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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칙서13

아편전쟁(阿片戰爭)때의 중국인 글: 노패악곤(老牌惡棍) 1840년 7월 5일, 자금성(紫禁城)은 다른 날들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이 날, 상처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도광제(道光帝)는 조제가법(祖制家法)에 따라 기춘원(綺春園)으로 가서 황태후에게 문안을 드렸고, 그후 몇 건의 일상적인 공문을 처리했다. 이 근검절약하기로 유명한 황제는 이때 알지 못하고 있었다. 천리 밖의 절강(浙江) 정해(定海)에서 중국에 “천년동안 없었던 대변국(千年未有之大變局)”의 전쟁이 소리없이 개시되고 있었다는 것을. 이때의 청나라는 역대왕조와 마찬가지로, 그저 “천하”만 알았지, “세계”는 몰랐다. 도광제도 역대제왕들과 마찬가지로 화이(華夷)만 알았지, 중외(中外)는 몰랐던 것이다. 비록 부친과 조부인 가경제(嘉慶帝)와 건륭제(乾隆帝)떄, 전후로 매카트니와 .. 2022. 6. 10.
함풍제의 신체를 망가뜨린 3가지 취미 글: 노하(老何) 애신각라 혁저(奕詝)는 청나라의 9번째 황제로 역사에서는 '함풍제(咸豊帝)'라 칭한다. 1851년, 함풍제가 즉위하니 나이 21살이었다. 그는 11년간 재위했으며, 31살의 나이로 사망한다. 함풍제가 죽은 후, 남겨진 젊은 예허나라씨(서태후)는 나이어린 장남 재순(載淳)을 보좌하.. 2019. 6. 19.
심보정(沈葆楨): 청나라의 남양대신(南洋大臣) 글; 소소우마왕(小小牛魔王) 남양대신, 북양대신은 모두 청나라말기의 중요직위이다. 두 직위는 광서연간에 설립되었고, 외교군정을 장악했다. 일반적인 관리들과 나란히 언급할 수준이 아니다. 북양대신중 명성이 가장 혁혁한 사람은 이홍장(李鴻章)이다. 이홍장은 직예총독으로 북양.. 2019. 5. 31.
중국의 아편(鴉片): 천사에서 악마로 글: 중위민(仲偉民) 1837년, 광주(廣州)와 마카오(澳門)에서 출판하는 중국을 소개하는 잡지에, 한 중국예술가가 삽화를 덧붙인 글을 싣는데, 이 글을 생생하게 아편에 빠진 한 부잣집아들이 건강하고 부유한 생활에서 고통스럽고 빈곤한 처지로 전락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화면은 순.. 2015. 2. 13.
증국번은 왜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글: 문회독서주보 청나라때 정국번은 관료로서의 처신에 정통했을 뿐아니라, 청나라의 군사가, 이학가, 정치가, 서예가, 문학가이다. 나라를 다스리고, 군을 다스리고, 집안을 다스리고, 교육하는 방면에서 모두 큰 업적을 남긴다. 그의 사상과 모략은 사람으로서의 처세의 도리로 후세게.. 2014. 12. 12.
하장령(賀長齡): 좌종당(左宗棠)을 키워준 인물 글: 기련해(紀連海) 중국역사상 소인물들이 대인물의 배후에서 밀어주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양발(梁發)과 임칙서, 홍수전의 관계가 그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대인물이 또 다른 대인물의 배후에서 밀어준 경우도 있다.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얘기할 내용이다: 좌종당은 누가 키워.. 2014. 9. 8.
워싱턴기념탑의 중국비석 출처: <안과유성(雁過有聲): 중미인문교류의 기억> 미국인이 광주(廣州)에 오고나서 십년간, 청나라관리들은 여전히 미국인과 영국인을 구분하지 못했다. 청나라정부는 "외국의 상황에 대하여는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알려 하지 않은 상황이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아편전쟁이 발발한.. 2014. 4. 29.
중국근대사상의 번역문제 글: 풍학영(馮學營) 초기 중국의 외국과의 교류를 보면 번역인재가 큰 문제였다. 예를 들어, 중국과 러시아의 <네르친스크조약>은 3개의 언어본으로 체결되었다: 만주어, 러시아어, 그리고 라틴어. 그리고 "라틴어가 우선한다." 대청국과 제정러시아가 조약을 체결하면서 모두 제3국언.. 2013. 4. 13.
황당무계한 태평천국 글: 원등비(袁騰飛) 태평천국은 정말 중국근대사상 한편의 코미디극이라 할 만하다. 무슨 종교이든 사랑을 주장하고 살생을 금지한다. 그러나, 홍수전은 달랐다. 그가 창립한 종교는 배상제교(拜上帝敎)라고 하는데, 목적은 반정부이다. 중국민족혁명의 거대한 흐름은 약 200년간 기복이 .. 2012. 3. 2.
임칙서(林則徐)는 역사의 공신인가, 죄인인가? 글: 마가중국(馬可中國) 청나라의 중국에 영향력이 있는 역사인물을 고르라면 아마도 금연공신(禁煙功臣) 임칙서 뿐일 것이다. 세계를 놓고 보더라도, 임칙서의 역사적 지위는 흔들릴 수가 없다. 그러나, 만일 문을 닫아걸고 말해보자. 임칙서를 중국인 자신의 역사에서 도대체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2010. 5.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