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역사인물-개인별/역사인물 (항우)

중국의 비극, 항우의 실패를 비웃으면서 시작되었다.

중은우시 2022. 6. 3. 22:50

: 주건군(朱建軍)

 

생당작인걸(生當作人傑)

사역위귀웅(死亦爲鬼雄)

지금사항우(至今思項羽)

불긍과강동(不肯過江東)

 

항우와 유방의 군사대결은 항우의 패배로 끝이 난다. 표면적으로 보면, 누가 최고통치자가 되느냐는 백성과 그다지 큰 관계가 없다. 다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만일 항우가 서초패왕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더라면, 중국의 미래는 아마도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 항우는 복고(復古)를 더욱 원했다. 그래서 분봉제도(分封制度)를 채택한다; 유방은 비록 일부 자제들에게 분봉하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진시황의 제도를 채택한다.

 

이것은 이번 글의 주제가 아니다. 내가 더욱 말하고 싶은 것은 항우의 실패라는 이 사건이 중국인의 심리에 미친 영향이다. 이 영향은 중국인에게 성왕패구(成王敗寇, 이기면 왕이 되고, 지면 도적이 된다)”를 기억하게 만들었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배우게 하였으며, 존엄이 없는 생활을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항우의 성격과 심리를 분석해보면, 그는 전형적인 영웅인격이다.

 

영웅은 약간의 공통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도의를 중시하고, 존엄이 있고, 자신이 있고, 강한 힘으로 약한 자를 괴롭히지 않으며, 약한 사람을 보호하고,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항우는 초나라 장수의 후손이다. 그가 대표하는 것은 귀족정신이다. 진정한 귀족정신은 부유함과 지위를 자랑하는데 있지 않다. 자신의 고귀한 인격을 귀하게 여기는데 있다. 귀족정신은 공리적인 생활태도가 아니고, 일종의 고상한 인격에 대한 신앙이다(현재는 고상이라는 말이 돈이 있다는 뜻으로 쓰인다. 고상주택지구등. 이는 위대한 인격을 지닌 주택단지라는 뜻이 아니고, 돈있는 사람의 주택단지라는 뜻이다. 이 글에서의 고상은 원래의 의미를 지닌다). 춘추전국시기는 귀족정신이 아직 남아 있었다. 공자는 군자를 칭송했고, ‘소인을 경멸했다. 그는 군자가 되는 것이 무슨 이익이 되기 때문에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하지 않았다. 만일 공리를 위하여 그렇게 행동한다면 그것은 가짜군자일 뿐이다. 군자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신앙이다. 공자가 말하는 군자는 원래 의미가 귀족이다. 소인의 원래 의미는 하층민중이다. 그래서 군자정신은 실제로 소위 귀족정신이다. 영웅정신은 귀족정신의 일종의 형식이기도 하다.

 

진나라는 정치가 포악했고, 각지의 농민반란군이 거병하여 진나라에 항거한다. 항우는 초군(楚軍)의 대장으로, 초군의 동맹인 조군(趙軍)이 진나라 군대에 포위당했을 때, 초군의 총사령관 송의(宋義)는 조군을 구하러 가지 않기로 결정한다. 조군과 진군이 싸우면 어부지리를 얻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을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낼 때 큰 연회를 열었다. 항우는 분노한다. 지금 백성들은 매우 가난하고, 병사들도 겨우 토란을 먹으며 버티고 있고, 양식이 부족한데, 송의는 연회를 열어서 먹고 마시고 있다고 먼저 비판한 후에, 다시 송의의 전략을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지금 국가안위가 달려 있는데, 송의는 사병은 신경도 쓰지 않고 사리를 도모하고 있으니 사직지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송의를 죽이고 조군을 구하러 떠난다.

 

전략만 보자면 송의의 전략이 괜찮았다. 다만 정신적인 층면을 본다면, 송의의 정신은 귀족정신이 아니다. 항우의 불만은 송의가 사병을 신경쓰지 않으면서 자신의 사리를 취한다는 것에 집중되었다. , 송의는 인애(仁愛)의 마음이 없는 것이다. 전쟁때 인애는 반드시 승리에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없다. 다만 항우는 그것이 없으면 안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은 하나의 원칙이다. 인간적인 문제이다. 인의와 정의를 견지하는 것이 설사 군사전략에서 약간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만일 우리가 마귀에게 승리하기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면, 만일 우리가 최종적으로 마귀에 승리하였지만 스스로가 마귀로 바뀌었다면 그것을 승리라고 할 수 있을까? 진정한 귀족정신 혹은 군자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렇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조군을 지원하는 전쟁에서 다른 동맹군들은 모두 수수방관했다. 동맹군과 진군이 양패구상을 당한 후에 어부지리를 노리고자 했다. 그러나 항우는 초군을 이끌고 용감하게 전투에 가담한다. 일당십으로 진군을 격패시킨다. 군사적으로 이것이 최선의 전략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다만 심리적으로 나는 이런 귀족정신과 용감함은 극히 적극적인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것은 초나라사람들의 성격을 더욱 용감하고, 자신감있고, 정직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심리가 더욱 건강해진 것이다.

 

홍문연에서 항우는 자신의 앞에서 약함을 드러낸 잠재적인 경쟁자를 죽이고 싶지 않아서 유방을 보내준다. 후인들이 보기에 이는 항우의 멍청함이다. 그러나 항우가 보기에, 충분한 도의적인 이유가 없다면, 단지 경쟁자를 제거하기 위해서 유방을 죽이는 일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서방의 법치사회에서 만일 법률적으로 인정되는 증거가 없다면, 마음 속으로 누군가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되더라도 그를 감옥에 넣을 수 없다는 것과 같다. 이는 원칙이다.

 

유방과 천하를 쟁탈할 때, 항우는 백성의 전쟁으로 인한 고난을 불쌍하게 여긴다. 그리하여 천하가 여러 해동안 흉흉한데, 이는 우리 두 사람때문이다. 한왕과 자웅을 결하고자 한다. 더 이상 천하의 백성들이 고통을 겪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유방의 부하까지도 항우는 인애한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실패했을 때, 그는 차라리 자살할 지언정 오강을 건너지는 않았다. 한편으로, 그에게 불굴의 정신이 부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신과 유방의 다툼으로 계속 천하의 백성들이 고통을 겪는 것을 차마 할 수 없어서 그냥 자살을 선택한 것이 아닐까?

 

당연히, 더욱 중요한 원인은 아마도 존엄때문일 것이다. 항우 같은 개세영웅이 유방처럼 낭패한 모습으로 도망치는 것은 항우로서 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항우의 자부심을 해치는 일이다.

 

이후의 중국에서 왕조가 교체되면서, 이런 자부심은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것을 대체한 것은 겸허이다. 그렇다. 강한 자는 쉽게 꺽인다. 자부심을 가진 사람은 위험에 더욱 많이 노출된다. 만일 한 사람이 존엄을 포기하면 더욱 살아남기 쉽다. 그러나 정신적으로 보자면, 존엄을 가지고 죽는 것이 존엄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일일 것이다.

 

나는 이런 말이 생각난다: “가유천관출(家有千棺出), 기가호흥왕(其家好興旺)”(한 집안에서 천명이 죽어나가면 그 집안은 흥성한다). 그 뜻은 하나의 가족의 모든 구성원이 용감하여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면, 그 집안은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 것이지만, 그 집안은 흥성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만일 한 집안의 사람들이 모험을 좋아한다면, 그 집안사람들은 위험에 직면할 가능성이 다른 집안사람들보다 높을 것이다. 다만 그 집안은 더욱 생명력이 있을 것이다. 미국의 케네디가족의 사람들은 모험을 좋아한다. 그리하여 그 집안의 사람들은 자연과 사회의 위험으로 비명에 죽은 사람이 다른 가정보다 많다. 다만 이 가족은 미국에서 가장 흥성한 가족중 하나이다.

 

만일 한 집안의 사람들이 용감하게 싸운다면, 그 집안 사람이 죽을 위험은 더욱 높다. 다만 이 가정은 생명력이 더욱 강할 것이다. 예를 들어, 양가장에 나오는 양씨집안처럼.

 

마찬가지로, 만일 전체 중화민족에 항우 같은 사람이 많았다면, 일본이 침략했을 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총명하게 곡선구국한다고 나서서 매국노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드시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 직선구국에 나섰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로 나갔을 것이다. 태아장혈전에서 사천의 한 사단이 전멸하고, 사단장은 전사한다. ‘총명한 사람이 보기에, 그들은 항우처럼 멍청하다. 왜 다른 부대로 하여금 일본군과 싸우게 만들어 놓고, 자신은 어부지리를 노리지 않았단 말인가. 다만 우리는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중국에 총명한 사람이 더 많아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멍청한 사람이 더 많아지면 어떻게 될 것인가? 확실히 멍청한 사람이 더욱 많았더라면 항일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했을 것이고 중국은 더욱 강대해졌을 것이다. 총명한 사람이 더욱 많았더라면, 중국은 반드시 모래알처럼 흩어져서 망국노가 되었을 것이다.

 

항우의 전쟁방식은 전통적인 비액발뢰(費厄潑賴, 영어 Fairplay의 번역어)”이다. 전통적인 전쟁규칙을 지키는 것이다.(당연히 규칙을 어긴 적도 있다. 예를 들어, 항우도 이미 투항한 병사를 갱살한 바 있다. 이는 불의이다.). 유방은 전쟁에서 모든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전쟁에서, 유방이 승리한 것이다. 이는 서방인들이 아메리카대륙에 처츰 발을 디뎠을 때 인디안들과 벌인 전쟁이 떠오른다. 한번은 전투에서 한 백인병사가 꼼짝하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고 인디안병사가 돌진해 왔다. 그런데 그 인디안은 칼로 백인을 베지 않고 나무몽둥이로 가볍게 백인병사의 머리를 찍고는 말을 몰아 돌아갔다. 원래 인디안의 풍속에서 이렇게 나무몽둥이로 가볍게 두드리는 것은 내가 너를 죽일 수 있지만 죽이지 않겠다는 것이고, 일반적으로 나무몽둥이로 찍힌 사람은 패배를 인정한다. 이는 중국의 무림고수들이 비무때 점도위지(點到爲止)”하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그런데 백인은 그런 전쟁규칙이 없었다. 인디안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백인병사는 총을 집어들고 그의 등에 총을 쏘아 죽여버린다. 항우는 바로 그 인디안과 같은 것이다.

 

비교적 건강한 사회에는 전쟁때 원래 규칙이 있다. 현대 서방인들도 그들의 전쟁규칙이 있다. 규칙은 생물무기,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없고, 민간인은 죽일 수 없고, 전쟁포로는 학대할 수 없다는 등등이다. 이런 규칙은 전쟁이 타락하는 것을 막고, 인간성이 더욱 타락하는 것도 막는다. 한 사회에서 모두 기본적으로 규칙을 지킨다면, 사회는 전체적으로 더욱 좋게 발전할 것이다.

 

이 일을 현대의 상전으로 돌려보자. 우리는 규칙없는 상전의 총체적인 결과를 볼 수 있다. 얼마전에 중국의 상전은 규칙이 없었다. 상인들간에 서로 속였다. 대금은 지급하지 않고 미루고, 신용을 지키지 않았다. 부분적으로 보자면, 이들 상인은 부수적인 이득을 얻은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오래지나니, 이는 중국의 전체적인 비즈니스환경을 더욱 열악하게 만들었다. 현재 많은 상인들은 신용위기로 힘들어한다. 비즈니스세계에서도 게임규칙이 있어야 한다고 호소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발견했기 때문이다. 규칙없는 전쟁이 장기적으로 보면 확실히 해롭다는 것이다.

 

유방,항우의 전쟁에서, 항우는 상대적으로 규칙을 지켰다. 그러나 패배했다. 중국인의 인격발전의 측면에서 보자면, 이건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유방은 사람들이 숭배하는 대상이 되고, 중국인들은 규칙을 지키지 않아야한다고 배웠다. 자신의 도덕적 타락을 용인하고, 자신의 존엄성이 없어도 된다고 받아들였다. 중국인은 존엄을 포기하기 시작한 것이다.

 

성공의 길에서 잠시 존엄을 포기했던 사람은 성공한 후에 다른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그 보상을 얻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실제로 병적인 심리상태의 표현이다. 그들은 존엄을 포기했으므로 자비심리가 있다. 그들은 이런 자비심리를 다른 사람에게 푸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모욕하는 것이다. 모욕당한 사람이 만일 미래의 장기적인 이익을 위하여 잠시 존엄을 포기하는 것을 선택한다면, 이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중의 중국에 항우 같은 사람은 갈수록 적어지고, 모욕당하고 모욕하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져버렸다. 중국역사에서 부하가 상사에게 아부하는 기술은 전세계의 역사상 그 어느 곳도 중국에 비견할 수 없다. 부하의 무치한 정도도 상상을 초월한다. 비록 항우와 비교하면, 유방은 무뢰한이었지만, 현재의 많은 무뢰한들과 비교한다면 유방은 성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항우가 인격에서 유방보다 건강하다면, 왜 그는 패배했을까? 이는 원래 내가 대답하려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약간 의견을 얘기해보기로 한다: 첫째, 우리는 승리, 패배를 가지고 영웅을 논해서는 안된다. 비록 그가 실패했지만, 그는 여전히 영웅이다. 둘째, 항우 자체로 말하자면, 비록 그는 우수한 정신을 지니고 있었지만, 부족한 점도 있었다. 예를 들어 관리경험이 부족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들어주지 않았다. 이런 결점은 그를 실패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그의 인간성의 장점을 가릴 수는 없다. 셋째, 당시에 항우가 대표하는 군자정신은 이미 몰락했다. 염치를 따지지 않는 종횡가가 일찌감치 염치를 따지는 유가를 이겼다. 당연히 유방도 비교적 쉽게 항우를 이길 수 있었다. 우리는 유방이 당시의 중국정신에 더욱 부합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항우가 죽지 한참 전에 심지어 항우가 태어나기도 전에 항우정신은 이미 사망과정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당시의 시대정신이다. 다만 시대정신이라고 하여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더욱 건강하다는 것도 아니다. 내가 보기에, 그런 공리주의적인 시대정신은 사람들의 인간성 백해무익하다.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것은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의 산물이다. 항우가 새로 분봉한 것은 구문화의 회광반조이다. 유방의 승리는 바로 진시황을 대표로 하는 공리정신의 부활이다. 항우가 죽은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항우로 대표되는 정신이 죽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는 중화민족의 강용혈성(剛勇血性)이 상실되는 과정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후의 중국은 한때 강대해진 적도 있었다. 다만 그것은 독재자의 강대함이지, 민족인성의 강대함은 아니었다. 춘추시기, 우리는 곳곳에서 자존과 용감한 ()”를 볼 수 있었다. 강대한 한,당에 이르러 이런 는 우리가 거의 볼 수 없게 된다. 현재 중국인들이 즐겨 이야기하는 진시황, 한무제, 당태종, 송태조의 문치무공은 그저 가련한 제왕에 대한 우상숭배일 뿐이다. 이런 제왕에 대한 우상숭배는 바로 사람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존심과 자부심이 결여된 것에 대한 보상심리의 표현일 뿐이다.

 

항우가 죽고, 항우에 대한 가장 멋진 만가(輓歌)는 여자에 의해 쓰여진다. 남자들이 항우는 정치를 모른다고 비웃을 때, 오히려 한 여자는 항우가 왜 불긍과강동했는지를 알아차렸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유약한 사인 이청조(李淸照)의 가슴 속에는 중국남자들이 가지지 못한 호기가 있었던 것이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정신적으로 오래전에 거세를 당한 중국남성들의 마음 속에는 항우 같은 남아의 호기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여성의 마음 속에는 이런 남아의 호기에 대한 갈망이 끊이지 않고 남아 있었다. 천년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이런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설사 2천년동안 억압되어 있었지만, 항우가 부활할 그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