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임칙서13

워싱턴기념탑의 중국비석 출처: <안과유성(雁過有聲): 중미인문교류의 기억> 미국인이 광주(廣州)에 오고나서 십년간, 청나라관리들은 여전히 미국인과 영국인을 구분하지 못했다. 청나라정부는 "외국의 상황에 대하여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알려 하지 않은 상황이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아편전쟁이 발발한.. 2014. 4. 29.
중국근대사상의 번역문제 글: 풍학영(馮學營) 초기 중국의 외국과의 교류를 보면 번역인재가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 중국과 러시아의 <네르친스크조약>은 3개의 언어본으로 체결되었다: 만주어, 러시아어, 그리고 라틴어. 그리고 "라틴어가 우선한다." 대청국과 제정러시아가 조약을 체결하면서 모두 제3국언.. 2013. 4. 13.
황당무계한 태평천국 글: 원등비(袁騰飛) 태평천국은 정말 중국근대사상 한편의 코미디극이라 할 만하다. 무슨 종교이든 사랑을 주장하고 살생을 금지한다. 그러나, 홍수전은 달랐다. 그가 창립한 종교는 배상제교(拜上帝敎)라고 하는데, 목적은 반정부이다. 중국민족혁명의 거대한 흐름은 약 200년간 기복이 .. 2012. 3. 2.
임칙서(林則徐)는 역사의 공신인가, 죄인인가? 글: 마가중국(馬可中國) 청나라의 중국에 영향력이 있는 역사인물을 고르라면 아마도 금연공신(禁煙功臣) 임칙서 뿐일 것이다. 세계를 놓고 보더라도, 임칙서의 역사적 지위는 흔들릴 수가 없다. 그러나, 만일 문을 닫아걸고 말해보자. 임칙서를 중국인 자신의 역사에서 도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2010. 5. 28.
아편전쟁의 또 다른 발발원인 글: 왕위(王偉) 아편전쟁이 중국에 거대한 재난을 가져왔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는 중국에 있어서 영원히 기억해야할 상처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임칙서(林則徐)가 광주에서 아편금지조치를 지나치게 과격하게 하여, 이 전쟁이 발발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러나, 청나라사람의 기록을 보면, 이번 .. 2009. 10. 30.
역사책에서 볼 수 없는 아편전쟁 이야기 (II) 4. 임칙서와 Elliot 한가지 재미있는 일은 제1차아편전쟁을 지휘했던 영국정부의 전권대표인 Charles Elliot는 본인이 바로 절대적인 아편무역반대자였다는 점이다. 그는 원래 영국령 기아나의 의료선 <<노예수호신>>호의 함장이었다. 전임 영국-중국연락관인 로빈슨도 아편무역의 반대자였다. 그.. 2007. 3.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