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청풍명월소요객(淸風明月逍遙客)
조고는 모두 알고 있다시피 중국역사상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 중 하나이다. 그는 왕진(王振), 유근(劉瑾), 위충현(魏忠賢)등 권력을 쥐었던 내시(權閹)의 조사야(祖師爺)로 여겨진다. 조고는 환관(宦官)으로 시작하여 진이세의 그에 대한 총애를 바탕으로 진나라의 포악한 정치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인물로, 진나라의 멸망을 가속화시켰다. 조고의 신세내력에 대하여 정사에는 기록이 드물지만, 명확하게 언제 태감이 되었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조고는 태감(내시)일까 아닐까?
조고의 출생년도에 대하여, 사서에 명확한 기록은 없다. 사마천도 조고를 위하여 단독의 전을 만들어주지 않았다. 조고의 사적은 주로 <사기.진시황본기>, <사기.이사열전>과 <사기.몽염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조고는 원래 진나라 종실(宗室)의 먼 친척(遠親)이다. 그의 모친은 법을 어겨 형벌을 받은 후 몸이 불구가 된다. 그리하여 진나라관청에 형기를 만료하고 석방된 자들을 전문적으로 수용하는 은궁(隱宮)에 들어간다. 조고 형제는 이곳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진시황에게 발탁되어 중용된다.
<사기.이사열전>에는 조고를 "환인(宦人)"이고 "환적(宦籍)"이 있다고 했다. 이는 후세에 조고가 환관(내시)이라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러나, <장가산한묘죽간(張家山漢墓竹簡)>의 해석에 따르면, "환(宦)"은 궁중의 내정(內庭)에서 임직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환인'은 바로 궁안에 재직하고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는 제왕의 시위에 상당한다. '환적'이라 함은 궁문을 출입하는 사람을 등록한 책자이다.
진나라때, 그리고 이어진 한나라때, 환인, 환적은 특별하게 태감(내시)를 지칭하는 뜻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궁형을 당한 사람을 "엄인(奄人, 閹人)"이라고 불렀고, 궁안에 임직하고 있는 엄인은 "환엄(宦奄, 宦閹)"이라고 불렀다. 두 가지 칭호는 명확히 구분되었다.
<사기.몽염열전>에는 모두 "조고 형제는 모두 은궁(隱宮)에서 태어났다" '은궁'이라 함은 <장가산한묘죽간>이 출토된 후에 '형기가 만료된 인원들이 일하는 장소'라는 것이 확인된다. 동한 혹은 그 이후에 <사기>에 주해를 단 유선생은 글자를 보고 상상력을 발휘하여, '은궁'의 '궁(宮)'자가 궁형(宮刑)의 '궁'자로 해석해서, 조고의 부친이 궁형을 받았다고 해석하고, 그의 모친이 다른 사람과 야합하여 조고 형제를 낳았다고 썼다. 조고 형제는 조씨 성을 사칭한 것으로 역시 궁형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만들어 낸다.
이 이야기는 널리 전해지면서, 심지어 전파과정에 살이 덧붙여 진다. 당나라에 이르러, 조고일가는 '환엄'이라는 유언비어가 점점 확정되기 시작한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고힐강(顧頡剛)은 아주 유명한 논단을 내놓았는데, 바로 "층층이 누적되어 형성된 고대사"라는 것이다. 그는 현재 보는 고대사는 역대에 계속 고치고 새로 쓰여진 것이고, 원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역대에 각각 좋아하는 기호에 따라 첨가된 것이라는 것이다.
고힐강 선생의 견해에 따르면, 동한은 엄당의 화로 망국에 이르렀다. 유씨의 곡해는 바로 당시 사람들이 관엄(내시)를 미워하는 심정과 부합되었다. 그래서 모두 망국의 화근은 모두 관엄(내시)라는 말을 믿은 것이다. 당나라도 환관의 권력농단으로 정치가 혼란스러웠던 시대이다. 조고는 내시라는 유언비어는 더욱 무성하게 퍼진다. 명나라도 환관의 농단이 점점 더 심해졌다. 명나라말기의 위충현과 청나라말기의 이연영까지 환관이라면 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렇게 층층이 누적되다보니, 곡해된 역사는 정사로 형성되었다.
진시황의 사후, 조고는 사구정변을 일으켜, 스스로 낭중령이 된다. 그리고 재임기간동안 권력을 독점하고, 당파를 만들며, 요역과 세금을 더욱 무겁게 한다. 행정은 더욱 가혹해졌다. 그는 말그대로 반파(反派)의 이미지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조고를 칭송했고, 그 중 대부분은 조나라가 진나라에 멸망했는데, 조고는 혼자의 힘으로, 진나라왕실을 무너뜨려 복수에 성공했다고 보는 것이다.
가련백만사진고(可憐百萬死秦孤), 지유조고능설치(只有趙高能雪恥)
유후추철형경비(留侯椎鐵荊卿匕), 불급진궁일조고(不及秦宮一趙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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