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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진21

중국역사상의 태상황(太上皇) (3) 글: 장명양(張明揚) 당나라때 태상황으로서는 되돌아보기도 싫은 '완전은퇴'시대를 겪은 후, 태상황들의 운명은 송나라때부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나게 된다. 송, 명, 청 3왕조에 걸쳐 모두 6명의 태상황이 배출돈다. 당나라때 유행한 '핍궁(逼宮)'과 비교하면, 이들 태상황들은 자원하여 태상황으로 물러난 경우가 많았으며, 현무문사변이나 마외지변같은 궁중투쟁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나라가 망하게 된 송휘종(宋徽宗)과 정신이상이 온 송광종(宋光宗)을 제외하면, 이 시기의 태상황들의 은퇴생활은 아주 여유있었다. 황제의 눈치를 보지 않았을 뿐아니라, 연금생활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권력도 대부분 황제보다 컸다. 정치생활에서 왕왕 전형적인 "퇴이불휴(退而不休)"였다. 명영종(明英宗) 주기진(朱祁鎭)의 태상황생활은 그다.. 2023. 5. 1.
명나라시기 오이라트(瓦剌)는 언제 멸망하였는가? 글: 역사백가회(歷史百家匯) 토목보의 변(土木堡之變)은 오이라트(瓦剌)의 '가장 휘황했던 시기'이다. 그들은 가볍게 명영종(明英宗) 주기진(朱祁鎭)을 포로로 잡았을 뿐아니라, 명나라의 병방요지까지 맹렬하게 진격해 들어갔었다. 만일 우겸(于謙)이 없었더라면 명나라는 그때 멸망했을 것이다. 다만 오이라트의 운은 좋지 못했다. 명나라에 패배하면서 크게 타격을 입었을 뿐아니라, 내부에서 모순이 폭발하여, 스스로 무너진다. 이는 괴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이라트의 역사는 당나라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민족은 아주 사납다. 하루종일 주변부락과 당나라의 변경을 돌아다녔다. 당나라는 그들의 항복을 받아내려 했으나, 오이라트는 죽어도 투항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당나라는 할 수 없이 그들과 싸워야 했고, 백여년.. 2021. 5. 1.
"선덕실솔관(宣德蟋蟀罐)" 소실의 수수께끼 글: 홍우(洪宇) 중국역사상 귀뚜라미를 기르고(養蟋蟀), 귀뚜라미싸움을 시키는 것(鬪蟋蟀)과 같은 취미는 풍아(風雅)한 사람들이 반드시 배워야 하는 오락종류였다. 당나라 천보(天寶)연간 귀꾸라미는 관상물로서 금사롱(金絲籠)에 넣어서 베개 옆에 두었다. 그리고는 귀뚜라미의 완전(.. 2019. 10. 30.
명나라의 최고군사지휘관은? 글: 오수(吳垂) 주원장이 명나라를 건립한 후, 군대관리에 대하여 고심을 하게 된다. 명나라는 무력으로 천하를 평정했고, 당연히 무장들의 공로가 가장 컸다. 그리하여 무장들이 발호하는 상황이 나타난다. 그리고 소수인들을 제외하고 대두분의 무장들은 스스로를 절제할 줄 몰랐다. 가.. 2019. 9. 5.
명선종의 황후 호선상(胡善祥)은 단지 아들이 없어서 폐위되었을까? 글: 사우춘(史遇春) 명선종(明宣宗) 주첨기(朱瞻基, 1398-1435), 명나라 제5대황제, 명인종(明仁宗)의 장남. 어렸을 때, 조부 주체(朱棣, 명성조)와 부친 주고치(朱高熾, 명인종)의 사랑과 인정을 바았다. 명성조 영락9년(1411), 14살때, 조부에 의해 황태손(皇太孫)으로 세워진다. 여러번 주체를 .. 2019. 1. 18.
호황후(胡皇后): 명나라때 유일하게 폐위된 황후 글: 소몽(蕭夢) 총애를 받지 못한 여인은 사는게 힘들다고 얘기한다. 후궁의 여인들은 총애를 받지 못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힘들게 사는 것보다 더욱 무서운 것도 있다. 폐위되는 것이다. 명선종(明宣宗) 주첨기(朱瞻基)가 즉위한 후, 황후는 조부인 영락제 주체가 골라준 황태손비(.. 2019. 1.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