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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역사인물-시대별/역사인물 (당)

내준신(來俊臣): 당나라의 가장 지독한 관리

by 중은우시 2008. 9. 22.

글: 곽찬금(郭燦金)

 

내준신은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정사양부론(正邪兩賦論)"을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홍루몽>>을 보면 조설근은 가우촌의 입을 빌어 이런 말을 한다: "하늘과 땅이 사람을 만들 때, 대인(大仁) 대악(大惡)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큰 차이가 없게 만들었다; 만일 대인이 운(運)에 따라 나타난다면, 대악은 겁(劫)에 따라 나타난다, 운이 있으면 세상이 잘 다스려지고, 겁이 있으면 세상이 어지러워진다. 요, 순, 우, 탕, 방, 주, 무, 소, 공, 맹, 동, 한, 주, 정, 주, 장은 모두 운에 따라 나타난 사람이고, 치우, 공공, 걸, 주, 시황, 왕망, 조조, 환온, 안록산, 진회등은 모두 겁에 따라 나타난 사람이다. 대인인 자가 나타나면 천하를 잘 다스리고, 대악인 자가 나타나면 천하를 교란시킨다. 청명하고 맑은 천지의 정기는 어진 자가 가진 성격이요; 잔인하고 괴벽한 천지의 사기는 악한 자가 가진 성격이다" 이러한 이론이 바로 유명한 "정사양부론(정과 사의 두가지 천부를 타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이다.

 

문헌에 자세기 기재되어 있지는 않으므로, 가우촌이 언급한 여러 '대악'들이 어떻게 '천하의 사기'를 띄고 태어났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다만, 내준신이 어떻게 사기를 띄고 태어났는지는 역사서에 이상하게도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내준신의 원래 성은 내(來)가 아니라 채(蔡)이다. 다만, 그에게는 도박을 좋아하는 부친이 있어, 사정이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런 변화가 그에게 준 가장 큰 영향은 바로 그가 내씨집안의 후손으로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얘기하자면, 옹주 만년향에는 좋은 친구 둘이 있었다. 한 명은 성이 내씨로 내조(來操)이고, 다른 한명은 성이 채씨로 채본(蔡本)이다. 둘은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았고, 도박을 좋아했으며, 하지 않는 일이 없었다. 채본의 처는 용모가 괜찮은 편이었는데, 내조는 몰래 그녀를 유혹했고, 여러번 오가면서 내조는 채본의 처와 관계를 맺게 되었다. 애정전선에서 성공한 내조는 도박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얼마만에 그는 채본의 돈을 수십만 따게 된다. 채본에게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었다. 결국 할 수 없이 자기의 처를 내조에게 담보로 보내어 채무를 깐다. 내조는 채본의 처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된지 이미 오래되었다. 채본이 자기의 처를 담보물로 내놓겠다고 하자 이는 불감청고소원인 일이었다.

 

이렇게 하여, 채본의 처는 내조의 처가 된다. 이뿐아니라, 채본의 처는 담보로 그에게 넘어올 때 이미 임신을 하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의 임신에 대한 지식은 그다지 풍부하지 못하였고, 채본의 처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도대체 누구의 아이인지를 누구도 결정하지 못했다. 다만, 어쨌든 이 아이는 '겁(劫)을 타고 태어난 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모친의 음탕함을 이어받았을 뿐아니라, 내조와 채본의 욕심과 교활함을 이어받았다. 이렇게 특이한 태교환경하에서 이 아이의 미래는 '남다른 것'으로 운명지어졌다.

 

이 아이가 바로 내준신이다.

 

그러나, 천부가 비범한 내준신이 이름을 드러내는 것은 아주 우연한 일때문이었다.

 

일찌기, 내준신은 한량으로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도강간으로 감옥에 갇히게 된다. 아마도 관대한 처분을 받기 위하여인지, 아니면 천성이 그러해서인지, 범죄인 내준신이 감옥에서 열중한 일은 바로 '밀고'하는 일이었다. 어떤 때는 그저 바람을 잡고 그림자를 쫓는 것과 같은 내용이었고, 어떤 때는 아예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를 꾸며내기도 하였다. 내준신은 그럴듯하고 생생하게 감옥관리인에게 모모가 어떤 중대한 범죄를 숨기고 있다는 내용을 말하곤 하였다. 그가 고발한 일들은 모두 아무런 근거가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옥리가 조사를 해보아도 아무런 수확을 거둘 수 없었다. 다만, 그는 그래도 계속 '밀고'를 해댔다. 계속 밀고를 하니 결국 관리의 화를 돋구었다. 자사인 왕속(王續)은 그에게 장 100대의 처벌을 내렸다. 내준신은 그 후에 한동안 조용히 지낸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준신을 때렸던 왕속이 어떤 일로 조정에 주살당한다. 내준신은 이것을 통하여 희망의 빛을 보았다. 왕속이 조정에서 주살되었는데, 이는 왕속이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보았다. 왕속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논리적으로 추단해보면, 그에게 얻어맞은 사람은 원래 그다지 나쁜 사람이 아니어야 했다. 내준신은 머리를 굴렸고, 기회를 잡았다. 계속하여 밀고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그가 고발한 것은 지위가 훨씬 높은 사람이었다. 직접적으로 왕속에게 중대한 범죄행위가 있다고 고발한 것이다. 여기에 이화접목식으로 밀고서에 자신이 왕속을 고발했기 때문에 오히려 얻어맞은 적이 있다는 영광된 내력까지도 기재했다.

 

무측천이 이 밀고서를 보고는 아주 기뻐했다고 한다. 바로 내준신을 직접 만나보기로 한다. 순식간에 내준신의 몸값은 수백배 뛰었다. 무측천은 그가 충성스럽다고 보고, 시어사에 조산대부의 직을 내린다.

 

하룻밤에 권력을 손에 잡았고,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게 되었다. 내준신은 이름없는 강도강간범에서 무측천이 중시하는 동량의 신하가 되어 버렸다. 내준신은 무측천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짧은 기간내에 1천여집안이 내준신에 의하여 가산을 몰수당한다. 사건을 심리하는데, 그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범죄자의 가족 친척을 모두 연루시켜 처벌하였다. 왕왕 아무 것도 아닌 자잘한 사건으로 수천명이 주살되기도 하였다. 조정의 문무대신은 아침저녁으로 불안에 떨었다.

 

백색공포가 대지를 뒤덮었다. 마침내 혹리 내준신이 등장한 것이다.

 

사업의 필요에 따라, 내준신은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아주 창조적으로 일을 했다. 그가 발명한 형구(刑具)는 모두 그 시대에 도달할 수 있었던 최고수준의 것이었다. 예를 들면, 그는 "돌지후(突地吼)"라는 형구를 발명했다. 이 돌지후에 올라가서 묶이게 되면 계속하여 돌아간다. 그리하여 형을 받는 사람은 위로 토하고 아래로 싼다. 이어 사지의 마비가 온다. 죄를 인정하지 않으면 계속 돌려버리는 것이다. 형을 받는 사람이 기절할 때까지. 그래도 이 '돌지후'는 아주 부드러운 편이었다. "철권롱두(鐵圈籠頭")"는 이렇게 인자하지 않았다. 이름 그대로, 철권롱두는 굵은 철사로 만든 권(圈)이었다. 이 형구의 독특한 점이라면, 매번 범인을 심문할 때, 철권을 범인의 머리에 씌운다. 만일 범인이 자기의 범죄를 술술 인정하면 그만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준신은 바로 수하에게 철권 안에 나무쐐기를 추가하도록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때문에 머리에서 뇌수가 흘러 죽었다. 내준신의 형구는 이처럼 독특하고 기발했다.

 

내준신은 심리전에 능했다. 범인을 심문하기 전에, 그의 습관적인 동작은 모든 형구를 끄집어내어, 먼저 죄수에게 한번 구경시켜주는 것이었다. 대다수의 범죄인들은 형구를 보면 바로 혼비백산하여, 혹형을 피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내준신의 뜻대로 진술하고 말게 된다고 한다.

 

내준신의 창도하에 그의 수하들은 형구에 대한 연구개발에 열을 올렸다. 발명능력이 없는 보통 옥졸은 누가 더 죄수에게 악독한지, 누가 먼저 자백을 얻어내는지를 다투었다. 그중 아주 뛰어난 자는 왕왕 내준신으로부터 후한 상을 받았다. 조정도 이를 극력 제창했다. 그리하여, 왕홍의(王弘義)는 여경문(麗景門)을 농담으로 "예경문(例竟門)"이라고 불렀다. 예경문의 "예"는 '관례'를 의미하고, '경'은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관례에 따라 곧 끝난다는 의미이다. '예경문'이라는 세 글자가 합쳐지면 그 뜻은 바로 이 문을 들어서게 되면 관례에 따라 자기의 생명은 끝났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배경하에서, 조정의 관리들은 스스로의 몸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밤에 신발을 벗으면서, 다음날 다시 신을 수 있을지를 아무도 장담하지 못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정에 나가는 때에는 더욱 근심이 많았다. 언제 어느 곳을 지나가다 붙잡힐지, 언제 어느때 온 집안이 멸문의 화를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조회에 참석하기 전에, 관리들은 가족들과 헤어지면서, '다시 만난다고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대장군 장건훈, 범운선 등은 모두 내준신에게 조사받은 바 있다. 낙양의 관청에서, 장건문등은 고통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국가에 공이 있음을 늘어놓았다. 내준신은 바로 위사에게 명령하여 칼을 내리쳐 죽여버렸다. 범운선은 심문을 받으면서 자기가 일생동안 조정에 대하여 세운 공적을 내세웠다. 그리고 사법이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내준신은 바로 그의 혀를 잘라버리도록 명령했다.

 

이같은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동시에 내준신은 호색가였다. 만일 어떤 여자가 마음에 들면, 그는 업무의 편의를 이용하여, 먼저 마음에 든 여인의 남편을 감옥에 가둔다. 그리고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이다. 내준신의 정실부인도 이렇게 얻은 여인이었다.

 

내준신은 "혹리"를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한 사람이다. 그는 다른 사랑메게 측은지심을 느끼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친한 전우라고 하더라도.

 

한번은 무측천이 밀고를 받았는데, 내용은 주흥(周興)이 다른 사람과 연락하여 모반을 꾀한다는 것이었다. 무측천은 아주 화를 냈고, 내준신에게 이 사건을 엄히 조사하라고 시킨다. 주흥은 내준신이 아끼는 혹리였다. 마음과 손속이 모두 악독했고, 아주 교활했다. 내준신은 알고 있었다. 밀고서 한장만으로 주흥을 제압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그러나 그렇다고 주흥을 놓아줄 수는 없었다. 이는 황상이 친히 그에게 처리하라고 시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눈썹을 찌푸리고 있던 그에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내준신은 집안에 술자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해삼이니 전복이니 아주 풍성하게 차린다. 그는 주흥을 자기 집으로 초청해서, 두사람은 권커니 잔커니 하면서 술에 취한다. 술이 석잔 배에 들어간 후에, 내준신은 눈썹을 찌푸리고 이렇게 말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기술적인 문제에 부닥쳤따. 그래서 동생을 불렀으니 도와 달라. 뭐냐햐면 내가 금방 사건을 하나 맡았는데, 황상이 친히 지시한 것이다. 나보가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고 하는데, 이 자가 인정을 하지 않는다. 너라면 이런 상황을 만나면 어떤 묘책이 있겠는가?" 이처럼 상사가 자기에게 도와달라고 하자, 주흥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득의만면하여 말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술을 한잔 들이키고는 별 것이 아니란 듯이 말하였다: "큰 항아리 하나를 찾아서, 걸어놓고 숯불을 피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 항아리는 용광로처럼 됩니다. 이때 범인을 항아리 안으로 들어가게 하면, 범인이 뭐로 만들어졌든 고분고분하게 모든 죄행을 인정할 것입니다" 내준신은 그 말을 듣고는 뛰어난 의견이라고 칭찬했다. 바로 사람을 시켜 큰 항아리 하나를 가져오게 한 다음에 주흥이 말한대로 하였다. 사방에서 숯불을 피웠다. 그리고는 주흥에게 말하였다: "궁안에 어떤 사람이 네가 모반을 꾀한다고 밀고했다. 황상이 나에게 엄히 조사하라고 시켰다. 미안하다. 네가 항아리 안으로 들어가야 겠다" 이 말을 듣고는 주흥은 바로 놀라서 멍청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시키는대로 자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것이 바로 유명한 "청군입옹(請君入瓮)"의 이야기이다.

 

내준신은 사업상의 대성공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론적인 탐색과 창조를 시작했다. 그의 이론성과는 나중에 <<나직경(羅織經)>>이라는 책으로 모아졌다. 이는 전문적으로 죄명을 엮고, 두뇌싸움을 하는 것에 대한 책이다. 용어는 간결하고 매 주제마다 1권씩으로 되어 있다. 전체 서적의 글자수는 많지 않으며, 십여권으로 되어 있다. 매 1권에 1가지 이슈를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치적권(治敵卷)", "문죄권(問罪卷)"등이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이래 첫번째로 억울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경전이고, 혹리정치에서 처음으로 혹리에 의하여 쓰여진 적나라한 범죄고백이다. 전설에 따르면 적인걸이 <<나직경>>을 보고는, 온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식은 땀을 흘렸다고 한다. 여황제인 무측천은 <<나직경>>을 보고는 이렇게 한탄했다고 한다: "이 점도의 심기라면 짐의 잘못이라고만도 할 수 없겠구나"

 

"과만권(瓜蔓卷)"에서는 내준신이 자신의 경험을 종합했다. "사건은 크지 않으면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없다. 사안이 여러 사람에 미치지 않으면, 공로가 드러나지 않는다. 윗사람은 이렇게 해야 안심하는 것이고, 아랫사람을 총애하게 된다. 그러므로 이렇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사고방식하에 내준신은 무측천의 뜻을 짐작하여, 일단 자그마한 흔적이라도 나타나면, "무뢰한 수백명을 모아서, 그 사건을 고발하게 하고, 죄명을 엮어서 온 동네에 일을 벌인다" 어떤 때는 내준신이 누군가를 엮어야 겠다고 생각되면, 갖은 방법을 다해서 무측천으로 하여금 자기가 엮고자하는 자에게 주의를 두게 한다. 일반적인 방법은, 내준신이 수하를 시켜 밀고서를 제출하게 하여 무측천의 관심을 끈다. 무측천이 밀고서를 받은 후에 대부분 내준신을 보내어 처리하게 하므로, 내준신은 상대방을 불러서 고문으로 죄를 인정하게 하는 것이다.

 

천천히, 조야는 이미 내준신에 의하여 깨끗이 정리되었다. 아무도 감히 내준신 및 그의 일당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이때의 내준신은 일인지하, 만인지상이었다.

 

사람은 쉽게 자아가 팽창한다. 내준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준신은 다른 사람을 처단하는데 너무 맛을 들엿따.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찾기가 힘들었다. 왜냐하면 손볼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손봐버렸기 때문이다. 내준신은 새로운 사냥감을 찾아나선다. 그는 눈을 무씨의 여러 왕(王) 및 평소에 자기를 멸시하던 태평공주등에게로 옮겨갔다. 이들에게 죄명을 엮어서 감옥에 가두고자 한 것이다.

 

모든 사람이 내준신을 두려워했지만, 무씨의 여러 옹과 태평공주등은 근본적으로 내준신을 사람취급하지 안았다. 다만, 무측천의 보호가 있으므로, 내준신을 쫓아내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이때, 위수충(衛遂忠)이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위수충은 내준신의 친한 친구였다. 하루는 위수충이 술을 좀 많이 마셨다. 흐리멍텅한 가운데 내준신의 문을 두드렸다. 당시 내준신은 처와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문지기는 위수충이 취한 것을 보고는 그를 그냥 돌려보내려고, 내준신이 집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위수충은 술에 취해 있어도 귀는 밝았다. 집안에서 내준신이 얘기하는 소리가 들였던 것이다. 그래서 문지기가 자기를 속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는 억지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술김에 내준신을 한바탕 욕해준다.

 

술이 깬 후에, 위수충은 생각하면 할수록 겁이 났다. 그는 내준신의 사람됨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준신은 절대 이 일을 그냥 넘기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하여, 그는 무씨 여러 왕에게 의탁하기로 한다. 그리하여 그는 먼저 공격한다. 무측천과 여러 무씨 왕들에게 내준신의 음모를 고발한다.

 

무씨 여러 왕과 태평공주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들이 연합하고, 기회를 잡았다. 그리하여 내준신은 시장에서 참형에 처해진다. 장안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내준신을 미워했으므로, 그가 죽임을 당했다는 말을 듣자 모두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는 분이 풀리지 않아서, 그의 살을 잘라냈다. 순식간에 내준신의 시신은 흔적도 없어지게 된다.

 

나중에 무측천은 내준신의 죄행을 인정하고, 내준신의 가족을 제거하여 백성들의 원한을 풀어준다. 냉혹의 끝을 보여준 내준신은 이렇게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