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장손무기18

위징: 6번이나 주군을 바꾼 특이한 충신인생 글: 소가노대(蕭家老大) 위징을 얘기하면 일반사람들은 모두 당태종 이세민의 수하로 감히 범안직간(犯顔直諫)한 충신미여, 당태종의 거울이라고 알고 있다. 일반인이 그를 알고 있는 것은 그가 진실을 감히 얘기한 이야기가 민간에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잘 알.. 2013. 11. 25.
당태종의 14명의 아들 글: 일득재주(一得齋主) 당태종 이세민은 중국역사상 일대명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을 얘기하자면, 그들은 대부분 싹수가 없었다. 결말도 아주 비참했다. 그중 3명은 피살당하고, 3명은 자살했으며, 3명은 요절했고, 1명은 유폐되었다. 2명은 서인으로 폐해진 후 다시 유배.. 2012. 8. 15.
이각(李恪): 당태종이 가장 사랑한 아들 글: 장걸(張杰) 두 왕조의 혈맥이 그에게 가져다준 것은 영예가 아니라, 재난이었다. 만일, 운명을 바꿀 용기가 없다면, 그저 운명의 수레바퀴에 깔릴 뿐이다. 그는 명문출신으로, 대당(大唐)의 황자(皇子)이면서, 전조인 대수(大隋)의 황손(皇孫)이기도 하다. 그는 두 왕조의 황족혈.. 2012. 2. 6.
당태종(唐太宗)은 어떻게 죽었는가? 글: 양국선(楊國選) 당태종은 중국역사상 나라를 잘 다스렸던 몇 안되는 군주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그는 한창 나이에 사망을 해서, 우리에게 궁금증을 남겼다. 무덕9년(626년) 육월 사일 '현무문사건'이 벌어진다. 태자 이건성과 제왕 이원길이 피살되고, 이세민이 태자가 된다. 두 달후, 이세민이 등극.. 2010. 3. 25.
장손황후: 당태종이 가장 신뢰한 정치고문 글: 맹헌실(孟憲實) 장손황후가 자기가 관리하는 일만 잘 처리했더라면, 그녀의 지위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최소한 우리가 오늘날 그녀를 평가하는 것처럼 높지는 않았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이든 당태종의 인식이든. 장손황후는 절대 단순히 우수한 후궁관리인이 아니었다. 실제로 장손황후는 이.. 2007. 11. 7.
장손황후(長孫皇后)의 불행한 유년시절 글: 맹헌실(孟憲實) 장손황후(600-636). 아명은 관음비(觀音婢). 개황20년(600년)에 태어나, 정관10년(636년)에 사망했으니, 향년 36세이다. 13살때 이세민에게 시집갔으니, 대업9년(613년)이다. 당시 이세민은 16세였다. 일생동안 당태종 이세민과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으니, 장남 이승건(李承乾), 차남 이태(.. 2007. 10. 31.
당태종의 후계자 선정 배경 만년의 당태종에게 가장 골치아픈 문제는 태자문제였다. 정관17년 4월, 이승건(李承乾)이 태자위에서 폐위되었다. 이후 태자가 될 자격을 지닌 사람은 장손황후의 또 다른 두 아들이었다. 바로 위왕(魏王) 이태(李泰)와 진왕(晋王) 이치(李治)였다. 두 사람을 비교하자면, 이태의 조건이 훨씬 뛰어났다. .. 2007. 5. 23.
당태종 이세민의 공신들... 능연각(凌烟閣)은 원래 당나라 황궁내의 삼청전의 옆에 있는 조그만 각루였다. 정관17년2월 당태종 이세민은 그와 함께 천하를 얻는데 공을 세웠던 공신(몇명은 이미 죽었고, 남은 사람들도 대부분은 나이가 들었다)을 그리는 의미에서, 사람들에게 명하여 능연각내에 24명의 공신의 화상을 그리도록 .. 2006. 3.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