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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정치/대륙과 대만

"대만독립(臺灣獨立)"과 "유구독립(琉球獨立)"의 차이

by 중은우시 2023. 5. 19.

글: 오계눌(吳啓訥)

 

"유구독립"사조와 "대만독립"운동은 외견상으로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양자가 발생한 지점이 가깝다. 마찬가지로 동지나해에 있고, 서로 이웃하고 있다. 문화와 역사도 아주 비슷하며, 오랫동안 상호밀접하게 교류해온 도서이다. 양자는 도쿄와 베이징과의 관계에서 모두 변방지역에 위치하고 있다. 둘째, 양자가 발생한 시기가 비슷하다. 모두 2차대전이후, 냉전과 포스트냉전의 국제정치분위기하에서이다.

 

그러나, "유구독립"사조와 "대만독립"운동 사이에는 4가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첫째, 일본식민지가 되기 전에, 유구는 고왕국(古王國)이었다. 대만은 그러나 정치사이래 중국왕조의 직할지였다.

 

둘째, "유구독립"사조는 유구의 원주민중의 지식인들에게서 나왔다; "대만독립"운동은 중국대륙 복건성남부, 광동성동부의 한족이민의 후손들중의 일부 엘리트들이 주도하고 있다.

 

유고에 있어서, 일본은 식민모국이고, 일본인은 식민자이다; 대만에 있어서, 중국은 원래 모국이고, 대만원주민을 제외하고 대만인구의 주체를 구성하는 것은 중국대륙 복건성남부, 광동성동부의 한인이민후예들이다. 그들과 1945년이후 대만으로 건너온 대륙의 다른 성출신의 이민, 해남도이민도 원래 같은 한족동포들이다. 다만 복건성남부에서 이민온 한인후예들중 일부 사람들은 이 지역출신집단이 대만인구에서 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을 이용하여 스스로 "정항(正港, 正宗)"의 대만인이라고 자처하고, 대만원주민을 포함한 다른 지역에서 온 한족이민들의 '대만인'자격을 폄하하거나 배제한다. 

 

셋째, "유구독립"사조는 정치적으로 외래의 일본통치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구한다. 문화적으로 탈식민화를 추구한다; "대만독립"운동은 그러나 정치적으로 모국을 벗어나, 문화상으로 "재식민화"를 추구한다. "유구독립"사조와 "대만독립"운동은 중국과 일본에 대한 감정이 정반대이다. 

 

"유구독립"사조의 역사기원은 19세기후반 일본합병위협에 대하여, 유구인들은 중국왕조가 주도하는 동아시아국제질서를 그리워했다. 그것이 유구지식인들에게 미국, 일본의 정치, 문화와 경제식민에 대한 반성과 반감을 가져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만독립"운동의 기원은 일본패전후, 원래 식민통치하에서 특권과 '근대화'를 누리던 일부 대만인중의 '황민(皇民)'들이 '낙후'(그리고 당시 대만사회의 빈부구조를 변경시키고자 하는)된 모국에 대한 반감이다. 그것이 대만 지식인들의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이 협력하는 당대세계정치, 문화와 경지식민체계에 편입되고자 하는 것으로 바뀐다. 특히 서방지식체계에 귀화하는 것이다.

 

넷째, "유구독립"사조를 포함하여, 일본과 세계각국의 정치, 사회운동 특히 학생운동은 많은 경우 좌파민주주의색채를 띄고,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를 추구하며, 제3세계의 가치에 공감한다; 대만의 정치, 사회운동, 특히 학생운동은 기본적으로 우파 내지 극우파가 주도한다. 비록 이런 류의 극우파들은 자주 가짜좌파로 가장하지만, 그들의 자본주의, 미일제국주의에 대한 선망을 감추지는 못한다. 더더욱 중국을 대표로 하는 제3세계에 대한 멸시와 배척의 태도를 드러낸다.

 

"유구독립"사조와 "대만독립"운동은 겉으로 보기에 모두 '독립'을 추구하는 것같지만,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