가득채우고, 곡성이 끊이지 않는 백성들로 가득차며, 철저히 미치광이처럼 날뛰던 도적같은 병사들을 보았다. 이 모든 것들은 조광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리하여 조광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일 그가 자신의 사병을 통제하지 못하면, 국면은 상상할 수 없을 지경이 될 것이라고.

사마광의 <속수기문(涑水紀聞)> 기록을 보면, 어찌어찌하여 '황포를 몸에 걸친 후'(黃袍加身) 이들 사병들을 통제하기 위하여, 조광윤은 즉시 여러 장수들에게 맹약을 하게 하고, 유명한 <약법삼장>을 반포한다:

첫째, 우리는 모두 소제(少帝)와 태후의 신하이다. 그들 고아과부를 괴롭혀서는 안된다.

둘째, 후주왕조의 문무백관은 모두 우리의 좋은 동지이다. 그들을 모욕해서는 안되고, 한 사람이라도 함부로 죽여서는 안된다.

셋째, 대군이 경성에 진입한 후, 모든 행동은 지휘를 따르라.


삼군장수들이 모두 동의한 후, 조광윤은 비로소 군대를 이끌고 개봉성으로 돌아간다. 예전에 성안을 도살하던 장면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게 하였다.

불가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목숨 하나를 구하는 것은 칠층석탑을 쌓는 것보다 공덕이 크다. 그리고 조광윤의 이런 조치는 무수한 무고한 백성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러니 보도중생, 공덕무량이라고 할 만하다.

이것만으로도 조광윤은 역사책이 이름을 올릴 만하고, 명군의 칭호를 들을 만하다.

당연히, 자신의 정치적 업적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신이 진교병변에서 세운 공로를 최대로 돋보이게 하려 할 것이다. 조광의(趙光義)가 이 사건을 자신의 공로로 삼지 않는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세번이나 <태조실록>을 수정하는 과정에서 조광의는 이 사건에 약간 손을 대어서, 그는 "고마진간(叩馬進諫)"의 장면을 추가했을 뿐아니라, 조보(趙普)의 역할도 많이 빼앗았다.

그리하여, 조광의가 새로 뜯어고치면서, 이 진교병변의 이야기는 '탈태환골, 전세중생'하게 된다.

이제, 우리가 그날 저녁으로 되돌아가보자. 조광의가 어떻게 이 역사를 새로 뜯어고쳤는지 한번 보자:


정월 초사흘, 나는 내전지후(內殿祗侯), 공봉관도지(供奉官都知)의 신분으로 나의 형을 따라 북상하여 외적의 침입을 막으러 갔다. 이 날, 대군은 질서정연하고 규율엄격했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떠서 싸우는" 기이한 광영이 나타난 것을 빼면 기록할만한 특별한 일이 없었다.

정월 초하슬 저녁, 대군은 진교역에 군영을 차린다. 그후 나는 막 휴식하려는데, 도압아(都押衙) 이외운(李外耘)이 먼지를 날리켜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금방 모두 아주 어려운 결정을 내렸습니다. 당신의 형을 황제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당시에 머리가 멍해졌다. 마음 속으로 생각하기를 문제가 너무 심각하다고 여겼다. 이 일은 중대하다. 그래서, 나는 이외운을 데리고 조보에게로 갔다. 이 어르신으로부터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 결과 내가 막 조보와 이 일을 상의하하자마자, 그들 '반란을 모의'한 장수들이 모두 몰려왔다.

이들 모반을 준비하고 나의 형을 황제로 모시려는 사람들에게, 나와 조보의 첫번째 반응은 이랬다: 안된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이들에게 말했다. "나의 형은 충성심이 가득한 신하이다. 그는 분명 대주왕조를 배반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너희같은 난신적자들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 말을 들은 후, 모두 생각하기를: 하늘에서 떨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만일 정말 떡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떡이 아니고 함정일 것이다. 우리 한번 마음을 터놓고 얘기해보자. 돌연 한 사람이 뭐가뭔지도 모르고 황제가 된다면, 그게 누구이든 그 사람이 조급하지 않겠는가.

결국 나와 조보가 잘 설득해서, 이들 장수들은 흩어지게 된다. 다만, 일단 화살을 쏘았다면 그 화살이 되돌아올 수야 있겠는가. 모두 이미 조광윤을 황제로 모시자고 한 마당에 이는 이미 황위찬탈음모를 꾸민게 아닌가. 설사 조광윤이 그들을 처리하지 않더라도, 돌아가면 시승훈(柴承訓)이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그들은 나와 조보에게 병기를 들고, 험악한 말을 했다: "군대내에서 집단행동으로 사사로이 논의하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 이미 결정을 내렸습니다. 태위(조광윤)께서 따르지 않으시면, 우리가 어찌 그냥 물러나서 화를 당하고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듣자, 나와 조보는 계속 설득했다: "이것은 아주 큰 일이다. 우리는 이렇게 함부로 일을 일으킬 수 없다. 먼저 전쟁부터 하고, 거란인들을 물리친 후에 다시 논의하자."

이 말을 듣고도 이들 장수들은 여전히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은 나와 조보에게 말했다: "군율에 따르면, 군내에서 집단으로 모반을 꾀하면 즉시 멸족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태위를 황제로 모시기로 했으니, 아마도 내일 해뜰 때까지 살아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가서 거란인을 물리치자고 하는데, 지금 태위께서 황위에 오르지 않으려 한다면, 대군은 절대로 전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까지 되니, 조보는 그들의 말에 동의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성이 다른 사람이 황제에 오르는 것은 비록 말로는 천명이라 하지만 실제로는 인심이다. 너희들은 각자 사병들을 잘 단속해서 절대로 노략질하지 못하게 하라. 도성의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어야 사방이 안정되고 너희들도 함께 부귀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너희는 내 말을 들어라. 군기를 엄격히 하고, 병사들이 약탈하지 못하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끝이다. 먼저 내 말대로 한다면 나의 형이 새 왕조를 개창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말을 마치자, 모두 나를 믿었고, 나의 이 요구사항에 동의했다. 그래서, 나는 이들 장수들에게 약속했다. 날이 밝으면, 내가 나의 형에게 천자가 되라고 권하겠다고. 그리고 여러 장수들은 나의 이 약속을 들은 후 각자 흩어졌다.


다음 날 날이 밝자, 나는 조보와 함께 나의 형의 군영으로 갔다. 그에게 어제 저녁에 발생항 일을 얘기해주었다. 그런데 내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들 장수들이 몰려 들어왔고, 그들은 용포 하나를 나의 형의 몸에 둘러주었다. 그후에 그에게 삼궤구고의 예를 행하고, 만세를 외쳤다. 나의 형은 이렇게하여 "어쩔 수 없이 몰려서, 억지로 황제에 올랐다"

나중에 나의 형이 황제에 오른 후, 군대를 이끌고 조정으로 돌아간다. 나는 가장 먼저 뛰어나가서, 나의 형의 말을 끌어당기며, 형에게 명령을 내려주기를 간청했다. 경성에 돌아간 후 반드시 살인방화약탈을 하지 못하게 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내가 절대 말을 놓아주지 않겠다고.

나의 말을 듣자, 형은 크게 깨달아서 머리가 맑아진 것같았다. 그는 즉시 부하들에게 <약법삼장>을 내리고, 그제서야 대군은 기율이 엄격하게 개봉성으로 돌아왔고, 칼에 피한 방을 묻히지 않고, 원래대로 놔두면서 왕조교체를 완성한다.

이 일은 바로 내(조광의)가 자주 얘기하는 "고마진간'의 장면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면, 이 전체 과정은 조보가 가장 잘 안다. 못믿겠으면 그에게 물어보라.


이상은 <신록(新錄)>의 자료에서 따온 것이다. 이도(李燾)는 <속자치통감장편>에서 '진교병변'의 전과정을 기록한다.

이제 분명히 안다. 왜 왕우칭(王禹偁)이 최고지도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황주로 좌천되었는지. 멀쩡하게 눈을 뜨고 헛소리를 지껄이기 싫거나, 혹은 양심에 위배되는 일을 하기 싫으면 좌천되는 수밖에 없다!

이 아부는 너무 노골적인가?

노골적이든 아니든간에 조광의가 얼마나 후안무치하든지간에 그는 목적을 달성했다.

"진교병변"이라는 스토리에서, "고마진간"이라는 공덕무량의 대사를 완성한 후, 조광의는 별볼일 없는 주변인에서, 일약 가장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고, 역사에 위대한 이미지로 기록되게 된다.


이외에 더욱 중요한 한 가지는 이 날조, 두찬, 이화접목의 방법을 통하여, 조광의는 자시의 웅재대략, 덕고망중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신하와 백성들에게 얘기할 수 있었다: "내가 '진교병변'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였기 때문에, 그 때부터 태조는 이미 황위를 나에게 넘겨주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바로 이 황위의 합법적인 승계인이다."

이렇게 하여, 조광의의 여러차례에 걸친 암시와 지시하에, 사관들은 양심에 위배되게 과장되게 편찬하게 된다: 하나의 생생한 위대한 조광의가 이렇게 출현하게 된다; '진교병변'에서 웅재대략을 보인 조광의가 이렇게 출현하게 된다; 태조가 막 즉위하자마자 그에게 황위를 넘기고자 했던 조광의가 이렇게 출현하게 된다; 황제에 오르도록 운명이 정해진 조광의가 바로 이렇게 출현하게 된다.


거짓말도 천번을 하면 진짜가 된다. 이에 대하여 송태종은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는 이 황제를 이해해야 한다. 조광의가 역사를 날조한 것은 그가 그냥 배가 부르고 할 일이 없어서 한 것이 아니다. 지고무상의 황제로서 조광의가 빛나는 업적이 없다면 그가 어찌 만민을 통솔하고 자신의 명망을 세울 수 있겠는가.

아쉬운 것은 역사라는 공정한 '재판'에서 조광의는 완전히 실패한다. 그는 그저 자신을 속였을 뿐, 후세인들을 속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진정한 역사는 세상사람을 속이는 거짓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후세에 날조된 역사서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절하며 모시는 사당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천하인의 마음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 증거가 바로 <속자치통감장편>이다.

비록 이 시기의 역사를 쓸 때, 이도는 <신록>의 자료를 채택하여, '고마진간'의 이야기를 완전히 해석하기는 하고 조광의의 위대한 이미지를 만들지만, 그는 이 글을 쓰면서 호의를 품지 않으면서 주석을 남긴다. 그리하여 이 역사에 완전히 새로운 정의를 부여한다.

이 주석의 뜻은 개략 이러하다:

<구록(舊錄)>의 기재에 따르면, 사병들에게 개봉성으로 돌아갔을 때 살인방화약탈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은 송태조 조광윤 자신이 사병들의 행위를 통제한 것이다. 다른 사람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내가 이렇게 쓴 것은 <신록>의 정의에 따른 것이다.

여기에서, 만일 이도가 이를 통하여 천기를 누설했다고 말하더라도, 잘못이 아니다. 


이를 보면, 자신의 신하와 백성도 속이지 못했는데, 조광의가 어떻게 미래를 속이고, 많은 사람들의 입까지 막을 수 있었겠는가.

역사의 수레바퀴가 원나라로 돌아갔을 때 당시의 사학자인 원각은 직접적으로 말한다: "송태조의 실록은 모두 신, 구의 두 가지 버전이 있다. 그중 이 <신록>은 사학자들이 추가한 것이고, 없는 것을 만들어 낸 것이며, 송태종에게 아부하기 위하여 쓴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역사는 아무런 이용가치가 없다."

그러므로, 원각은 <송사>를 편찬할 때, 조광의의 <고마진언>부분을 삭제해 버린다. 그리고 조광의의 위대한 이미지를 원래대로 되돌려 놓는다.

이제 조광의가 심계를 써서 연속 3번이나 수정하고, 자기가 죽을 때까지 보지 못했던 <태조실록>은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는 결과에 이른 것이다.

이는 명나라때의 심학대사 왕양명의 그 말이 맞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나침반을 가지고 있다. 공도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