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고40

진왕(秦王) 자영(子嬰) 신분의 수수께끼 글: 호연문사(浩然文史) 진시황이 창립한 진황조는 겨우 14년간 존속했다. 그러나 중국의 기나긴 역사에 무수한 짙은 흔적을 남겼다. 그러나 진황조는 지금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 많은 일들이 모호하다. 예를 들어 진왕 자영은 진황조의 마지막 황제(정확히 말하면 진왕)이지만, 역사상 그에 관한 기록은 아주 희소하다. 너무나 희소하여 그의 신세내력마저 불분명하다. 우리는 자주 그를 호해(胡亥)의 아들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오늘날에도 전문가들조차 그의 신세내력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 1. 자영(子嬰): 불행한 군주 자영은 위난의 시기에 진왕에 올랐다. 그러나 왕위에 겨우 40여일간 있다가 피살당한다. 진시황이 죽은 후, 조고는 이사를 끌어들여 조서를 위조한 후 공자 부.. 2022. 4. 11.
조고(趙高)는 어떻게 진시황의 명장, 명신들을 누르고 조정을 장악했을까? 글: 양천년래영웅사(兩千年來英雄史) 진나라말기 풍운이 일어나는 반진(反秦)전쟁때, 장한(章邯)이 전장에서 연이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지휘능력이 뛰어나고 진군의 전투력이 뛰어난 외에 또 하나 이사(李斯)를 우두머리로 하는 진나라의 국가조직이 배후에서 지지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한은 외부에서, 이사는 내부에서 제국의 대들보역할을 했다. 그러나 누구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이사, 장한이 사방에서 위기를 극복하며, 국면을 되돌리려 애를 쓰는 가운데, 악독한 화살이 그들의 등 뒤로 날아오고 있었다. 이 화살은 바로 조고이다. 조고는 원한과 변태의 심리로 진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생각을 잊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 진나라의 기둥은 장한과 이사가 지탱하고 있다. 단시간내에 무너지기 어려운.. 2022. 3. 28.
자영(子嬰): 조고를 가볍게 제압하고, 항우에게 목숨을 잃다 글: 청림지청(靑林知靑) 진나라는 진이세(秦二世)로 멸망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진삼세(秦三世)를 언급하기도 한다. 진삼세라고 불리는 사람은 바로 자영이다. 그러나 그는 조고를 죽이고 항우에게 죽임을 당한 일 이외에 다른 것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를 진삼세로 언급하는 사람이 적은 이유는 그가 즉위하기 전에 이미 진(秦)이 스스로의 지위를 낮추어 황제의 칭호를 취소하고, 진왕(秦王)으로 자칭하였으며, 통일전의 각 제후국과 같은 지위로 돌아갔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각국으로부터의 적대감을 약화시키고, 당시 제후들이 참여한 의군의 공격을 중단시키고 스스로를 보호하고자 했다. 그래서, 황위를 가지고 따진다면 진나라는 확실히 진이세로 끝난 것이다. 진한교체기 혹은 초한전쟁의 전날, 이 자영은 실제 아주.. 2021. 1. 25.
진(秦)왕조의 마지막 왕 자영(子嬰)은 누구의 아들일까? 글: 일합쾌락인생(壹哈快樂人生) 천고일제 진시황은 중국역사상 최초로 통일왕조를 이룬 제왕이다. 그러나 역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알고 있다시피, 진왕조는 3세만에 망한다. 기원전207년 유방의 대군이 함양성 아래로 쳐들어왔을 때, 진삼세(秦三世) 자영은 성 밖으로 나와서, 역.. 2019. 6. 26.
조고(趙高)는 내시였을까? 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조고는 모두 알고 있다시피 중국역사상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왕진(王振), 유근(劉瑾), 위충현(魏忠賢)등 권력을 쥐었던 내시(權閹)의 조사야(祖師爺)로 여겨진다. 조고는 환관(宦官)으로 시작하여 진이세의 그에 대한 총애를 바탕.. 2019. 1. 3.
진시황의 사망전에 일어난 3대괴사(怪事)는 천의(天意)인가, 인위(人爲)인가? 글: 송초(松樵) 진시황은 39살때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성했다. 분서갱유를 통하여 진시황은 사상문화상 전제집권통치에 불리한 요소를 제거하고, 고도로 권력이 집중된 대진제국의 구조를 만든다. 일생동안 권력집중을 추구했던 진시황은 마침내 더 이상 걱정거리가 없게 된 것이다. 이.. 2018. 11. 19.
진시황사후 호해(胡亥), 조고(趙高), 자영(子婴)간의 권력투쟁 글: 븍진사해(北辰四海) 진이세 호해는 거대한 역사의 쟁의중에 황위를 승계한다. 그리고 잔혹한 궁중투쟁을 겪고, 다시 격렬한 정치변혁이 일어난다. 또한 각지에서 일어난 반란군을 시급히 대처해야 했다. 그래도 비교적 순조로웠다. 문관관료집단의 영수인 이사(李斯), 풍거질(馮去疾).. 2018. 8. 4.
공자 부소(扶蘇)는 왜 거짓조서를 받고 자살했을까? 글: 자요(子繇) 기원전210년, 진시황은 순유 도중에 급사한다. 사건은 너무나 돌연하게 일어났고, 나쁜 마음을 품고 있던 조고(趙高)에게는 다시 없을 기회를 가져다 준다. 조고는 먼저 이사(李斯)와 함께 진시황이 붕어했다는 소식을 감춘다. 이어서 진시황이 부소에게 보내는 조서를 위조.. 2018. 6. 26.
진시황릉의 허실(10): 여산북록에는 진시황이 묻혀 있지 않다. 글: 진경원(陳景元) 숙후가 사망하고, 유명한 조무령왕이 즉위한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상산에 자신의 능묘를 '예수'하기 시작한다. <사기.조세가>의 기록에 따르면, 조무령왕은 "3년(기원전323년)부터 능묘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기.집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능묘의 위치.. 2018. 2. 7.
진시황릉의 허실(9): 진시황은 현지에 매장하는 것이 현명한 조치이다. 글: 진경원(陳景元) 진시황이 만일 함양에서 죽었다면, 역대제왕이 경성에서 죽은 것과 마찬가지로, 조정에서 항상 마련해둔 냉장된 보관장소가 있고, 궁내에는 장례활동을 치르는데 필요한 각종 도구가 충분히 준비되어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비불발상'을 할 때, 궁문을 걸어잠그고, .. 2018. 2.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