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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조15

천고제일기시(千古第一奇詩): <양상사(兩相思)> 글: 고운기담(古韵琦談) 고안망요산격수(枯眼望遙山隔水) 왕래증견기심지(往來曾見幾心知) 호공파작일배주(壺空怕酌一杯酒) 필하난성화운시(筆下難成和韵詩) 도로조인이별구(途路阻人離別久) 신음무안기회지(訊音無雁寄回遲) 고등야수장요적(孤燈夜守長寥寂) 부억처혜부억아(夫憶妻兮父憶兒) 안녕하세요. 오늘은 여러분들과 시를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감상할 시는 회문시(回文詩)이며, 송나라때 이옹(李禺)의 입니다. 중국문학사상 위대한 시인과 유명한 시편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모든 시인들이 찬란하게 빛나고 이름을 떨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시인들은 아는 사람이 없이 역사에 의해 잊혀집니다. 예를 들면, 오늘 얘기하는 이옹과 같은 경우입니다. 같은 발음의 이름으로 여러분들이 아는 사람은 아마도 두 사람이 있을 것입니.. 2023. 3. 28.
중국의 비극, 항우의 실패를 비웃으면서 시작되었다. 글: 주건군(朱建軍) 생당작인걸(生當作人傑)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지금사항우(至今思項羽)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항우와 유방의 군사대결은 항우의 패배로 끝이 난다. 표면적으로 보면, 누가 최고통치자가 되느냐는 백성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 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만일 항우가 서초패왕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더라면, 중국의 미래는 아마도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항우는 복고(復古)를 더욱 원했다. 그래서 분봉제도(分封制度)를 채택한다; 유방은 비록 일부 자제들에게 분봉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진시황의 제도를 채택한다. 이것은 이번 글의 주제가 아니다. 내가 더욱 말하고 싶은 것은 항우의 실패라는 이 사건이 중국인의 심리에 미친 영향이다. 이 영향은 중국인에게 “성왕패구(成王敗寇, .. 2022. 6. 3.
천고재녀 이청조(李淸照)의 집안내력은 글: 촉산필협(蜀山筆俠) <지부지부(知否知否), 응시녹비홍수(應是綠肥紅瘦)>라는 드라마가 인기리에 방영된 후 많은 사람들은 이 사(詞)의 작자인 이청조에 대하여 깊이 파고들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녀의 사를 파고 들었다. 이청조의 사는 뭐라고 더 할 말이 없다. 그것은 천고에 이.. 2019. 2. 7.
호칭으로 본 중국남편의 추락사 글: 인본논어(人本論語) 중국에서는 수천년동안 부부간의 호칭이 적지 않게 변화해왔다. 그중 변화가 가장 많고, 가장 비극적인 것은 남편의 호칭이다. 호칭의 변화는 하나의 무정한 사실을 증명한다. 중국남자들의 역사적 지위는 계속하여 추락하였다. 1. 양인(良人) 가장 먼저 처가 남편.. 2018. 8. 6.
강골인물 부찰(傅察): 채경의 사위도 거절하고, 여진태자에게 무릎꿇기고 거절하다. 글: 효풍모우(曉風暮雨) 금나라이 침략을 막는 전쟁과정에서 무수한 송나라의 관리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면 그 중에서 최초로 순국한 송나라관리가 누구인줄 아는가? 그는 일찌기 과감하게 권신 채경의 사위되기를 거절한 바 있고, 여진이라는 강적 앞에서 머리가 잘릴 지언정 무릎은.. 2018. 6. 22.
사상잠화(四相簪花): 신기한 송나라때 이야기 글: 노채(老蔡) 명나라 구영(仇英)의 <사상잠화도> 송나라때는 기이한 이야기들이 많다. 문인과 사대부들은 그런 이야기를 모아서 기록으로 남기길 좋아했다. <몽계필담보록권삼> <후산담총> <청파잡지>에는 모두 같은 이야기 하나를 적고 있다. 즉, "사상잠화"이야기이다.. 2017. 12. 10.
주(周)나라이전에는 여성만이 성권력(姓權力)을 가졌다. 글: 정정(丁丁) 성명(姓名)을 얘기하자면 현재의 사람들은 이미 부친의 성을 따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남녀평등이 점차 강조되면서 현재는 일부 자녀들이 모친의 성을 따르기도 한다. 다만, 아마 여러분은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성권력은 인류모계사회와 부계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특.. 2017. 6. 22.
스타벅스와 비슷한 송나라때의 찻집 글: 오구(吳鉤) 오늘날 쁘띠부르조아들은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행하는 생활습관으로 되었다. 마치 스타벅스에 가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현대도시생활의 풍취를 모르게 되는 것처럼. 천년전의 송나라사람들도 현대인들이 커피를 즐겨마시는 것처럼 차를 즐겨마셨다. 개략 송나라때부.. 2014. 1. 15.
항우는 왜 죽음을 선택하고 강동으로 건너가지 않았는가? 글: 강사황(姜四晃) 생당작인걸(生當作人傑) 살아서는 인걸이더니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죽어서도 귀웅이네 지금사황후(至今思項羽) 지금 항우가 강동으로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건너지 않으려 했던 것을 생각하네 이것은 송나라때의 재녀 이청조(李淸照)가 항우를 읊은 오언절구이.. 2013. 1. 1.
무인황제 조광윤은 어떻게 문화왕조를 개창했는가? 글: 정계진(丁啓陣) 당대거인 모택동은 송태조 조광윤에 대하여 ‘초손풍소(稍遜風騷, 문화수준이 약간 떨어진다)’는 조롱섞인 평가를 했다. 그가 당연히 받아야할 평가인 것같다 군사쿠데타로 황제의 자리에 오른 그는 문학사가의 눈에는 띌만한 시사가부를 남기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또 다른 측.. 2011. 5.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