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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흥5

적인걸(狄仁傑)의 남다른 말년 글: 이숙금(李淑琴) 적인걸(630-700), 당나라때 병주 태원(지금의 산서성 태원시) 사람이고, 자는 회영(懷英)이다. 당고종, 무측천의 두 황제시대를 거치면서 일생동안 관료생활을 하였고, 청렴하며, 사람을 잘 기용하고, 사건을 잘 처리했으며, 간악한 자들을 제거했다. 원래 혼란스러웠던 .. 2015. 2. 10.
무측천이 황제로 가는 길의 가장 위험했던 순간은? 글: 복녕객(福寧客) 무측천은 어려서부터 미인이었다. 부친 무사확은 목재상인으로 반수(反隋)에 공이 있고 정치적업적이 있는 고위관리이다. 그러나 그런 출신이라 하더라도, 무측천이 황실국친의 울타리안으로 끼어들어가서, 황비, 황후가 되고 황제에 오른다는 것은 거의 완성하기 불.. 2015. 2. 10.
내준신(來俊臣): 당나라의 가장 지독한 관리 글: 곽찬금(郭燦金) 내준신은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사양부론(正邪兩賦論)"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홍루몽>>을 보면 조설근은 가우촌의 입을 빌어 이런 말을 한다: "하늘과 땅이 사람을 만들 때, 대인(大仁) 대악(大惡)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큰 차이가 없.. 2008. 9. 22.
무측천 휘하의 4대살수 글: 월초(越楚) 최근에 어느 사람이 쓴 글에서 무측천이 집권하고 이쓴 동안에 양대 "혹리(酷吏)"를 임용하여 이당종실과 공신을 도륙했다고 하였다. 본인은 그들을 "혹리"라고 불러주는 것은 지나치게 미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관료통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저, 무측천이.. 2008. 1. 9.
삭원례(索元禮) : 무측천시대에 페르시아에서 온 고문전문가 글: 허휘(許暉) 삭원례는 무측천시대의 유명한 혹리(酷吏, 가혹한 관리)였다. 고향이나 생년은 미상이며 691년에 사망했다. 성격이 잔인하고 흉포하였으며, 다른 사람을 밀고하는데 재주가 있었다. 그리하여 무측천의 심복이 되었다. 삭원례의 손에 죽은 원혼은 수천명이 넘어 원성이 자자.. 2007. 9.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