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계흥(劉繼興)
삼국위진남북조수당시기에 문벌세족이 정치무대에서 활약한다. 문벌세족은 동한 중엽에 이미 관료의 길을 독점한다. 조위시기에 만든 구품중정제는 문벌세족의 정치특권을 보장했고, 문벌세족의 형성을 도왔다. 동진왕조시기에 문벌세족과 그 통치는 전성기에 도달한다. 남북조시기에 이르러, 일찌기 잘나가던 동진의 문벌세족들은 동진의 멸망 유송의 흥기와 더불어 점차 쇠퇴한다. 왕사유환(王謝庾桓)같이 대명이 자자한 귀족성은 이미 옛날같이 않게 된다. 중국귀족의 황금시대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이 때, 하나이 신흥 귀족집단이 돌연 나타나서, 일비충천(一飛沖天)하여, 중국귀족시대의 수명을 연장시킨다. 그리고 사상유례없는 위대한 시대를 개창한다. 이것이 바로 중국을 근 200년간 종횡한 관농군사귀족집단이다. 그것은 대북(代北) 무천(武川)에서 시작한다. 처음에 관중에 건립되어, 공전절후로 4개왕조를 개창한다. 각각 서위(西魏), 북주(北周), 수(隋), 당(唐)이 그것이다. 그리고 중국을 새로운 역사의 전성기로 밀고 간다. 그 발단은 일시를 풍미한 서위의 팔대주국(八大柱國)이었다.
팔주국은 각각: 우문태(宇文泰, 이세민의 외증조부), 원흔(元欣, 서위왕실 여러 왕의 우두머리. 십이대장군중 원씨가 3명이 있다: 광평왕 원찬, 회안왕 원육, 제왕 원곽), 이호(李虎, 이연의 조부), 이필(李弼, 이밀의 증조부), 조귀(趙貴, 덕과 지혜로 공명을 얻음), 우근(于謹, 북조삼로의 한 명, 우근은 팔주국중 모략이 가장 뛰어났고, 여러 아들은 주,수때 모두 고위직에 앉는다. 우익이 가장 유명하다), 독고신(獨孤信, 양견의 장인, 이연의 외조부), 후막진숭(侯莫陳崇, 세 아들은 모두 후주의 맹장이다. 그의 형인 후막진순은 십이대장군중 한 명이다). 그들은 서위, 북주, 수, 당 4개왕조의 휘황한 역사를 창조한다. 대당의 사서에는 이렇게 적었다: "지금 문벌이라 칭하는 자는 모두 팔주국가를 얘기한다. 당시의 번성함은 비교할 것이 없다."
주국(柱國)의 원래 의미는 북위(北魏)의 주국대장군(柱國大將軍)이라는 칭호에서 나왔고, 이주영(爾朱榮)에게서 시작한다. 이주영이 패망한 후에는 폐지된다. 우문태가 다시 동위를 흥성하게 만들 때 다시 설립한다. 서위 대통16년이전에 주국대장군이라는 칭호는 모두 8명에게 주어졌다. 각각: 우문태, 원흔, 이호, 이필, 우근, 독고신, 조귀, 후막진숭이다. 당시에 '팔주국가'로 불리웠다. 팔주국 중에서 조귀는 우문태의 성공을 도운 공로가 있고, 원흔은 우문태를 도와서 황실의 위엄을 세웠고, 이호는 전투로 이름을 날렸고, 이필은 장수로서 전략과 군대를 이끄는 능력이 있었고, 우근은 모략이 뛰어나서 보좌를 잘 했으며, 후막진숭은 용맹으로 종횡했으며, 독고신은 덕으로 백성을 다독였다. 그중 우문태는 여러 군대를 총지휘하였고, 원흔은 서위의 황족이어서 병권에 제약이 있었다. 나머지 6명은 각각 2명의 대장군을 거느렸다. 즉 부병(府兵)중의 '십이대장군'이다. 이 팔주국 십이대장군중에서서위에서 북주 다시 수, 당초기에 이르는 문벌귀족이 나온다. 이 몇 시대의 황실 황후족은 대부분 이들 가족에서 나온다...우문태의 자손은 북주의 황족이고, 이호의 자손은 당나라의 황족이다. 대장군 양충의 자손은 수나라의 황족이며, 북주의 역대황후는 이들 가족에서 탄생한다. 수문제의 황후와 당고조 이연의 모친은 모두 팔주국중 독고신에게서 나온다.
역사학자 진인각 선생의 말에 따르면, 이 관농군사귀족집단은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호한(胡漢)민족을 무력과 재지를 합친 자"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 집단의 사람은 '조정에 들어가면 재상을 바깥으로 나오면 장수를 하여 문무의 구분이 없었다.'
그외에 부병의 십이대장군은 구체적으로 원육(元育), 원찬(元贊), 원곽(元廓), 우문도(宇文導, 우문태의 조카), 우문귀(宇文貴), 이원(李遠), 달해무(達奚武), 후막진순(侯莫陳順), 양충(楊忠, 수문제 양견의 아버지), 두노녕(豆盧寧), 하란상(賀蘭祥, 우문태의 외조카), 왕웅(王雄)으로 모두 세상의 명장이었다. 그외에 왕사정(王思政), 왕비(王羆), 채우(蔡佑), 경호(耿豪)등의 명장이 있다. 관농집단중, 나머지후기지수들 예를 들어 우문헌(宇文憲, 우문태의 다섯째 아들), 위지형(尉遲逈, 우문태의 외조카), 위효간(韋孝寬), 장손성(長孫晟, 장손황후의 부친), 하약필(賀若弼), 한금호(韓擒虎), 이세민(李世民, 우문태의 증외손), 이정(李靖, 한금호의 외조카), 후군집(侯君集)등 모두 얻기 힘든 명장이었다. 이렇게 많은 문도무략을 지닌 경천위지의 인재들이 북주의 북방통일 및 수당의 전국통일에 견실한 인재기초를 닦는다.
위명이 혁혁하고 세력이 극히 강대한 관농군사귀족집단은 서위, 북주, 수, 당초에 전성기를 누린다. 황실과 장수 및 재상은 거의 전부 이 집단에서 나왔다. 당태종에 이르러, 관농군사집단의 세력은 점차 쇠퇴한다. 신흥의 산동호걸과 투쟁을 벌이게 된다. 장손무기는 고명대신을 맡아서, 관농집단의 마지막 풍광을 보인다. 무후는 당황실의 세력을 소멸시키고자 하여, 관농귀족집단을 와해시키는 일련의 수단을 시행한다. 예를 들어, 진사문사과를 숭상하여 파격적으로 기용한다든지 부병제를 점차 없앤다든지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당성세'라고 불리는 당현종 시기에 이르러 관농군사집단의 세력은 이미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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