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종인11

민국사대전신(民國四大戰神) 글: 천지사화(天地史話) 중화민국 40년간 전란이 끊이지 않았고, 4명의 군사기재가 나타났으며, 모두 휘황한 전적을 거두었다. 백숭희(白崇禧) 근대역사상 광서(廣西)는 전투에서 용맹하기로 이름을 떨쳤다. 계계군벌(桂係軍閥, 계는 광서의 약칭)에 적지 않은 우수한 장군들이 배출된다. 백숭희는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다. 1. 1924년 이종인(李宗仁)과 연합군을 성립하여, 겨우 만여명에 불과한 부대를 이끌고 전후로 육영정(陸榮廷), 심홍영(沈鴻英)의 두 군벌을 격패시키고, 이어서 운남(雲南)이 당계요(唐繼堯)도 물리친다. 겨우 1년여의 기간만에 광서를 통일한다. 이때 그의 나이 겨우 31살이었다(1893년생). 2. 1926년, 북벌총사령부 대리참모장을 맡아 작전을 지휘한다. 1927년 8월, 직계군벌.. 2021. 3. 12.
민국시대의 각지방 군벌(軍閥)은? 글: 대웅역사관(大熊歷史觀) 원세개(袁世凱)가 소참(小站)에서 병사들을 훈련시킨 후, 그의 손으로 당세 세력이 가장 큰 북양군벌(北洋軍閥)이 형성된다. 그리고 그는 다시 민국의 대총통에 오른다. 원세개는 확실히 대단한 인물이다. 특별히 당시 각 지역의 장수들이 모두 원세개에게 기.. 2019. 9. 30.
항일전쟁때 장개석은 어떻게 남경을 잃었는가? 글: 천하무신(天下無臣) 1. 지킬 것인가 말 것인가? 1937년 북평(북경) 노구교사변이후, 일본군은 중국을 대거 침략하여, 계속 남하한다. 남경은 당시 중국의 수도로 국민정부는 지킬 것이냐 말것이냐의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이전의 송호회전에서 국민혁명군은 손실이 참혹했.. 2016. 1. 10.
양영태(楊永泰): 장개석의 제일모사 글: 유계흥(劉繼興) 역사상 일종의 지식엘리트들은 "문객(門客)", "군사(軍師)", "막료(幕僚)"등의 신분으로 자신의 '주인', '주공'을 위하여 계책을 내고, 근심거리와 어려움을 해결해주는데, 이들을 "모사(謀士)"라고 불렀다. 고대의 저명한 모사로는 범증, 진평, 곽가, 가후(賈詡)등이 있.. 2015. 2. 20.
장개석의 '학력' 글: 유계흥(劉繼興) 요즘은 가짜가 횡행한다. 학력은 더욱 그러하다. 특히 일부 해외에서의 학력은 정보불균형으로 더더욱 진위를 구분하기 어려워 중국에서 널리 행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클라이든대학"과같이 세상을 속이는 사기꾼이 적지 않다. 외국유학으로 얻은 학력은 근대에 들.. 2015. 1. 14.
황포군관학교의 4개 분교 글: 마려(馬麗) 제1차국공합작이 실현된 후, 국민혁명사업에 충성하기로 뜻을 세운 군사인재를 배양하기 위하여, 1924년 5월, 손중산(孫中山)은 소련과 중국공산당의 건의를 받아들여, 광주 황포에 중국국민당육군군관학교(1926년 3월에 중앙군사정치학교로 개칭함), 간칭 "황포군관학교"를 .. 2013. 11. 24.
당덕강(唐德剛): 삼협사관(三峽史觀) 글: 부국용(傅國湧) 2009년 10월 26일, 일대사학자 당덕강 선생이 갔다. 1920년에 출생한 그는 난세에 태어난 것이다. 역사는 그가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 직업일 뿐아니라, 그의 인생경력과 생명체험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군벌혼전, 국민혁명, 항일전쟁, 국공내전등 일련의 대역사를 친히 .. 2013. 8. 5.
양호성(楊虎城) 일가피살의 내막 출처: 봉황망역사 1949년 8월, 귀양(貴陽) 검령산(黔靈山) 아래의 기린동(麒麟洞)의 한 은밀한 사합원에서 머리카락이 절반은 하얗게 변한 전 국민당서북군장령이자 '서안사변'의 발기인중 한명인 양호성 장군이 허리를 구부리고, 어린 딸을 안고, 노인의 걸음걸이로 집안으로 가서 한켠의 .. 2013. 8. 5.
일본침략군사령관 오카무라 야스지(岡村寧次)는 어떻게 무죄판결을 받았는가? 글: 중외서적 그의 전체 군대생활은 일본의 충국침략사의 축소판이다. 그리고, 그의 동료들이 법률의 엄격한 징벌을 받을 때, 그는 살아서 일본으로 돌아갔다. 1949년 1월 30일 오전 10시, 기적소리와 함께, 미국의 화륜선 빅스호는 상해의 황포강을 떠났다. 여러날의 항해끝에 빅스호는 일.. 2011. 5. 21.
1949년 10월 1일: 모택동과 장개석 글: 촉인삼지안(蜀人三只眼) 1949년 10월 1일 새벽: 북경 하늘이 막 밝아오고 있고, 동방에는 해가 서광을 비추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한 모택동은 느린 걸음으로 사무실을 나섰다. 산보하면서 담배를 피웠다. 겉으로 보기에 그는 약간 피로해 보였다. 신중국의 성립은 이미 카운트다운에 들.. 2009.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