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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영23

명나라는 태감의 정치간여로 망했는가? 글: 홍촉(洪燭) 태감에 대하여 얘기하면 사람들은 위충현(魏忠賢), 이연영(李蓮英)같은 반면인물을 생각할 것이다. 자금성은 그들을 유명하게 만들었고, 지금까지도 악명을 널리 떨치고 있다. 기실 태감 자신도 불행하다. 봉건시대의 희생품이다. 제왕들의 음암(陰暗)한 심리가 태감의 생.. 2013. 11. 10.
이연영(李蓮英)의 죽음은 수수께끼가 아니다. 글: 일명(佚名) - 중신망 북경TV가 얼마전에 대담프로그램을 방송한 바 있다. 초청받은 게스트는 예전에 이연영의 묘를 발굴할 때 참여한 바 있는 교사라고 하였다. 그 교사에 따르면, 이연영의 묘에는 머리만 있고 몸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이연영이 비명에 죽었다고 본다고 했다.. 2013. 11. 10.
영년(英年): 청나라말기의 황실풍수대가 글: 포강객(浦江客) 광서24년(1898년) 팔월 초엿새, 서태후는 돌연 정변을 일으켜, 변법을 추진하던 광서제를 영대에 연금시키고, 일체의 행정을 모조리 폐하고, 훈정(訓政)이라는 명목으로 다시 최고권력을 장악한다. 그러나, 기실 이전의 광서23년에 대권을 손에서 놓치고 싶어하지 않던 .. 2013. 8. 15.
광서제의 연금생활은 어떠했는가? 글: 낙방거사 "무술변법"이 실패한 후, 서태후는 광서제의 명의로 유지를 반포하여, 광서제는 질병으로 조정업무를 처리할 수 없어, 서태후가 다시 "훈정"을 한다고 선언한다. 그녀의 이번 "훈정"은 이전의 "수렴청정"과는 달랐다. 직접 황제와 나란히 앉아서 신하들을 마주하고 업무를 듣.. 2013. 6. 10.
민국시대 사대권파(四大拳派)와 무림종사(武林宗師) 글: 김만루(金滿樓) 왕가위의 영화 <일대종사>는 민국초기부터 1950년대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영춘권(詠春拳, 葉問), 팔괘장(八卦掌, 宮二, 宮羽田), 팔극권(八極拳, 一線天)과 형의권(形意拳, 馬三)의 사대권법을 기본맥락으로 하여 민국시대 무림의 전모를 보여준다. 사대권파 형의.. 2013. 2. 4.
만청상인(晩淸商人)의 세 가지 경지 글: 오구(吳鉤) 만일 지명도가 높은 만청상인(만청은 청나라말기를 가리킴)을 꼽는다면 필자는 호설암(胡雪巖), 성선회(盛宣懷) 및 장건(張謇)의 세 사람을 꼽을 것이다. 호설암(1823-1885)은 사료기록은 풍부하지 않다. 그러나 소설과 TV드라마 <홍정상인>의 영향으로, 호설암의 이름.. 2012. 12. 22.
광서제(光緖帝)의 죽음: 누가 원흉인가? 글: 하약청(何躍靑) 서태후는 영록(榮祿)의 딸 과르자씨(瓜爾佳氏) 유란(幼蘭)을 순친왕(醇親王) 재풍(載灃)과 결혼시키는데, 여기에는 깊은 뜻이 담겨 있다. 순친왕부가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두 사람이다: 하나는 원세개(袁世凱)이고 다른 하나는 영록(榮祿)이다. 왜냐하면 원세개의 뒷배.. 2012. 9. 19.
조서교(趙舒翹): 10시간이 걸린 청나라관리의 자살 글: 수은하(水銀河) 자살은 힘이 들까? 일반인들은 아마도 그다지 힘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태후시대의 군기대신인 조서교에 있어서 자살은 상당히 힘이 들었다. 자살을 개시한 때로부터 마지막 숨을 거두기까지 그는 모두 10여 시간정도를 소모했다. 자살을 감독하러 나갔던 대신 잠춘훤(岑春暄.. 2011. 9. 5.
서태후와 영록(榮祿) 글: 장영구(張永久) 서태후에 관한 야사와 소문들 중에서 가장 대담하고 가장 향염(香艶)한 것은 서태후와 영록의 신비한 관계에 대한 것이다. 최근 들어, 덕령공주(德齡公主)라는 청나라말기 여자가 쓴 일련의 청나라궁중 및 서태후에 대한 야사저작이 항간에서 유행하고 있다. 덕령은 .. 2011. 4. 6.
만청궁녀회고록: 궁녀들은 서태후를 어떻게 모셨는가? 글: 침묵과담 궁내에서 그녀의 칭호는"영아(榮兒)"였다. 13살때 입궁한 그녀는 서태후를 8년간이나 모셨다. 18세때 서태후가 그녀를 한 태감에게 시집가도록 정해주었다. 그후 세상이 바뀌면서, 그녀의 생활도 이곳저곳을 떠돌고, 더욱 비참하게 되었다. 그녀는 옛날 이야기를 하기를 극도로 꺼렸다. 필.. 2010. 4. 6.