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풍18

진벽군(陳璧君): 민국제일미남을 굴복시킨 기여자(奇女子) 글: 녕녕(寧寧) 왕정위(汪精衛)는 혁명지사이고 대재자이다. 국민당 제일미남이다. 일찌기 빛나고 현란하며 무수한 미인들이 그를 따랐다. 그러나, 그와 평생을 함께한 여인은 용모가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수 없는 진벽군이었다. 1891년, 진벽군은 남양 말레이시아의 화교 거부 집안에서 .. 2013. 4. 13.
광서제(光緖帝)의 죽음: 누가 원흉인가? 글: 하약청(何躍靑) 서태후는 영록(榮祿)의 딸 과르자씨(瓜爾佳氏) 유란(幼蘭)을 순친왕(醇親王) 재풍(載灃)과 결혼시키는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순친왕부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다: 하나는 원세개(袁世凱)이고 다른 하나는 영록(榮祿)이다. 왜냐하면 원세개의 뒷배.. 2012. 9. 19.
청나라 황실의 후손들 글: 마용(馬勇) <황실우대조례>에 따르면, 중화민국정권은 대청국이 계속 존재하는 것에 동의했고, 북경의 황궁에 거주하도록 해주었다. 그래서 중화민국시대에 들어선 후 중국에는 이런 풍경이 벌어진다: 민국정치가들은 혹은 의회에서 평화논쟁을 벌이거나, 혹은 전쟁터에서 계속 .. 2012. 7. 12.
1912년 1월 1일: 중화민국을 여는 첫날 글: 왕학빈(王學斌) 1912년 1월 1일, 남경, 총통부, 밤 11시. 하얀 달이 하늘에 떠 있고, 별들은 점점이 보인다. 손중산(孫中山)는 임시대총통 취임선서문을 들고, 광동어로 장엄하게 읽어내려갔다: "만주독재정부를 전복시키고, 중화민국을 공고히 하며, 민생과 행복을 도모하는 것은 국민의 .. 2012. 1. 12.
숙친왕과 왕정위의 대화 왕정위는 젊었을 때, 섭정왕인 재풍을 암살하려다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있었다. 청나라 조정의 숙친왕은 왕정위를 설득하여 청나라정부를 위하여 일하게 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두 사람이 만나서 아래와 같은 유명한 대화를 나눈다. 숙친왕 : 왕선생은 <<민보>>에 글들을 많이 쓰셨다. 나도 .. 2006. 8. 29.
북경의 청나라 왕부(王府)....그 두번째 9. 나왕부(那王府) 나왕부는 보초(寶초)후통내의 국상(國祥)후퉁 갑2호에 소재하고 있다. 몽고 커얼커 사이인노얀부 자사크 화석친왕 나얀투(那彦圖)의 왕부이다. 국상후통 갑1호의 두개의 건물은 원래 왕부에서 중로의 가장 북쪽에 있는 두개의 나란히 있던 건물이다. 집안에는 2개의 태.. 2005. 8.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