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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작림19

"북경(北京)"은 왜 "북평(北平)"으로 불리웠는가? 글: 진신(陳新) 북경은 3천여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古都)이다. 왕조가 교체됨에 따라, 전후로 60여개의 정식명칭과 별칭이 있었다. 세계의 도시역사상 명칭이 가장 많은 곳이라 할 수 있다. 그중 북경과 북평 두 명사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북경은 왜 역사상 북평으로 불리게 된 것일까? 그것은 명나라의 창업자 주원장(朱元璋)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한다. 원나라말기, 몽골통치자에 반항하는 농민반란이 거세게 일어나 전국을 석권한다. 주원장은 농민군의 진우량(陳友諒), 장사성(張士誠)의 세력을 흡수한 후, 강남의 반벽강산을 차지한다. 그리고 원나라 지정27년(1367년) 대장 서달(徐達), 상우춘(常遇春)에게 군사를 주어 북벌에 나선다. 1368년, 주원장은 응천부(應天府, 지금의 남경)을 경사(京師).. 2023. 3. 1.
민국시대의 각지방 군벌(軍閥)은? 글: 대웅역사관(大熊歷史觀) 원세개(袁世凱)가 소참(小站)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킨 후, 그의 손으로 당세 세력이 가장 큰 북양군벌(北洋軍閥)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는 다시 민국의 대총통에 오른다. 원세개는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다. 특별히 당시 각 지역의 장수들이 모두 원세개에게 기.. 2019. 9. 30.
장작림(張作霖)의 여섯 부인 글: 설백포(薛白袍) 장작림은 북인남상(北人南相)으로 그의 일생은 전설적이다. 농촌의 일개 수의사에서, 녹림에 들어가 향마(響馬, 마적)가 되었다가, 나중에 초안(招安)된 후, 한걸음 한걸음 자신의 역량을 키워서, 나중에는 마침내 일방제후의 동북왕(東北王)이 되었다. 그의 신분이 올.. 2019. 1. 5.
후쿠오카(福岡): 중일교류의 살아있는 유적지 글: 우운국(虞雲國) 구정이 지나자마자 일본의 큐슈(九州)로 갔다. 마지막 이틀은 반드시 해야할 업무가 없어서, 대학의 옛친구들과 몇 곳을 방문했다. 후쿠오카는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항구중 하나이고, 중일관계의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 그래서 유적지를 방문하기로 했다. 듣기에 시.. 2018. 11. 21.
소림사 사상 최대의 겁난: 풍옥상부하의 소림방화 글: 황소범(黃小凡) 1928년, 중원지역의 군벌혼전으로 총포가 날로 보급되어갔다. 일부 소림제자들도 군벌이 부대에 참여하여 전공으로 공업을 세우고자 했다. 마지막에는 소림사에 유례없는 겁난을 가져오게 된다. 1500년의 역사에서, 소림사는 많은 겁난을 당한다. 봉건시대에 매 왕조가 .. 2018. 7. 29.
장학량(張學良)의 여섯 자매들.... 글: 추월랑(秋月朗) 장학량에게는 형제자매가 많았다. 비록 부친은 1명이지만, 모친은 여러명이었다. 부친 장작림(張作霖)은 53살까지 살면서 6명의 부인을 두었고, 모두 8남6녀를 낳는다. 여기에서는 그의 여섯 명의 딸에 대하여 쓰리고 한다: 장수방(張首芳), 장회영(張懷英), 장회경(張懷.. 2016. 1.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