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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난지역12

정난지역(靖難之役)후 주체(朱棣)는 왜 5번이나 몽골정벌에 직접 나섰을까?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정난지역이후, 주체는 성공적으로 조카인 건문제(建文帝) 주윤문(朱允炆)으로부터 황제위를 빼앗는다. 그러나 후세인들은 그가 '황위를 찬탈'한 일에 대하여는 그다지 개의치 않고, 오히려 그를 '영락대제(永樂大帝)'로 칭송한다. 주체의 주요 공적을 나열해 보자면, 북경천도, 영락대전편수, 정화하서양, 안남수복, 오정막북(五征漠北)이 있다. 특히 5차례에 걸쳐 막북을 친정(親征)한 것은, 후세의 찬양을 받는다. 자고이래 제왕이 직접 정벌에 나서는 일도 많지 않지만, 주체는 역사상 최초로 직접 장성이북을 친정한 황제이기 때문에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게 된 것이다. 주원장이 원왕조를 쫓아낸 후, 몽골통치자의 잔여세력은 완전시 소멸되지 않고, 새외(塞外)로 도망쳐 '북원(北元)'을 건립한다.. 2020. 10. 31.
대명개국공신 상우춘(常遇春) 세 아들의 수수께끼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상우춘은 자가 백인(伯仁)이고, 호는 연형(燕衡)이다. 남직예(南直隸) 봉양부(鳳陽府) 회원현(懷遠縣)(지금의 안휘 방부 회원현) 사람이다. 명나라의 개국장군이며, 원 지정15년(1355년)에 주원장에 귀부(歸附)하여 스스로 나서서 선봉장이 되어, 적을 물리친다. 그는 .. 2019. 12. 27.
쇠솥: 명나라와 몽골이 100년전쟁을 벌인 원인 글: 장뢰(張雷) 명나라가 건립된 후, 원나라는 쫓겨나서 몽골초원으로 돌아가서, 새롭게 소와 말을 기르며, 물과 풀을 찾아다니는 유목생활을 시작한다. 단일한 유목제 경제모델은 몽골인들로 하여금 소, 양, 말을 생산하는 외에 다른 기술은 뛰어나지 못했다. 특히 가정에 필수적인 물품.. 2018. 11. 28.
영락제(永樂帝)에 배향(配享)된 네 명의 공신 글: 역사상적나점사아(歷史上的那點事兒) 명나라 영락22년(1424) 명성조 주체는 북정에서 회군하는 도중에 유목천(楡木川, 지금의 내몽고 우주무친)에서 사망하고, 장릉(長陵)에 묻히며 묘호를 태종(太宗)이라 한다. 영락제 주체가 22년간 재위하는 동안, 명왕조는 경제가 번성했고, 국력이 .. 2018. 10. 16.
제2차 "정난지역(靖難之役)"은 어떻게 실패하였는가? 글: 두문자(杜文子) 주체(朱棣)의 정난지역이 성공하여 영락제에 오르자, 그의 차남 주고후(朱高煦)는 계속하여 야심을 가지고 형인 주고치(朱高熾)와 태자 자리를 다투었다. 그러다가 주체에 의하여 산동 낙안(樂安)의 번왕으로 쫓겨난다. 그래도 그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황.. 2018. 7. 19.
정난지역(靖難之役)의 승리는 주체(朱棣)의 두 아들 공로가 아주 컸다. 글: 두문자(杜文子) 정난지역에서 승리하는데에는 주체의 두 아들이 큰 공헌을 했다. 주체가 "정난지역"을 일으켜 건문제에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이미 사십여세의 나이였다. 이 나이라면 강산을 지키거나 시찰하는 것은 몰라도, 대명제국의 최고권력을 차지하려면 무수한 전투를 치르면.. 2018. 7. 7.
건문제와 주체의 마지막 결전 글: 두문자(杜文子) "정난지역(靖難之役)"의 4년째, 주체의 연군(燕軍)은 건문제의 조정군과 계속 싸우면서 이미 장강을 넘었고, 나날이 남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이렇게 되자 건문제는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건문제는 누구에게 의지하여야 한단 말인가? 당연히 그 스.. 2018. 6. 27.
서안(西安)은 왜 수도의 지위를 잃었는가? 글: 기점문사(起點文史) 중국에는 오대고도(서안, 낙양, 개봉, 남경, 북경), 육대고도(서안, 낙양, 개방, 남경, 항주, 북경), 칠대고도(안양, 서안, 낙양, 개봉, 항주, 남경, 북경)이라는 말이 있다. 오대고도이건, 육대고도이건, 칠대고도이건, 모두 서안이 들어간다. 왜 서안은 도성의 지위를 .. 2018. 2. 17.
[황자쟁위술] 무장탈위술(武裝奪位術) 청군측패(淸君側牌) 정난지역편 명성조 영락제 주체(朱棣)는 연왕(燕王)으로 있다가 황위를 차지한다. 어떻게 보면 서한때 유비(劉濞)의 오초칠국의 난과 상황이 비슷하다. 다른 점이라면 유비는 실패했고, 주체는 성공했다는 것이다. 명태조 주원장이 명황조를 건립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 조카, 손자 합.. 2015. 10. 18.
황위계승전: 주고치(朱高熾) vs. 주고후(朱高煦) 글: 두문자(杜文子) 누가 황위를 계승하느냐는 문제는 영락제 주체(朱棣)에게 처음부터 골치거리였다. 그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하나는 큰아들 주고치이고, 다른 하나는 둘째아들 주고후이다. 이치대로라면 장유유서의 관념이 강했던 고대에 큰아들이 원래 합법적인 법정승계.. 2014. 8.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