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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11

모택동은 왜 하자진(賀子珍)과 복혼하지 않았는가? 작자: 미상 하자진은 모택동과 헤어진 후,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이것은 그녀의 성격때문이다. 아마도 그녀는 연안을 떠난 그날부터 결정된 것인지도 모른다. 1949년 그녀의 여동생 하이(賀怡)가 북경으로 가서 모택동과 복혼하여 부인의 지위를 되찾는 것을 논의한 것에 대하여, 우리는 .. 2013. 10. 10.
보샤트: 장정에 참가한 영국인 선교사 글: 위수춘(魏秀春) 홍군(紅軍)의 기나긴 장정의 길에, 보샤트(勃沙特, Rudolf Alfred Bosshardt Piaget)라는 서양선교사가 따라갔다. 그는 홍군의 종군신부도 아니었지만, 홍군장정의 특수한 참가자였다. 홍군을 떠난 후, 그는 자신이 홍군에서 겪었던 일을 다큐멘터리로 엮은 책 <<신령의 손(T.. 2010. 1. 29.
"장정(長征)"중의 혼인과 연애 글: 진명원(陳明遠) 행군하며 전투하는 군인의 혼인을 따로 "군혼(軍婚)"이라고 부른다. 지난 세기 대혁명기간동안 "혁명은 연애보다 우선한다"는 구호가 유행하였다. 그러나, 공자가 말한대로 "식색성야(食色性也, 먹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사람들이 모두 가정을 가지고 있는데, 어.. 2008. 3. 10.
장정(長征)중의 사도적수(四渡赤水) 작자: 삼지야(三支野) 전사쌍각주천하(戰士雙脚走天下) 전사의 두 다리는 천하를 다니고 사도적수출기병(四渡赤水出奇兵) 네번 적수하를 넘으면서 기이한 병법을 썼으니 모주석용병진여신(毛主席用兵眞如神) 모주석의 용병술은 정말 신과 같구나 1960년대 대강남북에 울려퍼진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2007. 1. 9.
"장정(長征)"이라는 용어는 누가 처음 사용했는가? 작자: 고칙서(顧則徐) 2006년 10월 19일 작 ==================== 장정 70주년을 맞이하여 미디어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장정"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이 모택동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 오류이다. 예를 들어, 2006년 10월 18일 전제된 "홍군간부의 부패토로, 최초의 장정일기는 공개.. 2006. 1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