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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황후12

당태종의 세 번에 걸친 도화운(桃花運) 글: 정계진(丁啓陣) 당태종이 대신들과 치국의 도리를 논한 책인 <정관정요(貞觀政要)>를 보면, 당태종 이세민에게 닥친 세 번의 도화운을 기록하고 있다. 첫번째 도화운은 정관원년(627)에 발생한다. 유주도독우령군, 여강왕 원(瑗)이 모반으로 주살된 후, 그의 총희(寵姬)를 궁.. 2012. 1. 17.
당태종은 왜 위징의 묘비를 부수었다가 다시 세웠는가? 글: 유병광(劉秉光) 당태종(唐太宗)과 위징(魏徵)은 지금까지 현군직신(賢君直臣, 현명한 군주와 직언하는 신하)의 모범으로 얘기되었다. 위징이 살아있을 때에는 당태종이 그를 '거울'로 생각했고,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돈관계를 맺었다. 위징이 죽었을 때, 당태종은 5일간이나 조회를 열지 않고, 친필.. 2008. 12. 6.
당태종 이세민은 왜 무측천을 좋아하지 않았는가? 글: 몽만(蒙曼) 무측천은 아주 뛰어난 여영웅이었음에도, 어찌 당태종의 궁중에서의 12년간 전혀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쓸쓸하게 시간을 보냈을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무측천이 왜 당태종의 마음을 얻지 못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본다. 먼저 당태종이 어떤 여인을 좋아하였는지를 분석해 보자.. 2008. 2. 3.
장손황후: 당태종이 가장 신뢰한 정치고문 글: 맹헌실(孟憲實) 장손황후가 자기가 관리하는 일만 잘 처리했더라면, 그녀의 지위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가 오늘날 그녀를 평가하는 것처럼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든 당태종의 인식이든. 장손황후는 절대 단순히 우수한 후궁관리인이 아니었다. 실제로 장손황후는 이.. 2007. 11. 7.
장손황후(長孫皇后)의 불행한 유년시절 글: 맹헌실(孟憲實) 장손황후(600-636). 아명은 관음비(觀音婢). 개황20년(600년)에 태어나, 정관10년(636년)에 사망했으니, 향년 36세이다. 13살때 이세민에게 시집갔으니, 대업9년(613년)이다. 당시 이세민은 16세였다. 일생동안 당태종 이세민과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으니, 장남 이승건(李承乾), 차남 이태(.. 2007. 10. 31.
당태종 이세민과 후궁들 장손황후(長孫皇后)는 어릴 때 이름이 관음비(觀音婢)이고, 당태종 이세민의 정실 황후이다. 이세민과 장손황후의 애정문제에 대하여는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가지고 있다. 이유는 아무렇게나 만든 텔레비전 연속극들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를 논하자면, 몇몇 사람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을 수 없.. 2007. 3.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