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黃巢)는 왜 실패했는가?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안사의 난(安史之亂)이후 당의종(唐懿宗)은 황음사치(荒淫奢侈)하고, 지취금미(紙醉金迷)하며, 환관이 권력을 농단하고 ,번진이 지방에 할거했으며, 탐관오리가 횡행하여 각지에서는 반란이 여기저기서 일어났고, 결국 대규모의 황소의 난(黃巢起義)이 일어난다. 황소는 875년에 거사하여, 884년 죽을 때까지 전후로 10년간 활약했다. 이 십년간은 881년 황소가 장안에서 황제를 칭한 시점을 기준으로 나눌 수 있다. 앞의 6년간은 황소의 반란군이 기본적으로 파죽지세로 연전연승을 거두었지만, 뒤의 4년간은 황소의 반란군이 병패여산도(兵敗如山倒), 즉 산사태가 난 것처럼 무너져서, 궤불성군(潰不成軍), 궤멸하여 제대로 싸울 수 있는 군대가 아니었다. 와 의 기록을 보면, 황소는 교..
2023. 3. 16.
주온(朱溫)은 왜 황소(黃巢)를 배신했을까?
글: 흑미애여행(黑米愛旅行) 당나라말기, 황제는 혼용무능했고, 통치계급은 썩어있었다. 게다가 천재지변이 속속 일어났다. 이 모든 것은 사회의 붕괴를 가져오고, 백성들은 유리걸식하게 된다. 그리하여, 여러 차례의 대규모 농민반란이 일어났고,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황소의 난”이다. 875년, 염상(鹽商)가정에서 태어난 황소는 당시 사회에 극도의 불만을 품고, 농민반란군의 우두머리인 왕선지(王仙芝)에 호응하여 조주(曹州) 원구(怨句, 지금의 산동성 하택 서남)에서 거병한다. 3년후, 왕선지는 관군의 포위공격과정에서 전사하고, 황소는 무리의 추대를 받아 “황왕(黃王)”에 오르고, “충천대장군(沖天大將軍)”이라 칭한다. 880년, 황소는 반란군을 이끌고 당나라의 수도 장안을 점령한다. 그리고 대명궁(大明宮) ..
2022. 6. 2.
후당(後唐) 실패의 교훈: "방향이 노력보다 중요하다"
글: 엽서도(獵書徒) 당왕조가 멸망한 이후, 제국판도내의 수십개 할거세력중 어느 하나도 다시 한번 전국을 통일할 실력이 없었다. 그래서 한동안 서로간의 전쟁을 벌인 후, 상대적으로 우세한 지위를 지닌 할거정권이 속속 자신의 소조정(小朝廷)을 세운다. 그중 중원지구에 도읍을 정한 5개의 정권이 있다. 바로 후량(後梁), 후당(後唐), 후진(後晋), 후한(後漢), 후주(後周). 우리는 이들 5개 정권을 통칭하여 오대(五代)라 부른다. 그리고 중원외에 존재했던 할거정권은 전촉(前蜀), 후촉(後蜀), 남오(南吳), 남당(南唐), 오월(吳越), 민(閩), 초(楚), 남한(南漢), 남평(南平, 荊南), 북한(北漢)은 통칭하여 십국(十國)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후세의 사학자들은 이 분열시기에 대하여 '오대십국"이라고..
2020. 7.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